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 문화산책/2013년 10월>

호랑이와 꽃감

이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분포된 설화 유형인 ‘도적과 호랑이’에 속하는 것으로 한국에서 전승되는 대표적인 동물담이다. 마을에 내려온 호랑이가 “호랑이 왔다!” 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아이가 “이것 좌라, 곶감.”이란 말에 울음을 그치는 것을 보고, 곶감은 매우 무서운 것이라고 여겼다는 내용이다.

어디를 보나 산이 병풍처럼 빙 둘러싼 깊은 산 속에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언제나 한밤처럼 고즈넉한 마을이었다.

이 마을 뒷산에는 참으로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호랑이가 산 위에 올라가 한번 울부짖기만 하면 모두들 무서워서 후들후들 떠는 것이었다.

이 호랑이가 어느 해 겨울, 온 세계가 한얀 눈으로 덮였을 적에 뒷산으로 내려왔다.

‘뭐 먹을게 없을까?’

호랑이는 어느집 창가에 와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호롱불이 하느적거리고 있었다.

“앙앙앙!”

그때 마침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는 오랫동안 운 듯 힘없이, 그러나 그치지 않고 계속 울어 댔다.

“참 이상하다. 왜 저렇게 오랫동안 울고 있을까?”

호랑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집 안의 동정을 살핀 다음 그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 아이의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아, 저런! 여우가 왔네. 빨리 그쳐라.”
“어마! 여우가 눈을 딱 부릎뜨고 입을 벌리고 있네.”
“앙앙앙앙. . .!”

엄마는 아무리 달랬지만 아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또,

“응, 저것 봐! 이번엔 곰이 왔네.”

하고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렇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어댔다. 호랑이는 그 집 창문 아래 쪼그리고 앉아서 곰곰 생각해 본다.

‘어떻게 생긴 아이일까? 여우도 곰도 무섭지 않다니!’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다시 배가 고픈 것을 느끼고 불쑥 일어났다.

“어마, 저것 봐! 창문 아래에 뒷산의 호랑이가 와서 앉아 있네.”

호랑이는 이 말을 듣자 가슴이 덜컥 해서 저도 모르게 얼른 자리에 앉고 말았다.

한참 후에 호랑이는 숨을 돌리고 방 안을 다시 엿보았다. 아이는 아직도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호랑이를 무서워하는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 태연하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아이일까?’

호랑이는 지금까지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나 짐승을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산천초목도 벌벌 떠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호랑이가 밖에 와 있다는데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게 아닌가? 호랑이는 점점 의문에 싸이고 있었다.

엄마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기를 달래기 위하여 여우와 곰과 호랑이까지 들어다 댔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가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계속해서 울고 있는 것이었다.

호랑이는 아이를 한번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아이가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가?’하고

바로 그때 방 안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 봐라 곶감!”

그러자 그처럼 줄기차게 울어대던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방 안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곶감!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것일가? 그건 아마 여우보다도 곰보다도, 그리고 나 보다도 더 무서운 것임에 틀림없다. 하여간 굉장히 무서운 것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자, 호랑이는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가슴이 자꾸 후들후들 떨렸다.

‘곶감이 만약 이곳으로 오기만 하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 호랑이는 단숨에 산 속으로 달려가고 말았다.

<한국문학총서 3 구비문학(해냄 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