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7
2008/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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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제2절 해외로 발뻗는 제국에로의 행보  

<늘푸른나무/역사로 배우는 미국/2008년 1월>

제5장 제국으로 내닫는 미국(서부개척으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제 1절 초기 미 자본주의의 형성과정

재벌의 형성과 부(富)의 축재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한 움직임

제 2 절 해외로 발 뻗는 제국에로의 행보

앵글로 색 슨 계를 주축으로 유럽계 백인들로 구성된 아메리카에는 백인우월주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사다가 노예로 사용하면서 노예해방을 선언한 후에도 19세기 후반 Jim Crow라 하면서 흑백 분리정책을 20세기 중반까지 고집한 것은 노골적인 예이고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고 개발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메리카 백인들에게 맡긴 운명이라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서부 사막으로 밀어 부치며 태평양까지 다 다른데 에도 백인들의 우월주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앵글로 색 슨 백인들의 우월주의는 미국 영토 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Josiah Strong이라는 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인기 있는 작가로 1885년 베스트 셀러였든 '나의 조국'(My Country)이라는 책에서 미국은 앵글로 색슨족의 가치관을 실현한 중심지로 그 덕성을 전세계로 전파하여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며 멕시코, 중앙 아메리카, 남 아메리카 그리고 연안의 모든 도서들과 아프리카까지 전파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비록 100여년 밖에 안되었지만 급격히 팽창한 영토와 함께 산업의 부흥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이루어 강력한 힘을 보유하게 된 미국으로서는 한번 그 힘을 과시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Josiah의 멧세지를 통해 분위기가 성숙해지자 스페인과의 한판을 벌리게 되었습니다.

스페인과의 전쟁

영국, 독일, 프랑스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제국을 확장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미국은 해외 무역시장을 장악하고 지하자원들을 확보하며 필요한 농산물들을 재배하기에 적당한(특히 담배와 설탕 등) 농토를 얻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이것은 당시의 미국 대통령도 특히 스페인 정부도 원치 않는 전쟁 이였습니다만 미국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들 즉 큰 돈을 벌 수 있는 산업계, 재계, 생산업체는 물론 심지어는 앵글로 쌕슨의 기독교를 전세계에 전파하려는 선교사들과 남북전쟁을 통하여 언론의 위력과 인기를 실감한 언론재벌들이 원하는 전쟁 이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왜 요즈음도 미국이 전쟁에 개입 할 때면 늘 '음모론'이라는 것이 제기되는지 그 이유를 알듯 합니다.

스페인과의 싸움은 당시 스페인의 영토인 큐바를 '해방'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찍이 스페인이 천하를 호령하던 때 식민지가 되었든 중남미의 여러 지역에서는 스페인이 쇠퇴해가자 '독립'을 목표로 하는 반란군의 움직임이 강해졌습니다. 일찍이 몬로 대통령 때 '아메리카 대륙의 자주'정책을 천명한 미국은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반란군들을 저지하려는 스페인의 파병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당시 하이티에 흑인공화국이 세워졌는데 큐바 에도 흑인공화국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던 미국의 백인우월주의도 작용하였다고 역사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전쟁을 원하는 외부세력 못지 않게 정부안에도 전쟁을 원하는 매파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후에 대통령이 된 대오도어 루즈벨트 해군 부사령관(assistant secretary)이 있었는데 그는 친구에게 "나는 어떤 전쟁이든 환영하네, 왜냐하면 미국은 전쟁을 필요로 하니까!"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당시 마사츄세츠 상원의원인 Henry Cagot Lodge는 미국의 제국주의를 부추기면서 "우리나라의 통상 발전을 위해서는 니카라과에 운하를 만들어야 하고 태평양 일대에 통상 우월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하와이 도서들을 확보하여야 하며 전 세계에 널려 있는 미국사람들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해군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든 McKinley는 전쟁을 원치 않았으나 찬성세력의 위압에 밀려 일련의 외교적 시도 끝에 1898년 4월 21일 스페인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전쟁을 시작합니다. 미국은 큐 바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틈을 타 5월 1일 스페인의 다른 식민지인 필리핀의 마니라 항구를 공격하여 스페인 선박들을 침몰시키는 한편 게릴자 지휘관을 마닐라에 투입하고 미군을 필리핀에 파견합니다.

한편 캐리브에서는 Puerto Rico를 공격하고 큐바에 상륙하여 도시들을 점령하는 한편 산티아고에서 스페인 함대를 격파, 스페인은 큐바에 독립을 허용하고 Puerto Rico는 미국이 관장하며 마닐라는 차후 조치가 있을 때 까지 미국이 관리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전쟁을 종결합니다. 3개월 정도의 짧은 전쟁 이였습니다만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이 인명피해는 적지 않았습니다.

전투에서 죽은 사람은 379명이었지만 전염병과 풍토병 그리고 상한 음식물 중독으로 미국인 사망자가 5,500여명니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전쟁을 통해 포로리코나 큐바는 원래 의도한대로 미국이 관장하게 되었지만 태평양상의 괌이나 필리핀은 처음부터 의도했든 것이 아니어서 뚜렷한 방침이 없었습니다만 1898년 하와이 섬들을 장악하면서 필리핀도 미 국영으로 만들어 태평양 제국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필립핀 사람들의 생각은 달랏습니다. 마닐라를 공격한 미 해군에 의하여 마닐라에 온 반군 지도자 Emiliano Aguinaldo 는 프랑스인의 지배에 반대하듯이 미국의 지배에도 반대하였습니다. 그 결과 필리핀 침공이라고 부르는 참혹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대량시민학살과 참혹한 전쟁 그리고 미국의 역사가의 표현을 빌리면 '백인들과의 전쟁에서는 볼 수 없었든 '참혹함'이 '황인종'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여과 없이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이 과정에서 미국인이 5,000여명이나 사망하였다니 필리핀 사람들의 반항이 어떠하였는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필리핀 침공을 통해 필리핀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 '반갑지 않은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이제 왜 미국에 와 있는 필리핀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며 그들이 영어를 능통하게 하느냐?하는 의문이 사라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큐 바에서의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 Theodore Roosevelt입니다. 전쟁 후 그는 원치 않았지만 McKinley 대통령의 부통령으로 당에 의해 지명되어 선출 되었습니다. 그를 부통령으로 민 사람들은 실은 한직으로 몰아내려는 의도로 취한 조치인데 1901년 맥킨리 대통령이 암살당함으로 당시 42살이던 데어 도어 루스벨트가 미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파나마 운하와 미국

1513년 Vasco Nunez de Balboa 가 칼럼버스가 말년에 파나마의 Isthmus에서 며칠을 걸어가면 또 다른 큰 바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포기해 버린 그 코스를 걸어 처음으로 현재 파나마 연안인 Darien에서 태평양을 바라 본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남 아메리카 남단을 돌지 않고서도 태평양에서 캐리브 해로 직접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보려는 꿈을 꾸어 왔습니다.

1868년 대통령에 취임한 Ulysses S. Grant 대통령은 중앙 아메리카 지역에 운하건설을 위한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하였으며 그 후 미국의 어떤 회사는 중앙 아메리카에 철도를 부설하여 승객들을 운반함으로 항해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만 막상 시작을 못하고 있던 1880년 수에즈 운하를 설계한 Ferdinand de Lesseps를 중심으로 일단의 프랑스인들이 당시 콜롬비아 영토 이였든 파나마에 운하를 만들기 위한 투자자들을 규합 회사를 설립하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의 발 빠른 행보에 기분이 상한 미국은 Hayes대통령을 통하여 유럽의 나라가 아메리카 대륙의 운하를 통제할 수 없으며 “미국의 정책은 운하는 반드시 미국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힙니다.

이러한 미국의 반발에도 프랑스 회사는 공사를 강행하였지만 준비미달과 정글지역의 열악한 환경(우기의 홍수와 지진, 말라리아와 열병 등)때문에 수 천명의 사상자를 내고 철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스페인과의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다시 운하건설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미국의 해양력 증강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자 그는 운하계획을 적극 밀고 나갔습니다.?

프랑스회사와의 거래는 쉽게 되었으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콜롬비아와의 협상이 잘 되지 않자 루즈벨트 대통령은 콜롬비아가 장애물이라면 그 지역에 말을 잘 들을 새 나라를 만들면 된다며 1903년 파나마 주민들의 반란을 선동하고 미국함대를 파견하여 파나마란 새 나라를 건립하게 합니다.

미국은 재빨리 이 새 나라를 인준하고 파나마 정부에 “$10 million을 일시불로 지불하고 매년 $250.000을 사용료로 지불하며 파나마의 독립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파나마의 운하지역으로 태평양에서 걸프 해에 이르는 폭 10마일의 지역을 영구히 사용토록 한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1904년 프랑스인들로부터 인계 받아 공사를 시작합니다.?

이곳에 투입된 미국인들도 열악한 환경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만 주로 캐리브해안 에서 흑인들을 동원하여 백인들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저임금으로 혹사하면서 난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공사를 책임 맡은 민간 업자가 두 손 들자 군대를 동원 강행 끝에 1914년 완공을 보았습니다. McKinley 대통령에 의해 계획되어서 Roosevelt 와 Taft대통령에 의해 추진되어 온 공사는 Woodrow Wilson 대통령에 와서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공사 완성의 기쁨은 잠시,유럽 대륙에서 감도는 제1차 대전의 전운으로 인해 크게 준비하였든 축하행사마저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데어 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1901년부터 1909년까지 미국의 26대 대통령으로 봉직한 데오 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는 와싱톤, 제퍼슨,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들과 함께 Rushmore산에 조각 될 정도로 미국인들에게는 인기 있고 미국 정치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버드 출신으로 컬럼비아 법대를 나온 그는 변호사보다는 학문에 더 관심을 가져 역사에 관한 저술가로서 활동을 하다가 뉴욕 주 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정부의 부패와 당의 정치기계화에 반대하면서 공화당의 지도자로 급부상하였습니다. 한때 다 코다 지역 에서 소 농장을 경영하기도 하였든 그는 U. S. Civil Service Commissioner 멤버와(1889-95) 뉴욕 시 board of Police Commissioner의 의장(1895-97)으로 개혁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 후 McHenry 대통령의 해군 차관으로 스페인과의 전쟁을 적극 지지하였고 전쟁이 선포되자 차관 직을 사임하고 직접 제1 기마 사단(the 1st volunteer Cavalry)을 조직하여 큐 바 침공에 앞장 서 공헌을 함으로 스페인 전쟁 영웅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전쟁에서 돌아 온 그가 뉴욕주의 지사로 선출되어 부패정치인들을 축출하고 반 부패 정책을 추진해 나가자 뉴욕정치에서 그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정적들이 1900년 맥킨리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로 루즈벨트를 선출하고 실권 없는 부통령으로 당선시켰습니다만 다음해 1901년 9월 맥킨리 대통령이 암살당함으로 루즈벨트는 26대 대통령직에 오르게 되면서 그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 할 기회가활짝 열렸습니다.

? 앤드류 짹슨 대통령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존경하였든 그는 무엇보다도 아메리칸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데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백악관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정부기관에 젊은이들을 기용하여 부정, 부패를 최소화 하는가 하면 일방적으로 기업주들의 입장을 지지하며 그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허용하며 그들에게 끌려가던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달리 정부안의 부정,부패를 제거하고 자본주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들을 개혁(반 Trust 법 제정 등)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고용주들이 양보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한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렇게 강력하게 권한을 휘두르며 정치를 한다고 하여 그를 “big stick”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big stick’은 외교정책에서도 예외 없이 휘둘려졌습니다. 스페인과의 전쟁을 지지하고 큐 바 침공을 직접 지휘한 것은 물론 아메리카 대륙의 문제에는 유럽의 국가들이 관여하지 말라는 몬로 정책을 다시 확인하면서 미국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역에서 잘못된 또는 옳지 못한 일이 발생할 때는 미국이 경찰국가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선포하고 도미니칸 공화국이 대영제국에 진 부채문제로 위험에 처하자 군대를 보내 주둔시키고 미국행정관으로 부채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치하는가 하면 해군 부장관 시절부터 해군력 강화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강화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필리핀과 하와이 군도들을 미 국영으로 만들고 1905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노일전쟁)이 일어 났을 때는 누 햄프셔주의 포트모스에서의 중재 회담을 주선하여 종전을 성사시키는 등, 그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만 그 회담에서 미국이 필리핀을 장악하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일본이 조선을 장악한다는 합의를 도출함으로 일제의 조선 점령 36년의 발판을 마련하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파나마 운하 건설을 위하여 컬럼비아 공화국에 반기를 드는 파나마 공화국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습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루즈벨트 대통령만큼 ‘big stick’을 휘두르며 생동감 있게 강력한 정치를 해 나간 대통령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 결과 미국은 어느 때 보다 더 번영하고, 활기 차며, 자신감을 가지고 해외로 뻗어 나가려는 기운과 실험 정신으로?가득 찼습니다. 그는 카우보이와 같은 야생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변호사 출신다운 주도 면밀함이 있어 정치가로서의 처신에 협상을 통한 중용지도를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에 비해 해 놓은 것은 너무 작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점에서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 역시 말보다 혜택이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큐 바를 침공하고 필리핀을 점령하며 파나마나라를 세운 것등 그의 외교 정책에 대하여는 후대의 역사가들이 많은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부정 부패와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빈부 격차 가운데서 무기력해지던 미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고 자본주의에 새바람을 일으키면서 국제적인 제국으로 발 돋음 하는데 루즈벨트의 공헌은 지대한 것이았으며 미국사람들은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루즈벨트 대통령을 사랑 하는 듯 합니다.?

(시카고 교외 Skokie에 거주하는 김상신님은 은퇴한후 '늘푸른나무'를 만드는 한편 서양사와 교회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쳔의 역사해석','역사와 희망'등의 역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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