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과 풍류도 -유 동 식 -

1.) 화랑과 화랑제도

단재 신채호(1880-1936)는 화랑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랑은 일시 신라 발흥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후세에 한(漢)문화가 발호하여 사대주의파의 사상과 언론이 사회의 인심, 풍속, 학술을 지배하여 온 조선이 중국화하려는 판에, 이를 반항 배척하여 조선이 조선되게 하여 온자는 화랑 이다. . . 그러므로 화랑의 역사를 모르고 조선사를 말하려 하면 골을 빼고 그 사람의 정신을 찾음과 한가지인 우책이 다"(조선상고사 下)

화랑은 조선을 조선되게 하는 얼이기 때문에 화랑을 모르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화랑이란, 인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인의 주체성을 초래하는 민족적 영성 또는 얼로서의 화랑도(花朗道) 곧 풍류도(風流道)를 뜻한다.

신라 최초의 교육제도였던 화랑제도가 형성된 것은 진흥왕(540-576 AD) 때였다. "왕은 나라를 흥하게 하려면 모름지기 풍월도(風月道)를 먼저 왕성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삼국유사). 풍월도는 이미 있었던 민족적 얼이다. 그것은 고대 제천의례(祭天儀禮)를 통하여 이미 표출된 민족적 영성이다. 항상 시월이 되면 노래와 춤으로써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왔던 것이다. 곧 가무강신하여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됨으로써 소원을 성취한다는 종교적 구조를 가진 제례이다. 이것을 되살려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 진흥왕의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준수한 청년을 뽑아 화랑을 삼고 그 밑에 청소년들을 모아 교육하도록 했다.

화랑도의 수련을 위한 교육과정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첫째는 도의로써 서로 인격을 닦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이행해야 할 도리를 터득하게 했다. 그 내용은 유. 불. 선 삼교의 기초로 한 것이다.

둘째는 서로 노래와 춤을 즐기는 일이다. 화랑도를 풍월도 또는 풍류도라고도 하듯이 그들이 중요시한 것은 가무와 시가등 예술이었다. 이것은 가무로써 제사지내던 제천의례에 뿌리를 가진 종교적 예술이다.

셋째는 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일이다. 명산대천에는 하늘의 영이 임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산수를 찾아 논다는 것은 자연의 정기를 호흡함과 동시에 그곳에 강림한 하늘의 영과 교제하는 종교적 의미기 들어 있었다.

요약한다면 화랑제도는 전통적 하느님 신앙에 입각한 국가적 청소년 교육기관이다. 그 교육과정의 내용은 인생의 도리를 배우고 예술적 가락을 즐기며, 자연 속에 유오하는 것이었다. 그중에도 특징적인 것은 가락을 즐기는 풍류집단이었다는 데 있다..

2.)풍류도와 그 구조

고대의 제천의례와 화랑교육을 통해 나타난 한국인의 영성을 통찰하고 이것을 해석한 이는 고운 최치원이었다. 그는 화랑 난랑의 비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나라에는 깊고 오묘한 도가 있다.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를 설치한 근원은 선사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를 포함한 것이요, 모든 중생과 접하여서는 그들을 인간화 하였다".(삼국사기, 신라본, 진흥왕).

우리나라의 고유한 도(道) 곧 민족의 영성을 '풍월도'라고 한데 대해, 화랑제도와 교육을 통해 승화된 형태로 나타난 영성을 최치원은 풍요도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로 유교, 불교, 도교 등 삼교의 종지를 다 포함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접해서는 그들을 교화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한국인의 얼이라 했다.

풍류도가 얼의 본체라고 한다면, 포함 삼교는 그 양상이요, 접화군생은 그 작용이다. 그러므로 이 셋은 하나의 실체를 표현하고 있다. 곧 셋이면서 하나의 구조를 가진 것이 풍류도이다.

'풍류'라는 한자는 동양인에게 곧통된 이상경에 대한 미적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인생과 예술과 자연이 혼연 일체가 된 경지를 말한다. 화랑들이 인생의 도리를 익히고, 가락을 즐기며, 명산 대천에서 놀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풍류를 터득한 풍류도인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고유한 한국적인 영성으로서의 풍류도라 항 때에는 일반적인 풍류의 의미와는 구별되는 성격이 들어 있다.

풍류라는 한자는 '부루'(불, 밝, 하늘)라는 우리말의 이두식 표기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풍류도는 제천의례나 화랑교육에서 보았듯이 하늘님을 섬기는 천도(天道)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풍류는 종교적 기초를 가진 미의식이다.

실로 풍류도는 유, 불, 선 삼교를 포함한 것이라 했다. 유교의 본질을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데서 찾고, 불교의 본질을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찾으며, 도교의 본질을 "사심 없이 자연의 법도에 순응한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 이 세 종교는 다같이 이 세상에 집착한 자아를 극복하고 하늘이 내린 천성으로 돌아가기를 가르치는 것이라 하겠다. 천성이란 다름아닌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본성이며,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런데 노래와 춤으로써 하늘님을 섬기던 고대의 제천의식을 이어받은 화랑들의 가락은 하늘의 영과의 교제였으며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가무강신의 체험이었다. 곧 자아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로써 삼교의 종지를 포함할 수 있었다. 풍류도는 바로 이러한 신인합일의 종교체험 위에 서있는 영성이다.

풍류도는 동양의 성현들을 통해 나타났던 인생의 도리를 그안에 다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풍류도를 지닌 사람은 사심 없이 일을 처리하고(도교), 들어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며(유교), 모든 악한 일을 버리고 선을 행한다(불교)고 했다. 풍류도는 실로 한국인을 교화하여 '사람다운 삶'을 이루게 하는 우리 민족의 얼이다.

3) 한, 멋, 삶

풍류도는 어떤 고대종교에 대한 명칭이 아니다. 각종 종교를 형성케 하고,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며, 이것을 전개시키는 종교문화의 장이며, 정신적 원리가 되는 영성이요 민족의 얼이다. 풍류도는 또한 단순히 고대에 있었던 영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문화사 전체의 기초가 되어 온 민족적 영성이다. 곧 현대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도 살아 있어 작용하는 우리의 심성이며, 한국문화의 기초 이념을 이루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따라서 풍류도는 한국인에게 불변의 원리이며, 보편적인 것이다. 개인적인 자각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우리들 속에 있어서 작용하는 일상적인 것이다. 따라서 풍류도는 우리의 일상적인 말로써도 표현되는 것이어야 한다.

'말'이란 이념의 상징적 표현이다. 우리에게 고유한 삶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이념을 나타내는 데 적절한 말은 당연히 무리말이어야 한다. 한문과 같은 외국어에 의한 표현은 결국 우리의 이념과 그 의미에 대한 근사점을 나타내는데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문으로 표현된 개념을 우리들의 일상용어로 번안해 본다.

첫째, 풍류의 의미 내용을 나타내는 적절한 우리말은 '멋'이다. '멋'은 외국어로 번역할 수 없는 우리 특유의 미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인생이 개입된 예술적 미에 속한다. 따라서 자연미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상적인 실존의 기초 개념을 포함한 말이다. 지성과 용모가 탁월할지라도 '멋'이 없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으려고 한다.

멋의 개념을 일상용어의 문맥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생동감과 율동성을 동반한 흥의 뜻이다. "멋지게"는 "흥겹게"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노래와 춤으로써 신을 내리게 하는 종교적 체험에 그 뿌리를 가진 것이어서, 때로는 '신난다'라는 말로써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의 예술이 지닌 특성의 하나로 곡선미를 꼽는다. 곡선이야 말로 멋의 상징적 표현 양식일 것이다.

둘재로는, 초월적인 자유의 개념이다. 네 자유의지대로 하라는 뜻에서 "멋대로 하라"고 한다. 한편 "속도 모른다"는 뜻에서 "멋도 모른다"고 한다. 곧 멋을 자아내는 자유라는 것은 그 속에 어떠한 실체나 실력을 간직한 유연한 초월자의 그것을 뜻한다. 멋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어떠한 처지에서도 유유자적할 수 있는 사람의 자태이다.

셋째로는, 서로 호흡이 맞는다는 뜻에서의 조화성이다. 주어진 환경에 조화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멋 적어 한다". 남녀의 궁합을 보거나 집터의 풍수를 보는 것도 일종의 조화를 찾는 멋의 감각일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조화는 천, 지, 인 삼재의 원융무애한 경지이다. 우리는 곧잘 이것을 삼태극의 형상으로써 상징화한다. 그러나 멋을 자아내는 조화는 반드시 균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균형의 균형 속에 멋의 조화를 찾는것이 한국미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멋'이란 세속을 초월한 종교적 자유와 삶에 뿌리를 내린 생동감과의 조화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 풍류도란 실로 "멋의 길"이다.

둘째, 풍류도는 유, 불, 선 삼교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 이러한 포괄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우리말은 '한'이다.

'한'은 수량적으로 하나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 '하나'는 절대다수의 개념을 가진 것이어서 포괄적인 전체를 나타낸다. 의상(義湘)의 <화엄일승법계도>에서 "하나 안에 일체요, 여럿 안에 하나, 하나가 곧 일체, 여럿이 곧 하나. 한 티끌 안에 우주가 들어 있고, 모든 티끌이 또한 그러하다"고 했을 때의 '하나'가 곧 '한'이다.

'한'은 또한 크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대전을 '한밭'이라고 한다. 위대하다는 뜻에서 신라의 왕을 불러 한(汗), 또는 간(干)이라 했다.

크고 전체라는 뜻에서 天은 '하늘'이요, 우주는 '한울'이다. 거기에 인격적인 존칭을 붙인 것이 '한님' 곧 하느님이요 하나님이다.

빛으로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모시고 해뜨는 동방을 향해 이주해 오던 고대 우리의 조상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불러 '한'족이라 했다. 오늘의 '한'국은 여기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한'의 참 근거는 '한님'과 우리가 '하나'로 통합되는 데 있다. 이런 뜻에서 '한족'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셋째, 풍류도는 중생들로 하여금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한다. 이러한 인간화 작용을 나타내는 적절한 말은 '삶'이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생명을 나타내는 말인 동시에 사회학적인 삶, 곧 살림살이를 뜻하기도 한다. 이것이 '사람'이라는 인간 개념을 형성한다. 사람이란 문화적 가치를 생산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풍류도가 뜻하는 '삶'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다. '삶'이란 실로 '사람'의 준말로 이해된다.

이상과 같이 풍류도를 우리들의 일상적인 말로써 풀이해 보았을때 멋(體)과 한(相)과 삶(用) 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 개념이요, 셋이면서 하나를 이루는 개념이다.

'삶'이 사회 윤리적 존재를 뜻하고, '한'이 영적, 종교적 존재를 뜻한다면, '멋'은 창조, 예술적 존재를 뜻한다. 이 셋이 실은 하나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한인이라는 민족공동체가 오랜 세월을 통해 추구해 온 것은 바로 이러한 풍류도를 터득한 인간과 문화였다. 그것은 곧 "한 멋진 사람"이며, "한 멋진 삶의 문화"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