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택의 <한국 개신교 초기 인물열전-조선신도 편(6)>
한국적 기독교의 초석을 놓은 길선주 목사
1천만 신도를 자랑하는 한국의 개신교회는 초기에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어서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초기 개신교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한국교회에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인물로 길선주 목사를 꼽고 있다.
평양신학교의 제1회 졸업생으로 장로교회 첫번째 안수목사 가운데 하나인 길선주 목사는 한인으로서는 최초로 한인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는 한편 부흥집회를 인도하면서 평양 대부흥운동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부흥의 불길을 전파했던 강력한 영성을 지닌 목회자였을 뿐 아니라 안창호 선생과 함께 독립협회 평양지부를 창설하고 3.1독립선언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하나로 서명하는 등 애국, 애족의 지도자로 진정한 종교지도자의 본을 보여준 귀감이었다. 특히 그가 교회의 3대 사명으로 꼽았던 기도와 성경공부와 전도는 한국교회의 근간으로 자리잡았으며 새벽기도회와 열정적인 부흥집회 그리고 통성기도 등은 한국교회의 전통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길선주 목사를 ‘한국교회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1869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무사(武士)인 심봉순의 차남으로 태어난 길선주는 어렸을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당시 풍속에 따라 열 한살에 신선행과 결혼하였다.
젊은시절부터 종교에 관심이 많아 유불선(儒佛仙)을 두루 섭렵하면서 도인으로서의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는 선도에 심취되어 도술(道術)에까지 능하였다. 그러나 10여년의 수련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차에 평양에서 떠돌아 다니던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평양에 괴상한 사람이 하나 나타났는데 양귀자(洋鬼者)로 새로운 종교를 전한다”는 것이었다. 1890년 서울을 거쳐 8월 평양에 온 모펫 선교사의 이야기로 이때 한석진이 평양에서 그를 돕고 있었다.
서양인이 전하는 새로운 종교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길선주는 마펫선교사를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눈후 ‘무언가 있는것 같기는 한데 좀 더 깊이 알아 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나라에서도 금하며 민족적인 긍지로도 인정하기 어려운 서양종교에 그가 관심을 가진데에는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었던듯하다. 그는 기독교에 관해 좀 더 알아보라고 마펫선교사에 소개했던 선도(仙道)의 도우(道友)인 김중섭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자신에게 전도하는데 충격을 받아 자신이 직접 기독교에 관해 공부하기로 하였다.
그는 한문으로된 관주성경을 가지고 공부했고 기독교인들이 소개하는 한문으로된 서적들을 구해 읽는 가운데 특히 ‘천로역정’을 통해 감명을 받고 “예수를 구주로 믿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기도와 성경연구에 힘쓰면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성령이 충만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 생각과 말과 행실이 전과는 판이했다. 이 기쁨은 일찍이 선도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했을 때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장대현 교회 교인들과 설립자 모팻(검은 양복의 서있는 사람) 선교사
1897년 세례를 받은 그는 1898년 30세 때 모펫 선교사가 설립한 평양 널다리골 교회(후에 장대현 교회로 바뀜)의 영수(담임목회자)가 되어 그리스도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오직 복음화에 힘쓴 결과 교회가 크게 부흥하여 1900년에는 장대현 언덕에 2000여명을 수용하는 웅대한 한식교회당을 건축하였다. 1902년에는장대현교회에서 장로와 조사로 부임하고 황해도와 평안도의 도(覩)조사역 까지 맡아 지방순회와 전도여행 등 바쁜임무가 주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그는 마펫 선교사가 세운 평양신학교에 학생으로 들어가 1907년 까지 5년동안 본격적인 신학수련을 받고 제1회 졸업생으로 장로교회의 첫번째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가 장대현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신학교육을 받는 동안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길선주 장로는 목회와 수업과 지방순회 등의 바쁜일정 가운데서도 언제나 성령이 충만하도록 기도와 성경읽기에 전력하여 ‘기도와 성경의 사람’이라고 불리었다.
18세기 영국에서 복음주의 운동으로 시작된 성령의 불길이 19세기 미국에서의 대각성운동을 거쳐 1905년 영국 웨일스에서 다시 일어나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오는 가운데 원산에서는 하디 선교사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들이 들려 오던때여서 당시 한국교회는 성령의 은사와 교회부흥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길선주 장로는 박치록 장로와 함께 장대현 교회에서 처음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는데 참석자들이 늘어나면서 부흥회와 같은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07년 신년 벽두, 장대현교회에서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부흥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크게 나타나 눈물의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이길함 선교사는 이때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초창기 한국교회에서의 부흥사경회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것이다.
“우리는 모두 뭔가 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람들이 연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흐느껴 울기도 하고 거꾸러지기도 하였다. 새벽 2시까지 회개의 울음과 기도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평양의 오순절]로 이어졌고 그 후 지방 교회에서도 여기저기서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한국의 초대교회는 말로 듣던 서양인들의 종교에서 자신들의 성령체험위에 세워진 교회로 반석 위에 선 교회가 되었다.
길선주 장로는 기일 선교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이처럼 나타내지 않았더라면 한국 교회는 외관상으로는 커졌을지 모르지만 사탄의 지배 아래 있었을 것이며, 몇 사람이나 구원을 얻게 될지 걱정스러웠을 것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길선주 목사는 기도하는 교회, 성경 읽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장대현 교회에서 목회를 계속했으며 하나님과의 영적 교류가 길어질수록 기도와 성경읽기에 정진, 평생에 구약 30독, 신약 100독, 요한서신 500독, 계시록은 만 (10000)독을 하면서 <말세론>이라는 저서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길선주 목사는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교회의 조직들을 재정비하는 일에도 관여하였으며 민족의 얼이 담긴 고유의 문화를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전통적인 가락들을 찬송이나 예배에 사용하는 한편 연극이나 성화(聖畵)들을 예배에 적극 활용하였다. 예술의 진수는 영계와 접해 있으며, 따라서 예술을 알지 못하면 종교의 심오한 진리를 체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장대현 교회를 사임하고 전국을 돌면서 사경회를 인도하던 길선주 목사는 지난해 뇌익혈로 쓰러져 요양중이었지만 1935년 11월 평남 강서군 고창교회에서 사경회를 해 달라는 초청이 오자 “내가 비록 병중에 있지만 어찌 성회의 사경을 폐하겠느냐 내가 강당에서 주의 복음을 외치다가 가는 것이 마땅치 않느냐”하고 강서로 떠나 집회를 인도하다가 다시 뇌익혈을 일으켜 유언도 남기지 못한채 1935년 11월 26일 친지와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67세로 파란 많은 생애를 조용히 마쳤다.
그가 하나님의 손에 잡히어 일구어 놓았던 평양의 장대현교회와 북한의 교회들은 유감스럽게도 해방후 북한이 공산치하에 들어가면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러나 그가 뿌려놓은 열정적인 말씀중심의 신앙의 유산들은 한국적 기독교의 초석이 되었으며 전통적인 문화와 예술 그리고 조국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지도자로서의 그의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평양 장대현 교회의 모습
*저자 함성택 님은 서울대 문리대를 중퇴하고 대만국립대학교에서 사학과와 법학대학원을 수료하고 미국 네브라스카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미국사를 전공하였습니다. 현재 시카고 한미역사학회 회장이며, 시카고 한인문화회관에서 프로그램 디렉터와 역사박물관 관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2013/6/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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