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1
2007/12/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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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제2절 노예문제를 둘러싼 상황 변화들  

<김상신 칼럼-역사로 배우는 미국>

제4장 대재난을 향해 달리는 아메리카

제2절 노예문제를 둘러싼 상황 변화들

식민지 시대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농장 경제의 산물인 흑인노예 제도는 미합중국의 독립선언때부터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노예들의 인력에 별로 의존하지 않는 북부지역의 사람들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동등하게 창조하였다"는 독립정신에 입각하여 노예제도를 폐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노예들의 노동력에 의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한 대농장주들과 그들의 영향아래 있는 남부 여러주들의 반대가 워낙 강하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정서와는 관계 없이 의회에서는 그때 그때 협상에 의한 타협안으로 연방정부의 결속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노예제도 존속문제를 연방의회가 아니라 주의회에서 각기 결정토록 하는가 하면 1808년 노예무역은 위법으로 결정하면서도 노예제도는 인정하는등 미봉책에 불과하였습니다. 또 몬로대통령때에는 13개주로 출발한 아메리카 합중국이 24개주로 확대되었으나 다행히 노예허용주와 노예불인정주가 12대 12로 균형을 이루어 정치적으로는 안정을 이루는듯 했습니다.

영토가 확대되고 유우럽으로부터 많은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서부로! 서부로!" 의 물결과 함께 주(州)들이 늘어나게 되자 노에문제는 연방정부로서는 가장 다루기 힘든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섯불리 정치적으로 다루다가는 남부 여러주들의 반발로 미 합중국의 존립이 위협받을수가 있고 그렇다고 일반대중들에게 번져가는 반 노예제도 정서를 무시할수 만 없는 상황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주로 노예문제에 대하여 무입장, 무정견의 자세들을 취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커다란 '반노예' 물결이 거듭 물려 오고 있었습니다.

1850년 전후 미국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로 Frederick Douglas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흑인 노예 출신임에도 북부로 도망하여 '반노예 운동'의 기수가 된 사람입니다. 이때는 남북을 있는 철도가 부설되었고 산업화로 인하여 북쪽에서는 인력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남부에서 도망하여 북으로 가기만 하면 자유생활을 할 수 있어서 탈출 노예들이 날로 늘어 갔으며 이들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그룹들도 생겨나 이들을 Underground Railroad라고 불렀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도망나온 노예출신들도 있었지만 뜻있는 백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Douglas는 유창한 언변과 자신이 만드는 신문을 통해 노예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였고 백인들이 주동이 된 '반노예' 운동 단체에도 스카웃되어 활동하였으며 남북전쟁시에는 북군에 흑인병사들을 모병하는등 많은 역활을 하였습니다.

이때(1848년) Zachary Taylor 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그는 노예문제 대하여는 '정견이 없는' 후보였습니다. 그가 취임후 1849년에 캘리포니아주는 미 합중국에 가입시켜달라는 청원을 정식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몬로대통령때부터 아슬 아슬하게 이루어 온 균형이 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국정치 특유의 협상력을 발휘하여 캘리포니아를 노예자유주로 인정하는 대신 새로운 노예법을 제정하여 주인으로부터 도주한 노예들을 복귀시키는데 연방 정부가 적극 지원한다는 결의를 하게 됩니다. 이 결의안이 1850년 취임 2년반만에 사망한 테일러 대통령을 승계한 Millard Fillmore 에 의하여 공표되자 북부를 중심으로한 반 노예론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 났고 송환을 우려한 탈주노예들이 폭동을 일키기도 하였습니다. Fillmore 대통령이 군대를 보내어 이들을 진압하려 하지 이들은 국경을 넘어 카나다로 도망하였고 이들을 추격하려는 아메리카 군대를 카나다 정부가 제지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이 사태에 대하여 남부는 남부대로 정부가 강경한 대응책을 쓰지 못한다고 반발하고 북부는 북부대로 부당한 진압책이였다고 비난함으로 미 합중국이 와해될 위기까지 치달았습니다.


같은 때에 개신교 목사의 딸이요, 또한 부인이기도 한 Harriett Beecher Stowe 가 가족들의 권고로 노예제도의 참상을 폭로하는 'Uncle Tom's Cabin" 이라는 소설을 출판하였습니다. 주인공 'Uncle Tom"은 여러차례 팔려 다니며 무진 고생을 하면서도 가족들과 다시 모여 살게되리라는 희망으로 품위를 지키며 견디어 내는 흑인노예로 후에 켄터키의 한 농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가축'이 아니라 아내와 남편, 부모와 딸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단순한 소설이지만 남의 일로만 알고 지내던 백인들의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법적인, 정치적인 문제로만 논의되던 노예문제가 인간적인 문제임을 부각시켰고 인간적인 고통을 공감하게 하였습니다. 사실에 입각한 묘사라고 말할 정도로 생생한 기록으로 첫해에 30여만부가 팔렸으며 19세기 중엽까지 여러나라 말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150여만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1776년 '독립선언'의 도화선을 당기었던 Tom Paine 의 "Common Sense" 이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1862년 링컨 대통령이 스토우 여사를 만났을때 "당신이 바로 이 엄청난 전쟁을 일으킨 책을 쓰신 자그마한 부인이시군요"라며 반겼다고 합니다.

임기중 사망한 Zachary Taylor 을 승계한 Fillmore는 북부의 '반노예주의자'들의 반발과 남부 여러주들의 불만에 시달리다 물러나고 1852년 민주당의 Franklin Pierce 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노예문제에 대하여 남과 북이 의견을 달리하여 서로 충돌이 있어 세력이 약회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가운데 1854년 5월 9일 위스칸신에서 '반노예제도'를 분명하게 천명하면서 공화당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런때에(1854년) 캔사스 지역을 '노예 자유주'로 인정할것인가? 하는 문제가 의회에서 제기되었습니다. 남부의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가 심하자 민주당 소속의 일리노이주의 상원 의원인 Douglas가 주동하여 Kansas-Nebraska Act라는 것을 통과시켰는데 자체 주민들의 다수결 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이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북부의 노예반대자들은 캔사스주로 이주하여 반대투표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맞서 남부의 노예찬성자들은 미주리주의 노예 허용지역의 주민들이 월경하여 투표에 참여토록 함으로 투표에 승리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북부에서 온 '노예 반대자'들은 캔사스의 토페카에 '노예반대자들의 주정부'를 따로 세웠습니다.

이렇게 되자 피얼스 대통령은 '노예 반대자'들의 조치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노예 찬성자'들은 그것을 구실로 1856년 5월 ' 노예 반대자'들의 중심지였든 로렌스를 공격 점령하였는데 이것이 남북전쟁(Civil War) 의 첫 발포로 보고 있습니다. 그후 '반대자'들과 '찬성자'들의 반격 , 재공격등을 거듭하면서 같은해 10월까지 양측에서 약 200명의 사망자를 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피얼스 대통령 역시 인기를 잃어 재선에 이르지 못하고 James Buchanan이 1857년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그는 내전상태에 있는 캔사스 문제를 대법원이 해결해 줄것을 기대한다고 취임사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대법원의 Dread Scott 사건 결정으로 무산되어 버리고 맙니다.

1834년부터 John Emerson 이라는 의사가 군의관으로 일리노이, 위스칸신, 미주리등지를 전전하며 주둔하였는데 그때 Dread Scott라는 흑인노예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1846년 이 의사가 죽자 Scott는 자신이 그동안 노예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주에서 살았으므로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것이 대법원에까지 올라갔는데 Taney 가 이끄는 대법원의 결정이 "흑인은 열등하므로 백인들이 서는 법원에 설 자격이 없다'하여 심의 자체를 인정치 않았으며 "노예는 노새나 말과 다를바 없는 소유물이다. 수정헌법 5조는 소유의 보호를 규정함으로 아무도 소유물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였습니다. 독립선언서의 정신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이러한 결정이 건국 70여년이 지난 마당에 미국의 대법원에 의하여 나왔다는 것은 좀체로 상상하기 힘든 사실이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였습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남부의 '노예찬성자'들은 절대 환영일뿐 아니라 한 발 나아가 '노예 매매 금지"도 잘못된 것이니 수정하여야 한다고 기세를 올렸으나 대중들의 정서에 의존하는 북부의 '노예 반대자'들은 다수결 투표로 결정하자며 맞섰습니다. 그런데 Taney 의 Dread Scott 사건 결정은 예기치 못했든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민주당이 남과 북으로 갈려 반목하는 가운데 공화당은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입지를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북부와 국경지대의 중립적인 사람들까지도 공화당을 지지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 공화당에서 제기한 부카난 대통령이 대법원장 Taney 와 짜고 대법원에 공을 넘겼다는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공화당은 큰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캔사스주 문제에서 협상력을 발휘하였던 일리노이의 더그라스 상원의원은 민주당 출신으로 1852년과 56년 대통령 지명에 실패하였으나 1860년 지명을 기대하면서 남부와의 합의하에 다수결 투표로 칸사스주를 '노예제도 인정 주'로 만드는데 기여를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주 상원의원직을 놓고 공화당의 아브라함 링컨과 붙게 되었습니다. 당시 링컨은 연방 하원을 한번 한적은 있으나 그후 떨어졌고 폴크 대통령의 멕시코 전쟁을 반대하던 일리노이주의 변호사였습니다.

이들이 주 상원의원직을 놓고 결국은 노예문제로 격돌하게 되었습니다. 링컨이라고 하여 처음부터 절대적인' 노예반대자'는 아니였든것 같습니다. 그는 '반노예 제도'는 점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어쩌면 100년이 걸린런지도 모른다고 하였으며 인간은 동등하게 창조되기는 하였지만 아직 흑인들에게 참정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준다는 것은 시기장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논쟁이나 구호는 과장되고 단순화하기 마련이어서 다그라스는 '노예찬성자', 링컨은 '노예반대자'의 전형으로 부각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링컨은 상원 선거에서는 다그라스에게 졌지만 그는 일약 전국적으로 주목 받는 인물로 부상하였고 186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대로 의회의 논쟁이나, 소설을 통한 감동, 컨변숀에서의 반대 집회, 대법원의 판결등등 여러가지 시도들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행동만이 문제를 해결한다'며 나타난 통키호테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뉴 잉글랜드에서 살던 John Brown이라는 사람은 가족들과 몇몇 따르는 사람들(The Secret Six 라고 불렀음) 을 데리고 캔사스로 가서 아파라치안 흑인공화국을 세우고 남부의 흑인 노예소유주들에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였지만 호응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단독으로 1859년 10월 16일 포토막 강변의 연방무기고를 공격, 점령하였으나 동조자들을 얻지 못하고 잡혀 처형되었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그를 '반 노예운동'의 기수로 탈바꿈시켜 정의를 위한 순교자로 칭송하면서 비폭력적인 '반 노에주의자'들도 그를 그리스도로, 그의 처형을 십자가의 처형등으로 미화하는 물결이 일었습니다. 이러한 브라운 미화를 보는 남부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간섭하려는 오만한 양키들의 수법이라며 분노하면서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만 갔습니다.

이러한 분위 가운데서 1860년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의회는 연방정부에서 탈퇴할것을 결의하였습니다. 당시 현직 대통령 뷰카난은 의회에서 州는 탈퇴할 권한이 없음을 선언하였으나 더 이상의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고 퇴임하고 맙니다. 링컨이 정식으로 취임하기 전에 아리조나, 후로리다, 죠오지아, 미시시피, 텍사스등 5개의 다른주가 추가 탈퇴하고 1861년 2월에 7개주가 연합하여 The Confederate Stataes of America 를 선포하고 미시시피 출신 상원의원 Jefferson Davis를 내통령으로 선출하였으며 전쟁이 시작된때에는 버지니아, 알칸소, 노스 캐롤라이나, 테네시가 합세하여 11개 주가 되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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