No, 29
2008/3/2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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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제4절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  

<늘푸른나무/역사로 보는 미국/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2008년 3월 1일>

제5장 제국으로 내닫는 미국(서부개척으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제1절 초기 미 자본주의의 형성과정
재벌의 형성과 부(富)의 축재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한 움직임

제 2 절 해외로 발 뻗는 제국에로의 행보
스페인과의 전쟁
파나마 운하 건설

제 3 절 제국에로의 행보에 영향을 준 몇가지 변수들
루즈벨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개혁
사회의식의 변화

제 4 절 제1차 세계 대전 과 미국

일어난 배경

1914년 6월 22일 오스트리아 황실의 황태자 Francis Ferdinand 가 사라에보 에서 암살당함으로 세계의 모든 강대국들이 전쟁에 휩싸이는 큰 전쟁이 촉발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큰 전쟁(The Great War)이라고 불렀든 것인데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구별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이웃에 자리한 조그마한 Serbia가 암살의 책임이 있다며 전쟁을 선포하자 셀비아와 동맹관계에 있던 러시아가 군대를 동원합니다. 이에 맞서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이 러시아와 그 동맹국인 프랑스에 전쟁을 선언합니다. 그러자 이들과 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영국이 독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며 독일은 벨지움과 프랑스를 향해 진격하면서 유럽대륙은 전쟁에 휩싸입니다.

물론 황태자 Ferdinand 의 암살은 구실에 불과하였고 그 배후에는 19세기부터 내려오는 강대국간의 복잡한 관계가 결국 폭발하라고 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철혈(鐵血) 재상으로 불리는 Bismark 에 의해 공고해진 독일제국은 결혼관계로 오스트리아 제국과 군사적인 동맹국이 되었으며 당시 강력한 오토만 제국(현재의 중동지역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던 현 터키를 중심한 제국)과 동맹관계를 맺음으로 유럽의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1870년 독일과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Alsace와 Lorraine 일대를 빼앗긴 프랑스는 이를 되찾기 위하여 군사력을 계속 증강하여 왔습니다. 한편 사회주의 혁명의 위협 속에 있는 제정 러시아의 czar 황제는 영국 왕과의 친척관계를 이용 영국과 프랑스와 방위협정을 맺습니다.

이런 상황가운데서 긴장이 고조되면서 다투어 군사력을 강화하였는데 거기에는 산업혁명과 함께 발명된 새로운 무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독가스, U 보트, 화염방사기, 탱크, 발달된 수류탄과 기관총 등이 그것들입니다.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 산업의 입김도 크게 작용한 듯 합니다. 지금도 그러하듯이 국제적인 긴장은 군수업자들에게는 돈 버는 큰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 ‘큰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된 데에는 말 타고 기사도를 발휘하면서 하든 전쟁과는 사상 유례가 없던 대량살상무기가 동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큰 전쟁’의 중요 원인은 중요한 富의 자원을 소장하고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등지를 누가 장악하느냐 는 것이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암살되었을 당시 동일은 벨지움과 함께 아프리카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프랑스는 인도지나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과 폴튜갈의 해군력을 격파하고 세계의 해양권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근동(Far East)지방 일대와 수에즈 운하가 있는 중동(Middle East)을 식민지로 소유하면서 “영국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고”고 큰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영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해군력을 강화하여 온 독일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엇습니다.

미국이 ‘큰 전쟁’에 개입한 배경

대서양을 사이하고 유럽대륙과는 떨어져 있는 미국이 어떻게 유럽대륙의 ‘큰 전쟁’에 개입하게 되였을까요?

유럽 열강들의 싸움에는 말려들지 말자는 것이 와싱톤과 제퍼슨 대통령 이래 지속된 미국의 외교정책이며 그것은 몬로 시대에 와서 ‘불 간섭, 불 개입’ 선언을 거쳐 ‘중립과 고립’의 외교노선을 지속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아메리칸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유럽인 후예들의 분포는 어느 한쪽을 돕는다는 일을 어렵게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800만명이나 되는 독일 후예들은 독일과의 전쟁을 원치 않았을 뿐 아니라 영국의 탄압을 받던 아이랜드에서 이민 온 4백 50만 아이리쉬 아메리칸들도 영국을 돕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1915년 5월, 미국의 신문에는 ‘미국 사람들이 대서양을 건널 때 영국 국적 선박을 피하라’는 와싱톤 주재 독일 대사관의 경고 광고가 계재되었습니다. 그 경고가 나간 지 1주일도 안되어 영국선박 Lusitania 호가 아일랜드 근해에서 독일 U 보트의 어뢰정을 맞고 침몰하여 1,959명 승객 중 1,200명이 사망하였는데 그 중 미국인이 128명이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독일과 미국간에는 긴장이 고조되었으나 전쟁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1916년 재선을 앞둔 윌슨 대통령은 ‘중립’정책을 고수하면서 선거운동때도 “전쟁에 개입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줄 대통령’으로 부각시켜 재선에 성공 하였습니다.

그러나 1917년 2월 독일이 군함과 상선을 가리지 않고 미국적 선박도 예외 없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자 윌슨 대통령은 독일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합니다. 때를 같이해서 독일이 미국과 멕시코간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Zimmermann Telegram 사건이 터집니다. 미국 선박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자 미국의 참전 여론이 점점 높아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금융업계과 산업계에서는 전쟁이 미국의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까지도 나왔으며 참전하여야 만 전쟁이 끝난 후 한 몫을 챙길 수 있다는 실리론까지 대두하자 “전쟁 당사자들의 자제를 촉구하며 평화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하던 윌슨도 결국 1917년 4월 2일 의회에 독일과의 전쟁을 의결토록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1918년 1월 윌슨 대통령은 14개 항목의 평화안을 제시하면서 종전을 호소하였지만 당사국들의 외면을 받았으며 Bolsheviks 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러시아와 평화조약을 맺은 독일은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 연합군을 상대로 한 서부전선(the western front) 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1918년 8월에는 10,000여명의 미군이 일본군과 연합하여 볼세빅스 혁명군에 대항하는 ‘백계 러시안’(White Russians) 을 돕기 위하여 시베리야에 침공하였으며 9월에는 896,000의 미군들이 연합군들과 함께 유럽에 투입되어 독일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전투를 벌려 120,000 의 사상자들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

다음달 독일은 윌슨의 14개 조항에 근거한 평화안을 받아들이고 종전회담을 통하여 1918년 11월 11일 11시를 기해 모든 작전을 종결한다는 휴전 안에 서명함으로 4년 반을 끌어 온 ‘큰 전쟁’이 끝났습니다.

결 산

제1차 세계대전은 정말 큰 전쟁이였습니다. 유럽의 전선에서 천 만 여명이 죽어 갔습니다. 러시아군 사망자가 1백 70만여명, 프랑스 군이 1백 35만여명, 영국 군대가 90만 8천여명이었으며 독일군 사망자가 1맥 80여만명, 오스트리아 군 1백 20만여명, 터키군 302만 5000여명이 전장에서 죽었습니다.? 그외에도 2000여만명이 병과 기아등 전쟁과 관련된 요인들로 사망하였으며 6백만명 이상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1년 남짓 전장에 참여하였음에도 전사자 13만명, 부상자 20여만명에 전비가 무려? $32 billion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피해와 함께 패전국들에게는 크나 큰 손실이 돌아왔습니다. 전후에 지도가 바뀐 것입니다. 한때 큰 제국이였는 항가리는 전후에 면적 31n의 2를 상실하였고 인구 8백만의 소국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유고슬라비아와 첵코와 폴랜드가 독립하여 옛 독일과 오슽리아-항가리의 영토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약 3백만명의 옛 독일과 오스트리아 주민을 떼어 내어 첵코슬로바키아에 합방을 하였는데 이것을 Sudeten German 지역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이곳이 나중에(1939)에 2차 대전의 도화선이 되는 독일 침공구실이 되는 것입니다.

중동을 지배하던 오토만 제국은 분리되어 터키는 소그만 소국으로 전락하고 발칸의 오토만 영토는 첵코와 유고로 나뉘이고 영국이 팔레스타인과 욜단과 석유산지인? 현재의 이락을 점령하며 프랑스는 레바논과 시리아를 얻고 아시아의 베트남까지 장악합니다. 아프리카에 있던 독일 영토들 역시 여러 나라로 갈라져서 새로운 강대국들의 식민지로 분활되었습니다.

이러한 전후의 땅 빼았기가 유럽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동부 유럽 그리고 인도지나에서 발생한 또 다른 ‘큰 전쟁’의 불씨가 된 것입니다.

(시카고 교외 Skokie에 거주하는 김상신님은 은퇴한후 '늘푸른나무'를 만드는 한편 서양사와 교회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쳔의 역사해석','역사와 희망'등의 역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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