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도와 한국문화 -유동식-

1) 인간의 심성과 민족적 영성
2) 종교문화사의 풍류도적 구조
3) 한국 기독교의 종교문화사적 위치와 사명

1)인간의 심성과 민족적 영성

인격을 구성하고 있는 심성을 편의상 세 가지로 구분하고 이것을 동심원으로 그려본다. 외곽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감성이다. 이것은 생물이 지니고 있는 본능적인 감각기능을 한다.

중간에 있는 것은 이성이다. 이것은 합리적인 사고 기능을 한다. 역사적으로 10만년 전에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영성이다. 이것은 종교적 자각 기능을 한다. 곧 자기부정을 통해 초월적 절대자를 인식하는 기능이다. 말하자면 영성은 종교적 심성이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1000년에 걸친 정신혁명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히브리 계통의 선지자들과 헬라계통의 철인들, 그리고 동양의 노자, 공자, 석가여래등 성인들을 거쳐 그리스도에 이르러 구체화 되었다. 이 시기가 말하자면 인류의 문화사를 굴러가게 한 차축시대이다. 그러므로 영성은 문화의 고향이요, 인간의 얼이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감성과 이성이 있듯이, 영성이 또한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인격적인 차이가 나는 것은 이 세가지의 심성중에 어는 것이 보다 지배적이냐에 달려 있다. 본능적인 감성에 지배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합리적인 이성이 지배적인 사람이 있다. 그와 동시에 사욕을 버리고 하늘의 뜻에 따라 살려는 영성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뿐만 아니라 집단 또는 민족에 있어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단적인 예가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부하는 종교적 유대민족의 경우와 유물사관에 입각한 공산주의 집단의 경우일 것이다.

또 하나 보편적인 영성임에도 불구하고 민족 집단 간에는 각기 그 특성을 달리한 민족적 영성이 있다. 그것은 민족 집단의 오랜 생활문화사를 통해 형성된 집단 무의식이 침전되어 보편적인 영성과 결합된데서 형성된 것이다.

민족 공동체에는 그들에게 공통된 꿈(vision)이 있다. 그 꿈을 실현하도록 공동 노력해가는 것이 그 민족의 생활문화사를 형성한다. 따라서 민족적 영성 안에는 그 민족의 꿈이 들어 있다.

고대 민족 공동체의 꿈을 담고 있는 것으로는 그들의 신화와 제례가 있다. 제례는 행위로 표현된 신화요, 신화는 언어로 표현된 제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대표적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와 고대 부족 연합국가였던 부여, 고구려, 예, 삼한등의 제천의례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의 구성요소는 그 의미 표상의 단위를 따라 다음과 같이 셋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느님과 그의 강림에 대한 신앙이다. 이것은 북방 수렵문화를 배경으로 한 신앙형태이다.

하느님(天神)은 고조선인들의 기본적인 신앙 대상이었다. <삼국유사>를 엮은 일연은 불교의 호법신인 환인제석의 이름을 따서 하느님을 환인(桓因)이라 했다. 하느님에 대한 이두식 표기이다.

하느님은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 보냈다. 환웅이 강림한 곳은 태백산 신당수 밑이라 했다. 이것은 우주산과 우주목에 대한 보편적 신앙에 속한 표현이다. 한국의 보편적인 산신 신앙과 서낭당 신앙은 여기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

둘째는 지모신과 그의 승화에 관한 신앙이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동굴속에 삼칠일간 머물었더니 여자의 몸이 되었다고 했다. 빛 없는 동굴에서의 금기는 자기 부정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곰이 여인이 되었다는 것은 승화된 재생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그는 환웅과 결합하여 단군을 낳을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동굴은 모태를 상징하며, 곰 여인은 지모신(地母神)이요, 생산신을 의미한다. 이것은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한 신앙형태이다.

셋째는 하늘과 땅과 인간의 창조적 관계구조이다.

천신 환웅과 지모신 곰 여인의 혼인으로 인해 태어난 이가 단군왕검이요, 그가 새로운 문화질서인 고조선을 창건한 시조라고 했다. "단군왕검"이란 명칭은 알타이어의 하늘을 뜻하는 "텡그리"와 신을 뜻하는 "감"에서 유래한 듯하다.

건국신화는 문화창조 신화이다. 그리고 그 창조의 틀이 되는 것은 하느님과 지모신과 인간과의 융합이다. 여기에 삼태극으로 표현되는 천. 지. 인 삼재의 창조적 원융사상의 원형이 있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천신 환웅과 지모신 곰 여인과의 결혼은 북방 수렵문화와 남방 농경문화의 융합을 상징하는 것이며, 거기에서 태어난 단군은 제3의 한국문화권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종교적 이식을 형성케 한 문화적 배경은 북방문화와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제3의 문화권이다.

중국의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부여, 고구려, 예, 삼한등 고대 한국인의 제천의례에는 공통된 구조가 들어 있다. 그중 전형적인 표현은 예의 무천(舞天)이다.

"언제나 10월에는 천신에게 제사했는데 밤낮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술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 이름을 무천이라 하였다. 또 호랑이를 신으로 제사하였다."

제천의례에 나타난 신앙 형태를 요약해 본다.

첫째,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신앙하였다. 때로는 산신이나 조상신등을 함께 제사하기도 했지만 공통된 주신은 하느님이었다.

둘째, 가무강신과 지모신 신앙이다.

제례양식은 한결같이 밤낮으로 술 마시며 춤과 노래로써 진행되었다. 음주가무는 사람들을 황홀경으로 이끌어 간다. 거기에서 그들은 강신체험을 했다. 신인 합일을 통해 풍작과 평화를 기원했다.

한편 무아경에 이르는 가무강신 체험은 지모신의 죽음을 통한 재생이라는 종교적 승화의 재현이기도 했다.

셋째, 기복 신앙이다.

제례의 목적은 복을 비는데 있었다. 농사를 전후한 5월과 10월에 제사했다는 것은 풍작을 비는 농경의례이다. 부여의 경우와 같이 전쟁이 났을 때에도 제사 지냈다는 것은 승전과 함께 평강을 비는 제례였다.

요컨데 고대 한인들의 종교의례의 목적은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기원하는데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노래와 춤을 통한 강신 곧 한나님과의 교제에서 가능했다. 이것은 신화가 제시한 구조의 행위적 재현이다.

제례는 신화적 창조원리를 반복하는 행위였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됨으로써 평강과 풍요로운 삶을 도모하는 종교의례였다.

이러한 전통을 진흥왕은 풍월도라 하고 이것을 그는 화랑제도를 통해 교육이념으로 승화시켰다. 이것이 결국 민족적 영성인 풍류도로 다시 승화된 것이다.

2) 종교문화사의 풍류도적 구조

한국의 종교와 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풍류도이다. 풍류도가 외래 종교들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전개시킨다. 그리고 그 종교가 실체가 되어 문화를 형성해 나간다.

종교를 받아 들이고 그 문화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것 역시 풍류도이다. 풍류도에는 민족적 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곧 한국의 종교와 문화는 "한 멋진 삶"의 실현을 위해 전개되어 왔다. 말하자면 풍류문화의 형성과정사인 것이다.

한국의 종교문화사는 제 단계로 전개되어 왔다. 곧 고대와 중세는 불교문화의 단계였고, 근세 오백년은 유교문화의 단계였으며, 현대는 기독교문화가 진행중이다.

각 종교마다 풍류도적 한 멋진 삶을 지향한다. 종교적 각성(한)을 토대로 윤리적 실천(삶)을 추구하며 문화, 예술적 유산(멋)을 만든다. 이것은 불교, 유교, 기독교에게 다 같이 적용되는 성격이다. 그러나 한편 종교마다 그 종교를 특정짓게 하는 특성 또는 강조점이 있다.

불교의 경우에는 종교적 각성과 함께 포월적 자유가 강조되어 있다. 일심(一心)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보면 "하나가 곧 일체요, 다양한 것이 곧 하나이다." 불교는 실로 '한'의의 종교라 하겠다.

유교는 윤리적 실천을 통한 평화를 강조한다. 자기를 극복하고 천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양하지만 그 목적은 가정과 나라에 평화를 초래하기 위해서이다. 유교는 곧 사람답게 살게 하는 '삶'의 종교라 하겠다.

기독교가 믿음으로써 영적 신생을 촉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과 공동체에 동참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과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예술가요, 그의 몸 된 신앙 집단은 예술 공동체이다. 기독교는 실로 창조적인 '멋'의 종교이다.

그리고 보면 한국의 종교사 전체는 하나의 풍류도를 따라 전개되었다. 불교의 종교적 각성(한)과 유교의 윤리적 실천(삶), 그리고 기독교의 예술적 창조(멋) 기능은 하나의 풍류 문화를 지향해 온 발전사였다.

풍류도는 세 양태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영성을 형성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종교사는 역사적으로 불교, 유교, 기독교라는 세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하나의 종교사를 이루고 있는 이 세 종교 사이에는 상호 유기적 관계가 있다.

종교와 종교사이에는 단절이 있다. 때로는 서로가 단절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종교 의식인 풍류도 안에서는 그러한 단절이 무의미하다. 불교문화는 천년에 걸쳐 우리들의 심성을 지배해 왔고, 유교는 오백년에 걸쳐 우리의 심성을 지배해 왔다. 우리들의 영성 안에는 이러한 종교의식이 침전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 기독교가 접목된 것이다.

한국의 세 종교는 우리들의 의식과 문화 속에서 접목관계를 이루고 있다. 접목이란 대목과 새순 사이에 생명이 오고 가는 유기적 관계를 말한다.

요컨대 한국의 종교사를 구성하고 있는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 사이에는 펴면적인 단절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인 종교의식에 있어서는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종교는 문화의 실체요, 문화는종교의 형상이라고 한다. 종교사의 구성과 특성은 곧 문화사의 구성과 특성으로 이해된다.

이것을 다시 통전적으로 본다면, 불교의 종교적 '한'과 유교의 윤리적 '삶'과 기독교의 예술적 '멋'이 하나로 어우러진 하나의 한국 문화가 된다. 여기에는 한국문화의 풍요성이 있다.

서구인이나 중동의 민족들은 대체로 기독교이든가 이스람등 하나의 종교만을 신봉한 문화사만을 가지고 있다. 동양의 민족들도 대체로는 불교든가 유교, 아니면 불교와 유교를 신봉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만은 불교와 유교를 통해 문화를 형성해 왔을 뿐 아니라, 현대에 와서는 절대 다수의 한인들이 서구의 기독교를 또한 수용하고 서구 문명을 도입하면서 우리의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인의 종교와 문화는 동,서양을 수렴한 풍부한 내용을 지닌 것이라 하겠다.

3) 한국 기독교의 종교문화사적 위치와 사명

한국의 종교문화사는 '한'의 종교로서의 불교문화의 시대를 거치고, '삶'의 종교로서의 유교문화의 시대를 지나 지금은 '멋'의 종교로서의 기독교문화 단계에 와 있다. 말하자면 풍류도의 본체인 멋의 위치에 기독교가 들어서 있는 것이다.

'멋'은 그 형상인 '한'과 그 작용인 '삶'을 내포하고 있다. '한'은 궁극적 실재에 입각한 종교적 초월성을 지니며, '삶'은 천성에 입각한 윤리적 현실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멋'은 이러한 '한'과 '삶'의 수렴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예술적 창조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사적으로 멋의 자리에 와 있는 한국의 오늘의 기독교가 지닌 중심 과제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어떻게 예술적인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느냐에 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할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꿈인 풍류문화를 성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써 야나기 무에요시가 말했던 한민족이 지닌 인류문화를 위한 "예술적 사명"을 또한 감당하게 될 것이다.

예술적 창조 작업의 원리는 기독교의 복음 곧 십자가와 부활에 있다. 십자가는 옛 존재의 부정이요, 부활은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다. 이것은 옛 존재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없애 가지고" 새로운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존의 옛 흙을 써서, 그러나 그것을 "없애 가지고" 새로운 존재인 인간을 창조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나'라는 옛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존재 안에는 옛 존재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풍류도가 지닌 "포함삼교"의 원리이기도 하다.

한국 기독교가 담당해야 할 예술적인 새로운 문화의 창조는 전통적인 불교문화와 유교문화를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다. "없애 가지고", 곧 그 문화들을 끄러 안고 그 문화들을 써서 새로운 가치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기독교가 지향하는 예술문화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적 전개이다. 그것은 곧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기쁨이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의 전개이며, 한 멋진 삶이 실현되는 풍류문화의 전개이다.

(이글을 쓰신 素琴 유동식님은 연세대학교에서 은퇴한 신학자로 한국의 토착종교와, 예술에 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며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풍류도와 예술신학'등 다수의 저서가 있습니다. 본 논문은 '풍류도와 예술신학'에 실린것으로 필자의 승락을 받아 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