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6
2008/1/24(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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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제1절 초기 미 자본주의의 형성과정(2)  

<늘푸른나무/역사로 배우는 미국/제5장 제국으로 내닫는 미국>

제 1절 초기 미 자본주의의 형성과정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한 움직임

몰간이나 록펠러등 재벌들이 천문학적인 부를 쌓아 가는 동안에도 19세기 후반에 정기적으로 닥쳐온 불경기들로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져 갔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자본주의와 19세기 후반의 미 자본주의의 차이점을 비교할 때 그 가운데 하나는 유니온과 같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노동자들의 힘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업가인 고용주는 은행과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노동자들이 조직화 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았을뿐 아니라 어렵게 만들어진 유니온에서도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방에서 몰려 온 이민자들을 설득, 행동통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외에도 출신별로, 또는 이민 온 시기별로 서로 미심적은 시선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힘을 모은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아이리쉬들은 이태리안들을 미워 했고, 독일 사람들은 아이리쉬들을 미워했습니다. 유우럽 출신들은 중국사람이라면 무조건 싫어했습니다. 또 갖 이민 와서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얻어야만 살아 갈 수 있는 사람들과 이민 온지 오래되어 좀 더 낳은, 좀 더 좋은 조건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같은 유니온에서 의견을 통일하여 고용주와 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가운데서도 노동자들의 힘을 모아 고용주들과 대항하는 일은 여기 저기에서 계속되었고 1860년에는 매사츄세츠에서 10,000여명의 製靴工(제화공)들이 시위를 하여 비록 유니온은 인정 받지 못했지만 임금인상은 이루어 냈는데 이 사건이 미국 노동계 역사상 최초의 승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 스트라이크에 가담했다가 고둉주들이 고용한 경비원들이나 정부에서 파견한 군대에 의해 죽은 노동자들이 수천에 이르렀습니다.

그 가운데 1877년 철도 노동자의 파업은 전국적인 규모로 번졌든 큰 파업이였습니다. 저임금에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시달리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한데서 이 파업은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었는데 이 사태가 수습되었을때에는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죽었고 수천명이 감옥에 갇혔습니다만 이를 통해서 노동자들이 조직화 되어야만 한다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되었고 강력한 유니온이 자라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69년에 조직된 the Knight of Labor라는 노동자들의 연합체가 있었습니다. 이 단체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발전하여 1884년에는 70만명이라는 회원을 확보하고 고용주 사업가들과의 협상에서 상당한 정치력을 행사하였습니다. 1886년 5월 시카고에서 이 단체가 중심이 되어 McCormick Reaper Company의 8시간 노동제를 관철하기 위한 스트라이크에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시위자들과 경찰들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많은 시위자들이 죽고 종내는 Haymarket 광장에서 폭탄이 폭발하여 경찰들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무정부주의자라는 명분으로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대거 검거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몇몇은 처형을 당하고 몇몇은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하여 사면을 받았지만 이 와중에서 1890년에는 회원 10만여명으로 줄어들면서 이 단체는 치명상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짓밟힌 노동운동은 또 다른곳에서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의하여 일어났습니다. 당시 가장 위험하고 힘들었던 직업인 기관차 운전수 출신인 Eugene V, Debs 가 1893년의 극심한 불경기 가운데 전투적인 American Railway Union을 조직하고 1894년에 Pullman Car Company를 상대로 스트라이크를 벌였습니다. 6만여명 운전자들의 참여로 그 영향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스트라이크가 연방 우편배달을 마비시킨다하여 연방군대를 동원 진압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시카고에서 노동자들과 경찰이 대치하여 충돌하였고 그 과정에서 사상자들이 나오고 Debs는 체포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담배를 만들던 Samuel Gompers 란 사람이 뉴욕을 중심으로 특수 기술자 유니온들을 모아 American Federation of Labor(AFL)을 조직하였습니다.(AFL은 오늘날도 AFL-CIO로 발전 통합되어 미국의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발전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거창한 구호 대신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노동시간, 임금, 안전문제등을 당면 과제로 내세운 그는 1886년부터1924년까지 AFL 을 계속 이끌어 가면서 스트라이크를 융통성 있게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하루 8시간 노동제도와 일주일 5일 또는 6일 노동,고용주 보험제도,광산 안전 개혁법, 그리고 집단 협상권등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였든 광법위한 사회개혁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권익옹호에 초점을 맞춤으로 노동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는데 1886년에 15만명이었던 회원이 1901년에는 백만명을 넘기는 대 성공을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AFL이 '흑인은 필요 없음'이라는 인종주의적인 간판을 달지 않았드라면 보다 효과적이고, 더 큰 성공응 이루지 않았을까? 아쉬워 합니다만 당시 인종분리는 어디에나 유행이였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한발짝 한발짝 이루어지며 권리를 찾아가는 동안에도 전혀 그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인 변혁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농민들이였습니다. 주로 미대륙의 서남부에서 농사와 농장을 경영하고 있던 수백만명의 소농들은 옴짝달삭 할 수 없는 환경가운데서 착취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동부의 은행들이 돈줄을 휘어 잡고 독과점 농기구 생산업자들의 새로운 농기구의 값을 비싸게 매기는가 하면 동부의 철도회사들은 운송료를 마음대로 조작하고 거기에 불경기가 몰아치면 땅값과 곡물값이 곤두박칠처 농민들은 재정문제에 쪼들리다가 땅을 헐값에 팔고 공장을 찾아 도시로 떠나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에 이러한 상황을 개혁하려는 과격한 농민운동들이 나타나면서 Granges라는 농민조직이 생겨났으며 남부에서는 해방된 흑인들과 백인 농민들이 손을 잡는 획기적인 상황까지도 발생하였습니다. 이들 시골의 농민들과 도시의 노동자들은 1892년에 독점기업으로서 농민과 노동자들을 수탈하는 철도, 전신 전화등의 국유화와 금본위 화폐에서 은본위 화폐로의 전환을 요구하면서 인민당(People's 또는 Populist Party)을 조직하여 정치적인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들은 미국사회의 근간이면서도 기업가들과 정부의 유착으로 인해 변두리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든 계층으로 이들의 조직화는 기존 민주당과 공화당에는 큰 위협이었습니다. 정부와 기업가들은 인종주의를 자극하여 이들의 조직화를 방해하였으므로 도시의 노동자들의 지지와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3당으로 밀려났지만 개혁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자본을 축적하려는 기업주들의 무자비한 노력과 그들에게 착취를 당하면서도 자신들이 처한 조건과 환경을 개혁해 보려는 노동자들의 끝임 없는 노력을 통해 오늘날 미국이 자랑하는 '얼굴 있는 자본주의'가 형성된 것입니다. 비록 너무 단편적이고 간단하게 소개하였지만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형성되여 가던때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상들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 그리고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얻기 위한 처절한 싸움등을 통해서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오늘의 미국'을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들을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대법원 판결과 흑,백 분리정책

남북전쟁의 종결로 흑인들은 자유인의 신분을 얻었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였습니다. 기차에서는 다른 칸에 타야 했고 식당에서도 같은방에서 먹을 수 없으며 학교도 다른 학교를 이용해야 하는등 흑백인종간의 분리현상은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1890년에 Homer Plessy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흑인피가 약간(정확히 8분의1이라고 함) 섞인 코케이시안(러시어 서남부 지역)이였습니다. 이사람이 백인 지정 열차에 탈려고 하다가 주법을 위반하였다고 하여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이에 맞서 대법원 판결까지 밀고 갔습니다. 6년이나 끈 긴 재판끝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주는 그들을 격리 수용하는 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였습니다.(separate but equal) 미 대법원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흑인은 집이나 가축과 같이 주인의 재산"에 불과하다는 판결을 내린바 있는데(Dread Scott decision 참조) 이번에도 유사한 인종주의적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은 링컨의 노예해방에도 불구하고 인종적인 분리의 생활풍속을 만들어 내었고 특히 남부에서는 그것이 흑인들에 대한 차별정책으로 심화되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로 계속된 흑백인종분리 정책은 1950년대 마틴 루터 킹이 주도한 민권운동과 함께 제기된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위헌 소송들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위법판결이 나오기까지 60여년 이상을 더 미국사회의 정당한 정책으로 군림하였던 것입니다.

영어에 Jim Crow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1830년대에 유행하였든 노래가사에서 나온 것으로 원래는 검은 얼굴을 칠한 광대같은 백인을 지칭하는 이름이였든 것이 후에는 'Negro(흑인을 비하하는 명칭)'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고 19세기 말 이후 흑백 분리정책이 유행처럼 번져가면서 '흑인전용' 또는 '흑인에게는 분리정책을 사용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Jim Crow는 기차나 버스, 식당은 물론 화장실이나 공장 출입문에도 적용되었으며 뉴 올린스에서는 사창가에도 뻐젔이 걸려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분리정책이 차별적으로 집행되면서 피해가 심했든 부분이 교육이였습니다. 백인과 흑인이 다니는 학교를 따로 만들고 백인학교에는 흑인학교보다 10배나 많은 예산을 집행하는가 하면 어떤 주에서는 아예 흑인들을 위한 고등학교는 만들지를 않아 교육의 기회를 없애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을줄 알아야 한다든지, 세금을 낸 증명이 있어야 한다는등의 법규를 만들어 노예해방으로 주어진 선거권들을 교묘히 박탈하는가 하면 이러한 방법들이 다 통하지 않게되면 노골적인 린치행위를 통해서 위협을 가하기도 하였습니다.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흑인들을 대변하였든 인물은 잘 알려진 Booker T. Washington(1859-1915) 입니다. 노예로 태어났으나 남북전쟁 직후 흑인들을 위한 재건조치들이 한창이든때 교육의 기회를 얻어 농업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후에 알라바마에 흑인들을 위한 직업학교를 세우고 남부에 있는 흑인들에게 빈손으로 부자가 되는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어 주면서 열심히 일하고 교육과 전문적인 기술로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도록 독려하였습니다. 그 당시나 오늘날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일할것을 강조함으로 나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비판합니다만 그 당시의 그러한 환경가운데 그만한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은 존경할만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세기의 이민 상황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 미대륙을 찾은 사람들과 그의 자손들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가 미 합중국입니다. 그리고 그 후의 미국의 이민정책은 노동력의 필요여부에 따라 변하여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12년 전쟁부터 남북전쟁이 일어나기까지 50여년동안에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은 5백만여명이였습니다. 1815년에 미국 인구가 7백만명이었든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입니다. 이당시 이민자들은 주로 영국과 극심한 흉년으로 어려운 가운데 있던 아이리시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이 당시 얼마나 아이리시 사람들이 많았든지 뉴욕에서는 '아이리시인 사절(No Irish Need Apply-약칭으로 NINA)라는 사인이 유행할 지경이었습니다.

남북 전쟁 이후 25년동안에 천만여명의 북 유럽인들이 이민하여 왔고 1890년에서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때까지 천 5백만명의 이민자들이 몰려 들었는데 그중 3분의 1이 동부와 남부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였습니다. 영토가 서부로, 서부로 확장되어 태평양까지 이르면서 미 대륙은 그렇게 많은 이민자들을 수용할 수 있을만큼 노동력이 절대 필요하였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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