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미국의 성지를 찾아서(2)/2010년 1월 15일>

뉴 잉글랜드 편

필그림(Pilgrim)성지

뉴 잉글랜드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보스톤에서 3번 도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40여 마일을 달리면 프리머스(Plymouth)라는 조그마한 해안 도시가 나온다. 조그마한 도시이지만 미국인이라면 너무나도 친근한 지명이며 누구나 한번은 가보았으면 하는 곳으로 미국의 성지 1번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버지니아의 제임스 타운이 영국인들이 신대륙에 정착하여 개발한 첫정착지이지만(1607년 5월) 순수한 종교적 동기에서 자기들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려 건넌 필그림들이 처음 북미 대륙에 도착하여 정착한 곳(1620년 11월)이 프리머스이다. 버지니아 제임스타운 개발팀 인솔자로 포카혼타스 전설을 남긴 스미스(John Smith) 대위가 1612년 이곳까지 왔다가 영국 서남부의 프리머스(Plimoth) 항구도시와 흡사하게 생겼다고 하여 필그림들이 오기 전에 이미 Plimoth 란 이름으로 지도에 올려있었다고 한다.

도로 안내판을 따라 타운으로 들어가면 눈 앞에 호수 같은 대서양이 펼쳐지면서 그리 크지 않은 한가로운 부두가 나온다. 해안을 따라 가다 보면 옛 로마나 희랍 신전의 축소판과 같은 하얀 대리석 기둥에 지붕을 얹은 건물이 나오는데 여기에 필그림들이 처음 상륙할 때 밟고 내렸다는 전설의 바위 'Plymouth Rock'이 1620 이라는 숫자도 선명하게 보관 전시되어 있다. ‘미국의 선조, 필그림들이 힘차게 첫발을 내어 디딘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되새기게 하는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이 바위는 1741년 까지도 해안에 그냥 묻혀있던 것을 당시 90세의 토마스 폰스(Thomas Faounce)라는 노인이 1623년(첫 필그림들이 도착한지 3년쯤 후) 이곳에 도착한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바위라고 주장하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고 1774년 이 바위를 파내어 특별 전시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바위가 깨어지는 바람에 한 쪽은 육지에, 다른 한 쪽은 해안에 방치되어 있다가 1880년 지금의 모양으로 붙여 전시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대리석 기둥들과 지붕이 달린 전시장은 1921년 National Society of Colonial Dames 에 의해서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위치의 정확성도 많이 훼손되었고 이 역사적인 바위에 대한 첫 번째 필그림들의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역사가들의 연구결과로 그 역사적 신빙성도 많이 떨어지지만 이곳을 찾은 순례자들에게는 프리머스의 인상을 선명하게 각인시켜 주고 있다.

'Plymouth Rock' 과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이 해안에 정박해 있는 17세기 풍의 선박' Mayflower II' 이다. 필그림들이 타고 왔다는 '메이프라워' 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당시의 영국 선박들에 대한 고증과 항해일지들을 참고하여 가능한 한 가장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이 배는 106. 5 피트의 길이로 1955-57년 사이에 영국에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배를 타고 어떻게 대서양을 건널 수 있었을까? 의문이 날 정도로 조그마해 보였지만 당시 제복을 갖추어 입은 안내자들의 설명을 통해 당시의 항해술과 항해기간 동안의 생활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며 필그림들의 어려웠던 항해를 조금은 실감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타운 여기 저기에 17세기 영국의 생활상이나, 이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들이 흩어져 있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First Parish Church' 도 있어 역사를 실감하게 한다. 1606년 영국 국교회로부터 분리하여 나온 필그림들이 이곳에 와서 세운 이 교회는 아직도 교인들이 모여 종교활동을 하면서 2006년에는 400주년을 축하하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곳이 'Plymouth Plantation'이다. 타운에서 7,8마일 떨어진 해변에 1627년 당시의 필그림 정착촌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고증을 거처 자재와 건축양식을 가장 유사하게 만들어 놓은 10여 채의 건물들과 농장 그 외 각종 시설물들에서 그 당시 의상을 입은 안내원들이 당시의 생활상과 모습을 재현해주고 있어서 400년 전 필그림들의 생활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갖게 하여준다.

모든 것들이 새로웠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든 것은 입구에 2층으로 지어진 집회소(Meeting House)였다. 통나무로 지은 건물의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쪽에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있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양쪽으로는 중,고등학교 체육관과 같은 계단식 나무의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어린이들과 부인들을 위한 자리이며 가운데에는 탁상을 중심으로 의자들이 놓여 있는데 성인 남자들의 자리라고 한다. 여기에는 따로 예배당은 없고 이곳을 예배실로도 사용하였다는 설명에 처음에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배당부터 따로 짓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영국국교회에 반대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예배드릴 곳을 찾아 온 필그림들이기에 영국국교회 성당과 같이 격식 차린 예배당이 필요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모여서 사심 없는 진정한 마음으로 토의할 때 그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신앙을 가졌던 그들이기에 대소사를 의논하는 집회소가 예배당이었고 예배처가 집회장이었으리라 생각되면서 미국민주주의의 산실을 보는감회에 젖었다.

언덕을 돌아가면 필그림들에게 옥수수 농사짓는 법과 칠면조 기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친절한 인디안 Wampanoag 들이 살던 움막과 셀터가 있어 당시 인디안들의 생활상도 함께 엿볼수 있었다. 그리고 필그림들과 인디안들이 함께 첫번째 추수감사절을 즐겼다는 귀에 박힌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였다.

다양한 필그림 성지 순례로 충분히 포만감을 느끼면서도 그냥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막상 필그림들이 1620년 11월 20일 뉴잉글래드에 도착하여 첫발을 내디딘 곳은 프리머스가 아니고 프리머스로부터 남동북쪽으로 팔을 굽힌 것과 같이 뻗어 있는 Cape Cod 반도의 북쪽 끝에 있는 Provincetown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후 프리머스 에 정착하기로 작정하고 정착준비를 하면서 아이들과 여인들은 2,3개월 동안프로빈스에 정박중인 배에서 생활하도록 하였다는데 처음 필그림들이 착육한 자리에는 동판이 설치되어 있고 252 feet(77미터) 높이의 100여년이 되었다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맑은 날에는 꼭대기에서 보스톤이 보인다고 한다. 이곳에도 해양 박물관과 함께 필그림들에 관한 재료들을 모아 놓은 박물관이 있어 여름철 피서객들도 쉽게 성지 순례자들의 반열에 낄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동양이나 유럽에 비하면 역사가 일천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역사적 유적은 물론 당시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기에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역사체험의 현장을 찾아 장거리 순례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듯 했다.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을 연재하였고 <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을 연재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