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가 -고 은-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가 우리를 우리의 하나하나를 우리는 다 빼앗겼다 백의 인민 2천만 동포는 눌렸다 총 맞았다 그리고 끌려갔다 내 땅과 내 말 아 뼈저린 내 말 한 마디 내 권리 내 쌀과 보리 내 이름 석자까지 석양머리에 빼앗겼다 놋쇠 숟가락 몽댕이까지 아 가도 가도 황톳길 돌멩이까지 빼앗기고 얼마나 기나긴 나날이었던가 일제 36년 내 헐벗은 몸뚱이 하나 죽어 가면서 죽어 가면서 죽어라고 지켜온 몸뚱이 하나 혈혈단신 이것 하나로 역사이던 날 암흑이란 암흑 찢어지던 날 1945년 8월 15일 그 날을 맞았다 두팔 벌려 맞았다 얼마만이냐 방방곡곡의 만세소리 종이 깃발 소리치던 만세소리 얼마만이냐 얼마만이냐 해방이야말로 한 편의 시 아니냐 아니다 역사였다 역사의 시였다 이 기쁨 무엇이냐 이 기쁨 꿀꺽꿀꺽 삼키며 이 기쁨 무엇이냐 놈들은 우리를 찢어버렸다 기쁨이야말로 하나를 둘로 만들었다. 놈들은 우리를 쪼개었다 우리를 남과 북 영영 갈라놓았다 우리는 무엇이냐 우리는 또 무엇이냐 해방의 그날 기뻐하다가 한 손에 낫 한자루 들지 않았다 입 가지고 입으로 안된다 안된다 소리 하나 내지르지 않았다 까놓고 말하자 놈들은 해방군이 아니라 우방이 아니라 놈들은 적이고 우리는 천치였다 바보였다 분단은 놈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너와 나에게 책임이 있다 너와 내가 갈라진 것이다 갈라진 것이다 경의선이 끊어졌다 멀고 먼 두만강이여 우리의 기쁨은 끝내 기쁨이 아니었다 꿈결이었다 끝내 두동강난 땅바닥이었다 가거라 38선이라고 노래하는 슬픔이었다 슬픔이 아니라 아픔이었다 어둠이었다 해방이 아니라 분단이었다 일제보다 더 악독한 원수였다 우리는 겨우 가거라 38선이라고 노래했다 이 얼마나 궁핍한 일이냐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냐. *역사비판 창간호(1985년 여름)에 실린 고은 시인의 권두시 '40년'에서 해방부분을 옮겼습니다. 1933년생인 시인은 세계 한민족 작가연합 소속 민족시인으로 최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게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