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
2007/11/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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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제3절 영토의 확장과 제퍼슨 대통령의 업적  

<늘푸른나무/김상신의 역사로 배우는 미국(편년체 통사)>

제3장 한 국가로의 도약

제3절 영토의 확장과 제퍼슨 대통령의 업적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던 죠오지 와싱톤의 두번째 임기가 끝나는 1796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양 진영간에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운동이 치루어졌습니다. 연방주의 의원들은 당시 부통령이였든 John Adams를 대통령 제1후보로 사우스 캐로라이나의 Thomas Pinckney를 제2 후보로 지명하였습니다. 한편 민주공화당원들은 Thomas Jefferson을 제1후보로, 뉴욕주의 야심만만한 정치가 Aaron Burr을 제2 후보로 지명하였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정,부통령을 단일 티켓으로 하여 선출하는 것이 아니고 득표순으로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였기 때문에 연방주의당의 죤 아담스가 대통령이 되고 민주공화당의 제퍼슨이 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이 연방주의자들과 민주공화당의 세력이 박중하였기에 결국 아담스는 재임기간을 양당간의 반목으로 무척 어렵게 보냈으며 따라서 연방주의자들의 판세는 쇄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8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죤 아담스는 연방주의 정당의 제1 대통령 후보로 지난번 제2 후보였던 Thomas Pinckney 의 동생 Charles Pinckney를 제2 후보로 다시 지명되었으나 치열한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아아론 벌을 제2후보로 다시 민주공화당의 제1후보로 지명 받은 제퍼슨에게 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공화당의 제1 지명자 제퍼슨과 제2 지명자 벌이 동점을 얻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것입니다. 물론 제2지명자인 벌이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 될 수 있었지만 기회를 보면서 사퇴를 거부하였습니다. 헌법상으로는 연방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에서 결정키로 되어 있었습니다. 강력한 연방주의자 하밀톤은 제퍼슨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주의 라이벌인 아론 벌을 견제하기 위해 제퍼슨을 위한 로비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표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제퍼슨이 연방주의자들과의 어려운 협상을 통해 다음해(1801년) 2월에야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1796년 정,부통령이 다른당에서 나오는 결과를 보고 1800년 동점획득으로 일어나는 어려움을 경험한 의회는 1804년 12차 헌법수정을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 투표를 따로 하는 현재와 같은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제퍼슨 대통령의 치적

당시 혁명으로 혼란스럽던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정권을 장악하고 유럽을 호령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애 대한 정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17세 중엽 프랑스인 말켓과 죠리엣 같은 탐험가들과 선교사들이 미시시피강까지 탐험을 하였든 연고권을 가지고 있기에 세계를 호령하며 누구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였으나 이제는 쇠약해진 스페인을 압박하여 그들이 장악하고 있던 루이지아나 지역을 1800년 넘겨 받았습니다. 그리고 북미를 공격하기 위한 발판으로 프랑스 혁명때 빼았긴 도미니카 공화국의 카리브섬을 탈환하기 위해, 20.000여명의 군대를 파견할 계획도 세웠습니다.

이러한 프랑스의 위협을 감지한 제퍼슨은 영국과 은밀히 반 프랑스 관계를 유지하면서 Robert Livingstone 과 James Monroe로 하여금 뉴 올린스와 프로리다를 프랑스로부터 매입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마침 나폴레옹의 카브리섬 탈환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유럽에서의 대정벌 계획을 시작하면서 신세계에 대한 계획을 백지화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뉴올린스와 프로리다만이 아니라 루이지아나 지역까지도 미국에 넘기도록 하였습니다.

 

리빙스톤과 몬로는 흥정끝에 1803년 5월 루이지아나 전체를 넘겨 받는다는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이 판 땅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때의 루이지아나란 식민지 시절 버지니아가 동남부 북미 대륙을 통칭하는 이름이였드시 지금의 루이지아나에서 부터 13개주의 경계 서쪽, 미시시피강 서북지대 일대를 지목하는 이름이였습니다.(위의 지도에서 진초록색으로 Loisiana Purchase 1803라고 쓴 부분 전체) 조약에 의하면 단지 1,500만불에 당시 미 합중국의 영토와 맞먹는 넓이의 지역을 사들인 것입니다.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안들과의 흥정이 아니라 나폴레옹과의 거래로 북미 대륙의 한 복판에 있는 그 넓은 땅을 사들여 미국의 영토가 갑자기 배로 늘어났다는 것은 아이로니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매매 계약에서는 스페인 영토였던 텍사스와 서부 프로리다 그리고 서해안 칼리포니아 스페인 정착지 에 대한 것은 불분명한채였습니다.

제퍼슨 대통령은 루이지아나 매입이 성사가 되자 군인출신으로 개인 비서였던 Meriwether Lewis 와 인디안들과의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William Clark을 리더로 대규모 탐험단을 구성하여 새로히 편입된 루이지아나 지역과 서부 일대를 탐험하여 광활한 미지의 서부지역을 탐사, 연구토록 하였습니다.

1803년 겨울 세인트 루이스를 출발한 이들은 1804년 가을에 노스 다코다의 현재 비스마크 근처에 기지를 만들고 겨울을 보낸후 1805년 봄에 다시 서부로 탐험을 계속하여 그해 11월 태평양 해안(지금의 오레곤주 아스토리아 근처)에 다달았습니다. 그후 록키 산맥 일대를 탐험하고 1806년 9월 23일에 세인트 루이스에 돌아왔습니다. 이들은 전혀 미답(未踏)의 지역을 어려운 여행 여건가운데서 때로는 적대적인 인디안들을 만나기도 하고 위험한 짐승들을 만나면서 힘들게 탐험하였지만 28개월동안의 탐험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든 것입니다.

그들의 여행 일지, 그들이 가져온 동식물의 표본들, 그리고 조우했던 인디안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들과 그들과의 교역내용등등은 서부로의 진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아아론 벌을 둘러싼 아메리카 역사의 해프닝

프랑스와의 거래 성사로 제퍼슨은 국내적으로 큰 인기를 얻는 한편 대외적으로도 북 아프리카에 거점을 둔 해적들을 묵인하는 열국들의 관행에 대하여 비난을 가함으로 다른 나라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생국 아메리카의 위상이 국내외적으로 향상된 가운데 1804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제퍼슨은 압도적으로 재선되었으나 4년전 그와 동점이 되었다 부통령이 된 아아론 벌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부통령 후보에서도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뉴욕지사로의 당선으로 재기를 꿈꾸던 벌(Burr) 에게 같은 뉴욕출신의 하밀톤은 온갗 방법을 동원 그의 선출을 막았고 그의 노력은 벌의 선출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만 선거가 지난지 몇 달 후에 벌이 하밀톤에게 결투를 신청하였습니다. 유럽에서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유행되던 결투가 신대륙에서도 심심치 않게 시행되었던듯 합니다.1804년 7월 11일 뉴 저지주의 한 허드슨강 언덕에서 발어진 결투에서 하밀톤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사망하였습니다강력한 연방주의자로 아메리카 합중국 건립에 큰 골로를 새운 유능한 정치인 하밀톤은 정파간의 반목과 시기 가운데서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4년전만 해도 대통령이 될뻔 했던 벌은 이제 도망자의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는 프랑스의 황제가 된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서부 대륙에 제국을 세워 통치할 꿈을 꾸면서 루이지아나를 관리하도록 임명된 James Wilkins와 손잡고 1806년 소수의 군대를 조직하여 멕시코를 점령 서부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하였으나 Wilkins의 배신으로 Burr 은 국가반역죄로 붙잡혔습니다. 재판을 받으며 보석되어 있는 동안에 유럽으로 도망한 벌은 5년동안이나 프랑스와 영국이 합동하여 아메리카를 침공하도록 나폴레옹을 설득하였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신생 아메리카가 틀을 잡아 가는 동안 위대한 건국 선조(?0들 가운데서는 정치가들의 끝없는 정권욕과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해프닝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습니다.

제퍼슨 대통령과 흑인 후손들

DNA 테스트로 친자확인을 하는 방법이 처음 발견되었던 1970년대 미국에 사셨든 분들은 신문에서 심심찮게 제퍼슨 대통령의 흑인 후손들이 있다는 보도를 접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이야기는 결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였고 DNA 테스트로 확인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다시 이야기 거리가 되었든 것입니다.

1804년 선거운동이 치열하던때 반대파였던 연방주의자가 제퍼슨이 파리에 대사로 가 있을때 젊은 흑인 노예 Sally Hemings와 관계를 가지고 아이까지 낳았다고 폭로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Sally 는 제퍼슨의 아내 Martha 의 배다른 동생이라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어머니가 죽자 마르다의 아버지는 새리의 어머니를 안해로 맞아 새리는 마르다의 배다른 동생이요 종으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1787년 제퍼슨의 아내 마르다가 죽었을때 쌔리는 9살의 어린 아이여서 집에서 그냥 지내게 하였든 것인데 제퍼슨이 파리로 갈때 같이 데리고 가는 딸을 돌보게 하기 위해서 쌔리를 같이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이때 쎄리는 16살, 제퍼슨은 46세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부터 39년간 두 사람은 부부생활을 하면서 아이들도 낳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804년 선거 기간중에 제퍼슨은 침묵을 지켰고 선거 결과에도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며 나라의 틀을 이루는데 공헌한 공로로 Rushmore 산의 위대한 대통령의 하나로 선정되는 영광을 앉고 미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독립선언서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한 제퍼슨이 집에서 노예들을 부리고 있었다는데서 모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심지어 노예폐지론자까지도 흑인들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백인사회에서 남달리 노예문제로 고민하고 흑인노예와의 관계를 끝까지 지키며 책임을 다 한 그를 시대에 앞서 가던 사람으로 좋게 평가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Franklin Delano Roosevelt 가 1944년 4선에 성공한후 1947년 22차 헌법수정안으로 재선금지 조항을 삽입하기전 까지 대통령의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퍼슨은 워싱톤의 선례를 따라 3선 출마를 사양하고 자신의 국무장관이였으며 오랜 동지였든 James Madison을 대통령 후보로 밀어 1808 년 미 합중국의 제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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