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단편   ▒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07년 4월>

<명작을 통해 보는 사랑>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
끊임없이, 그리고 완전하게 몰입하여 사랑하라. 바르고 고른 것, 현명하고 어리석은 것을 떠나서 사람들은 당신이 지닌 사랑의 깊이를 사랑할 것이다.

퇴직한 팔등관의 딸인 올렌키는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지금 병들어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사랑한 적도 있고 숙모를 좋아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여학교에 다닐때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남자 선생님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녀는 조용하고 온유한 성격을 지녔고 정도 많았다. 눈매는 다정스럽고 부드럽고 건강했다. 유쾌한 얘기를 들을 때 그녀 얼굴에 깃드는 착한 미소를 보면 남자건 여자건 그녀를 더 없이 귀여운 아가씨라고 생각했고 그럴때 여자들은 정에 겨워 그녀의 두 손을 꼭 쥐곤 했다.

그녀 집에는 유원지에서 공연 사업을 하는 쿠킨이라는 사내가 세들어 살고 있었다. 어는 날 그는 허공을 쳐다보며 울랭카에게 말했다.

"아, 또 비가 오는군. 우리가 산다는 건 바로 이런 거예요. 정말 울고싶어지죠. . . 멋대로 쏟아지라구! 차라리 유원지 전체를 물바다로 만들어 버려라. 배우들도 나를 고소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고소하라구!."

그때 그의 얼굴에는 깊은 좌절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것이 올렌카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가져 왔다. 그녀는 쿠킨의 불행때문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곳 결혼했고 그녀는 남편을 도와 사무실에서 지출 내역을 장부에 기입하거나 배우들의 급료를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하고 훌륭한 것은 연극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우이하고 교양있는 인간미 있는 인간이 되는 길은 연극 안에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매우 진지하게 걱정도 했다.

"구경꾼들이 기대하는 건 언제나 유랑극단의 신파극이에요. 어제 우리가 개작한 <파우스트>를 공연했더니 자리가 거의 텅 비더라구요. 저속한 걸 올렸더라면 아마 대 만원이었을 거에요."

그녀의 말과 행동은 점점 남편을 닮아갔다. 남편이 관객이 예술에 대해 무식하고 냉정하다고 말하면 올렌카도 요즈음 뭘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니까요, 하고 말하며 남편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겨울이 지나자 올렌카는 사랑하는 기쁨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름답게 빛났다. 그렇지만 남편은 점점 마르고 기침이 심해졌다. 그녀는 남편에게 보리수 꽃즙을 짜주거나 따뜻한 자기의 쇼올을 어깨에 둘러주며 위로와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에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러나 남편은 극단을 모집하러 모스크바로 떠난 후 얼마 았다가 그곳에서 갑자기 병이 도져 죽었다. 따라서 올랜카의 행복도 짧게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석달이 지난 어느 일요일, 올랜카가 상복 차림으로 미사를 마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녀는 우연히 큰 원목 도매상에서 관리를 맡고 있는 이웃집 남자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그는 의젓한 말로 그녀를 위로했다.

"이세상 모든 것에는 운명란 것이 있습니다. 다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굳게 하고 참아내야만 하는 겁니다. 올랜카."

그날 이후로 올랜카의 귀에는 그의 의젓한 목소리가 계속 들리고 눈을 감으면 그의 새까만 수염이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상대방 남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어 그로부터 사흘 후, 안면이 조금 있는 부인이 차를 마시러 와서 그 남자 이야기를 슬쩍 꺼내며 사람이 좋다느니, 성실하다느니 칭찬을 늘어 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뒤에는 그 주인공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겨우 10분 정도 머물렀지만 올렌카는 사랑의 열병에 잡힌 듯이 그에게 푹 빠져 날이 새자마자 심부름꾼을 보내 중년부인을 불러왔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올랜카는 남편을 도와 저녁때까지사무실에서 물건 값을 받고 원목을 보내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요즘은 목재 값이 글쎄, 해마다 2활이나 오르고 있어요. 원목을 사려면 모기료프 마을까지 가는데, 거기서 여기까지의 운임이 엄청나답니다. 어휴, 그 운임!"

그리고는 징그럽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곤 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목재상을 해온듯이 세상에서 목재를 가장 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밤이면 두껍고 얇은 판자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는 꿈을 꾸곤했다.

그러나 그 행복한 결혼생활도 6년 동안 뿐었다. 남편이 어느날 감기가 들어 자리에 눕더니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이젠 난 어떻게 살아나가란 말이에요.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친척이라곤 아무도 없는데. . ."

그녀는 6개월동안 수녀처럼 집에 들어밖혀 지냈다. 그러나 다시 얼굴을 나타냈을 때는 다시 예전의 귀여운 미소를 짓고 동네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동네 가축들은 병이 많이 걸리는데 미리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들은 가축이 병에 걸리면 언제난 병 애기만 하지 예방할 생각은 안해요."

이런 의견은 그녀 집 별채에 세들고 사는 군대 수의사가 언젠가 했던 말들이었다. 누구에게든 열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녀는 이번엔 그 행복을 자기집 별채에서 찾아낸 것이다. 다른 여자였다면 세상의 비난을 받을 일이었지만 올렌카였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나쁘게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수의사가 부대를 따라 시베리아 근처로 가버렸기 때문에 올렌카의 행복도 잠깐 사이에 끝나버렸다.

사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올랭카는 아무 것도 할 말이 없었고 얼굴에 떠오르던 그 싱그럽던 미소도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기의 혼과 육체를 송두리채 바치는 사랑, 자신에게 생각과 삶의 향료를 지정해 주는 사랑이었다.그러나 그런사랑은 이제 찾아오지 않았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올렌카의 집은 녹슬고 기울어졌고, 정원에는 잡초와 쐬기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그녀도 이제는 늙어서 예전의 아름다움은 찾아 볼수 없었다.

교회종 소리가 바람곁에 실려오거나 갑자기 추억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가슴이 일렁이며 서글픈 눈물이 흘렀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뿐이고 곧 그녀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상태가 되어 무슨 목적을 갖고 사는지 알 수 없게 돼어버렸다.

7월의 어느 무더운 날에 마을의 가축떼가 먼지를 일으키며 문앞을 지나간 후였다. 수의사가 다시 찾아왔다. 그도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져 있었다. 올랜카는 추억이 되살아나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말했다.

"아내와 화해하고 정착하기 위해서 왔다오. 아들도 중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었구."
"부인은 어디 계세요,"
"아들과 연인숙에 있소. 난 셋짐을 구하려고 다니는 중이라오."
"어머, 그렇다면 이집으로 오세요. 집세같은 건 한 푼도 받지 않을테니까요."

그녀는 본채를 수의사 가족에게 내주고 자기는 별채로 옮겨 살았다.

수의사의 아들은 열 살로 오동통한 볼과 이름다운 파란 눈을 갖고 있었다. 소년이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고양이를 쫓아다니면서 집안 가득 생기발랄한 소리를 퍼뜨렸다.

'정말 귀엽고 똑똑하게 생긴 아이야, 살결도 희고 . . .'

감동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애를 바라보며 올렌카는 생각했다.

어느날 소년은 책을 앞에 놓고 큰소리로 읽었다.

"섬이라는 것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땅을 말하며 이것도 육지의 일부분이다."

올렌카는 그 소리를 듣고 자기도 그대로 따라서 '섬이라는 것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땅을 말하며 . . .'하고 중얼거렸다. 아, 오랜 세월 동안의 침묵과 공허가 깨지고 다시 그녀의 생각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반년이 지나자 그녀는 다시 젊어져서 눈동자가 빛났다. 거리에서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고는 기분줗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귀여운 올렌카 아주머니, 요즘 잘 지내고 계세요?"

그러면 올렌카는 이렇게 말을 받는다.

"네, 전 잘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중학교 공부도 꽤나 어려워졌어요. 이제 겨우 1학년인 학생한테 라틴어를 번역하고, 시를 암기하는 숙제를 낸다니까요. 오늘은 거기다 한 가지 숙제를 더 줬어요."

이어서 그녀는 자기집 소년에게서 들은 선생들에 대한 소문과 수업 이야기등을 늘어놓는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처럼 그 얼굴에 피어나는 귀엽고 아름다운 미소를 즐겼다.

(안톤 체홉(Checkhov, Anton 1860-1904))은 한때 독일 영토였으나 후에 러시아의 영토가 된 Taganrog출신으로 의사개업을 하면서 주로 희곡과 단편들을 썻다.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로 단편문학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그는 <병동 6호실><어느 여인의 왕국> <농부들>등의 작품을 남겼다. 젊었을때 걸린 결핵으로 계속 투병하다가 4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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