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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11(토)
선비들의 지혜를 찾아-허균의 '유재론(遺才論')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7년 2월>

유재론(遺才論)-허 균
*유재(遺才)-인재를 버린다는 뜻

국가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여 백성이 제 갈길을 걷게하는 것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늘이 이 땅에 인재를 내는 것은 원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지위와 지체가 귀하고 높다 하여 그를 더 붇돋우려 하지 않고, 지위와 지체가 천하고 더럽다 하여 그에게 더 인색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에 명철한 사람은 그 연유를 밝게 통찰하고 초야에서도 인재만 있으며 채용하고 , 병졸출신이라도, 붙잡힌 사람이라도, 패망한 장수라도, 또한 도적이라도, 광대 중에서라도 인품과 자격만 있다면 서슴치 않고 등용했던 것이다. 등용한 그 사람은 사람의 자격에 따라 책임을 주고, 등용을 당하는 사람은 역시 자기 재주대로 힘을 다하기 때문에 나라가 다스려져 늘 부강의 길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인재를 등용하면 천하가 제아무리 넓다고 하여도 인재의 부족을 느끼게 되어 혹 한 사람이라도 그 재주를 썩히고 있을까 걱정되어 밥을 먹을 때에도, 잠을 자는 순간에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인데 웬일로 세상을 이끌만한 인재가 산림, 초택에 묻혀 있으며, 영웅과 호걸이 미관 말직에 묻혀 있어, 마침내 그 포부를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 참으로 얻기 어려운 것이 인재고, 있은들 써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세상인가 보다.

약소국인 우리 나라는 인재가 많지 않다. 그것을 옛날부터 뜻있는 사람은 걱정해 왔다. 그런데 우리 조선에 이르러서는 인재를 등용하는 길이 더 좁아졌다. 대대로 호화스러운 영화를 누린 문벌이 아니면 높은 벼슬을 할 수가 없으며, 초야에 묻혀 있는 선비는 제아무리 특별한 재주가 있어도 써주지 않고, 또한 과거출신이 아니면 높은 자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비록 덕망과 업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마침내 재상의 자리에 앉지 못하였으니, 하늘이 인재를 낼 때에는 누구나 평등하게 하였는데 호화스런 문벌이 아니라하여, 또한 과거출신이 아니라 하여 국한한다면 인재부족의 탄식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천년의 역사를 보거나 천하의 나라를 살펴보아도 서자(庶子)라고 하여 써주지 않고, 미천한 사람이라고 하여 써 주지 않는 제도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서자와 미천한 사람은 자손까지도 써 주지 않고 있다. 이렇게 못생기고 보잘것 없는 제도를 쓰고 있는 나라가 두 오랑캐의 사이에 끼어 있는데도 오히려 위정자들은 자기를 위해 주지 않는가 두려워할 뿐 일을 처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의 앞길을 막고 자탄하기를 ‘인재가 없다’ 하고 있으니, 얼마나 모순된 생각인가. 이웃나라들에 소문낼 수 없는 일이다.

한 여자가 원망을 품는 것도 하늘은 방심하지 않는 법인데, 지금은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자기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원망을 품은 사람이 반수를 초과하고 있으니, 천심도 평화로울 수가 없다. 옛날에는 영웅과 호걸이 흔히 미천한 가운데서 생겼는데, 오늘의 우리나라 같으면 있을 수없는 일이다. 하늘은 애써서 모든 이치를 갖추어 어진 인재를 냈는데 인간은 그들을 버리고 있으니, 이보다 역천(逆天)의 일이 더 큰것이 없을 것이다. 역천을 하고서 하늘의 영원한 복을 바랄 수 있겠느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이 무엇보다도 먼저 하늘의 뜻을 받들어 그대로 이행하면 큰 복을 영세토록 누리게 될 것이다.

*허균(許筠, 1569-1618)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이자 작가, 정치가, 시인이었다. 서자를 차별 대우 하는 사회 제도에 반대하였으며, 작품 <홍길동전>이 그의 작품으로 판명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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