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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11(화)
선비들의 지혜를 찾아-박제가의 <궁실(宮室)>  
<늘푸른나무/ 문화산책/2017년 3월>

박제가의 <궁실(宮室)>


*박제가의 합리적인 사상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낸 글이다. 이조의 선비들은 ‘초가삼간’을 풍류라하여 예찬했었다. 박제가만이 처음으로 한국인의 그 초라한 집을 비판하였다. 박제가의 건축론이라고 할 수 있는 <궁실 1,2>를 소개한다

1
서양 사람들은 집 짓는 방법을 들어 보니 그들은 흙을 불에 태워서 벽돌을 만들어 집을 만들므로 천년이 되어도 개수(改修) 한번 하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경비를 더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장화와 아방과 같은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니, 후세 제왕으로 하여금 다시 궁실을 짓기 위한 백성들의 노력을 요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사람은 일찌기 앞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 모든 예능(藝能)이 묵고 거칠어 날마다 의논만을 일삼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국민은 의지가 정해 있지 못하고 나라에는 당연히 시행해야 할 법이 없으니 그것은 모두 고식적인 생활만 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식적인 태도가 끼친 피해를 설령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국민이 궁하고 재정이 빈약하여 나라꼴이 되지 못한 데까지 미치는 것이다.

가령 벽돌을 사용하여 담을 쌓아 수백년이 되어도 그 담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다시 담을 쌓기 위해 걱정하거나 노력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얼마나 경제적인가? 이밖의 일도 이것으로 미루어 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본다면 한 달도 못되어서 쓰러지는 담도 있고, 일년이 못되어서 쓰러지는 집도 있는데, 서양의 벽돌로 짓는 집에 비교하면 과연 어떻다고 하겠는가?

2
우리나라에 천호(千戶)라는 지방이 있는데 네모 반듯하고 쓸만한 집은 한 채도 없다. 경사진 땅에 깎지도 않은 나무를 새끼로 얽어 세우고 손으로 흙을 발라서 방이라고 만든다. 이렇게 되어 문에는 큼새가 생기며 이 틈새에다가 개가죽을 찢어서 붙이고 못을 박는다. 이 못은 옷을 찢는 등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쑥을 줄줄이 엮어서 그 못에다가 디룽디룽 걸어 둔다.

울툭불툭한 방바닥은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항상 비스듬해진다. 게다가불을 때면 연기가 실내에 가득하여 사람의 호흡을 막고,창구멍이 나면 헌 버선짝으로 틀어 막는다. 이 얼마나 유치한 일인가. 비록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눈으로 먹물 같은 것 한 번 본 적이 없고 손으로 정교한 것을 한번도 익힌 적이 없는 존재들이다. 모든 기예(技藝)를 자랑해야 할 공인(工人)들도 역시 이중에 사는 인간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 만사가 거칠고 추하여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습성이 대를 물리고 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현명한 인사가 있다면 이런 추상(醜相)을 하루바삐 청산해야 할 일이지만, 이미 이것이 풍속화하여 그들도 그러한 그러한 악풍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중국의 제도를 배워야 하리라고 본다.
여기서 다시 도성(都城)의 집들을 생각해 보자. 더러 호화스럽고 사치하다는 집에 가보면 역시 그 집도 청이나 방바닥이 편편하지 못하여 제대로 바둑판을 놓아둘 만한 곳이 없다. 만일 바둑을 두게 되면 언제나 한쪽 발로 판을 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좀 크집의 경우이고 작은 집에 한해서는 서로 고개를 들 수가 없고 누워도 발을 펼 수가 없으니, 이러한 집은 비록 백 채가 있다 하더라도 실상 중국의 열 채를 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만도 아니다. 하수도가 통하지 못하여 뒷간은 항상 차 있고,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아궁이까지 들어 천변(川邊)의 집들은 모두 범람하는 물에 위협을 당하고 있는 지경인데, 여름 장마철이 되면 어떤 참변이 생길른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것도 역시 거리거리 하수도를 파고 또 제방을 막는 중국의 제도를 빨리 모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집을 짓는 데 먼저 고하(高下)를 헤아리지 않고, 땅이 건조하여 약간 모래만 나오면 대뜸 집을 세운다. 그러다가 장마철을 당하여 침수가 되면 무한량으로 흙을 파서 막는다. 그리하여 길이 막히고 막혀 교통도 불편하게 되는 실정인 것이다. 이쯤 되면 가옥제도의 불규칙한 것은 의논할 필요도 없고, 나라의 제도가 또한 피폐하기 짝이 없는 것도 한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의 北學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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