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문화신책/2012년 9월>

부부 각방

*이 자료의 원문은 조선 후기(19세기)에 편찬된 <청구야담> 권 1에 ‘영산업부부이방(營産業夫婦異房)’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머슴살이를 하던 노 총각이 장가를 들었는데, 부인이 치산을 위해 각방을 쓰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부가 살림을 모으기로 결심하고 , 각방에 거처하여 산아를 방지함으로써 재산의 축적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이야기이다. 치산을 위해 젊은부부가 각방을 썼다는 것은 비정한 일이다. 여기서 생리적인 본능까지 참아가면서 부에 강한 집착을 보인 당시 하층민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상주에 김생(金生)이 있었다. 나이 20이 넘었는데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남의집 머슴을 살았다. 여러 해 새경(머슴이 주인에게 한 해 동안 일해 주고 받는 대가)을 저축하여 26세에 비로소 장가를 들어 살림을 차리었다.

아내는 시집와서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 남편에게 말하였다.

“오늘부터 우리 윗방문을 막읍시다.”
대개 세 칸 집인데 아래 윗방 사이를 통하는 문이었다. 그래서 김생이 반문하였다.
“무슨 말이오?”
“우리 부부가 두 궁상끼리 만나 동침하게 되면, 자연 자녀를 생산할 터입니다. 만약 금년엔 아들을 낳고 명년엔 딸을 낳으면 자손을 보는 즐거움이 좋기야 좋지만은 그 동안에 식구가 불고 집에 우환이 생기면 들게 될 씀씀이를 무엇으로 당하겠어요. 당신은 윗방에서 집신을 삼고, 나는 아랫방에서 길쌈을 하여 10년을 기한하고 날마다 죽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며 재산을 모으는 것이 어떨까요?”
김생은 아내의 말을 이롭게 생각하여, 드디어 문을 폐쇠하고 부부가 따로 거처하였다.

날이 저물면 부부가 매일 밤 뒤안에 나가서 구덩이 여섯 일곱을 파고 들어왔다. 그리고 섣달이 되자 주머니를 많이 지어서 마을의 여러 집 머슴들에게 나눠 주면서 개 똥 한 섬으로 그 값을 정했다.

초봄이 되어 겨울 내내 얼었던 것이 녹아 풀릴 무렵, 파놓은 구덩이를 전부 개똥으로 메우고 봄보리를 뿌렸다. 그 해 큰 풍작이어서 보리를 거의 백여 짐을 거두었다. 또 이어서 담배를 심어 수십 냥 돈을 손에 쥐었다. 이처럼 근면하게 하여 6,7년이 지나자 돈과 곡식이 집에 가득 찼으나 여전히 죽으로 끼니를 삼았다. 9년을 마치는 섣달 그믐날에 남편이 말했다.

“이제 10년이야, 오늘은 밥을 하지.”
아내가 책망하였다. “우리가 10년을 기한하고 죽을 먹기로 작정한 걸 하룻밤 새를 못참고 어겨서야 되겠어요?”
김생이 무안하여 물러섰다.

10년 후에 과연 한 도내의 갑부가 되었다.
김생은 오랫동안 생홀아비로 지낸 셈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동침을 요구하자 아내는

"우리가 이미 부자가 되었는데, 이 누추한 집에서 동침할 수 있겠어요. 조금만 기다려요”하고 집을 크게 짓고 그곳에 들어가 살았다.

김생 내외는 처음부터 서로 과년에 만났거니와, 다시 10년을 경과하고 보니 이제 자식을 생산할 희망이 없었다. 김생은 이것으로 근심했다. 아내가 말했다.

‘우리 살림이 이만하니 반드시 주장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원근의 일가들을 두루 알아보아 쓸 만한 애를 골라 양자를 삼으면 뜻이 안 맞는 자기 소생보다 낫지 않겠어요. 그리 정을 붙여 기르면 제 살붙이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마침내 같은 성의 아들로 후사를 삼으니 곧 상산(商産) 김씨이다. 그 후에 크게 번창하여 벼슬이 대를 이었다.

한국문학총서 3(구비문학, 해냄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