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 Gallery>2007년 1월 1일

*해설을 곁들인 '명화감상'*파불로 피카소(1881-1973)의 <게르니카>

(해설 유동식)

<게르니카>

<게르니카>는 1937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 공군이 스페인 프랑코 정권의 용인하에 바로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함으로써 1,5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비인간적 사건에 대한 피카소의 분노를 표현한 그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본래적인 존재로부터 이탈한 오늘의 문명과 인간의 참상을 폭로한 종교적 그림이다.

"나는 전쟁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의 내 그림 속에는 전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어두움이 공간을 채운 흑백으로만 그린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의 실존상황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모든 형상은 형태적 변형(deformation)을 통해 표현되어 있다. 사물의 외형적인 이해를 버리고 본질적인 심층 구조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며, 동시에 현대의 부조리와 불안상황을 표현하는 형식이기도 하다.

왼쪽에 있는 황소는 광폭하고 음탕한 미노타우로스이다. 잔인한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서 있다. 20세기에 등장한 파시즘과 군부 독재정권들의 상징이다.

황소 턱 밑에서 죽은 어린이를 안고 울부짖는 여인은 바로 그 황소에게 능욕당한 민중들이다. 그 밑에는 부러진칼을 움켜 쥔 채 쓰러져 있는 죽은 청년이 있다. 인간의 미래가 죽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칼을 쥔 청년의 손 위에는 한 송이의 가냘픈 풀꽃이 피어 있다. 황소의 횡포도, 청년의 죽음도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승리의 의지와 함께 인류의 희망에 대한 복음적 원형이 포함되어 있다.

중앙에는 청년을 짓밟고 신음하는 군마가 있다. 죽음을 앞두고 몸부림치는 파시스트들의 단말마적인 신음이다.

오른쪽 납골당 속에는 울부짖는 어린이와 여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 한 가운데에 있는 여인은 등불을 움켜쥔 굵은 팔뚝을 밖으로 쑥 내밀고 있다. 납골당을 뚫고 나온 구원의 등불이다.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그 현장에 하늘의 등불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현실을 소재로 한 인간의 실존상황과 희망을 그린 오늘의 종교적 예술이다.

피카소의 예술은 20세기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실상을 폭로한 사건들이었다.

(이 해설을 쓰신 素琴 유동식님은 연세대학교에서 은퇴한 신학자로 한국의 토착종교와, 예술에 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며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풍류도와 예술신학'등 다수의 저서가 있습니다.)

늘푸른나무(www.webegt.com) -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