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서양의 눈에 비친 한국-F.A.맥켄제의 조선말 의병활동(3)>

조선말 의병활동

황제는 폐위되었고 군대는 해산되었다. 퉁명스럽고 분노에 찬, 그렇지만 무기력한 서울의 민중들은 이제 폐하의 무관심과 자신의 나태와 무지에 희생된 채, 자신들의 민족적 존립을 도적맞고도 감히 말 한마디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의기양양한 일본군들은 대궐문과 궁내에서 버티고 있었다. 왕자들은 상투를 잘리고 일본 옷을 입는 등, 저들의 욕된 요구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군졸들은 거리를 누비며 호령했으며 백이 민족들은 발걸음조차도 조심스러워야 했다.

사방에서 일어난 의병활동

그런데 수도 서울은 그토록 억압을 당했지만 몇몇 지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먼 지방에서 쫓겨온 패군(敗軍)들은 해가 진 뒤 성벽을 기어 넘어 들어와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들을 서울 사람들에게 전했다. 여기 저기에서 일본에 대한 봉기가 일어났다. 의병(義兵)이 편성되고 놀라운 일들을 감행했다. 일본 분견대는 전멸되고 그밖의 무리들도 패주했다. 일부의 일본군이 승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온 마을을 유린하고 주민들을 대량 학살함으로써 가혹한 보복을 감행했다. 피난민들의 말이 그러했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다소 흥미로운 전투가 지방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9월 첫주까자만 해도 부산 부근에서부터 서울의 북쪽에 이르기까지 분란이 일어나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의병들은 대체로 해산된 구식 군대와 산간의 사냥꾼들로 구성되어 있음이 확실했다. 서울에서 들은바에 의하면 구식 군대에서 훈련을 받은 장교들이 그들을 훈련, 조직하여 지원부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군은 의병의 본거지로 신식 군대를 보내고 있지만 의병들은 봉화를 교묘히 이용해 정규전을 피하면서 적의 헛점을 찔렀다.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무기도 형편없었을뿐만 아니라 화약도 부족했으며, 그들에게 외부에서 무기를 공급해 주는 조직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의병의 전초병들(맥켄지 찍음)

불만에 찬 한국인들이 처음으로 집결한 곳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80-90마일 떨어진 산간 지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의 유명한 호랑이 사냥꾼들이 산악의 자손이라고 말할 만큼 산에 능숙했고 신체가 건강한데다 자기들의 익숙한 고장을 무대로 활약했기 때문에 아무리 정예 정규군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무기는 구형의 격발총으로 총신은 길고 방아쇠는 길이가 8인치 되는 놋쇠로 되어 있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어깨에 총을 걸고 쏘는 것이 아니라 옆구리에 늘어뜨리고 쏘았지만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장탄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1화 공격에 1발 밖에는 총을 쏠 수가 없다. 그들은 호랑이에 바짝 다가가서 쏘아 죽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요즈음의 사냥꾼들은 첫 발에 실수하면 그는 죽는다. 호랑이는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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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들을 수 있는 한국인들이 승전했다는 소문들 가운데 어떤것들은 믿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너무 잘 알려전 어떤 무용담들은 의심할 수 없었다. 그가운데는 48명의 일본군이 다량의 군수물자를 호송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양편이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겹쳐 있는 산골짜기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일본군들이 골짜기의 중앙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절벽 위에서 큰 바위들을 굴러 떨어트려 압사하였다. 생존자들이 전열을 정비하기도 전에 한국군들의 무리가 그들에게 몰려들어 몰살시켰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국인들이 만든, 흔히 호언장담으로 가득한 문장의 격문들이 서울로 은밀히 전달되기도 했으며 서울의 진고개에 있는 일본군 사령부에서는 일본군들을 계속 지방으로 파견하였다. 주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는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한국정부는 폐하의 뜻을 받들어 국가의 각 기관을 재편하는 과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세계의 대세를 모르는 몰지각한 무리들은 충성과 반역을 구분치 못하고 무례하고도 허무맹랑한 소문을 퍼트림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각지의 불량배들을 교사하여 폭동을 일으키도록? 했다. 이 폭도들은 양민을 살해하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관청과 민가를 불태우고 통신수단을 태우는 등, 가공할 범죄를 범하고 있다. 그들의 범죄행위는 천인공노할 소행임에도 그들은 충성스럽고 도 애국적인 체하며 스스로를 의병이라 일컫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범법자임에 틀림없으며, 정치 제도를 재활시키려는 폐하의 뜻을 반대하고 자신의 국가와 민족에게 가장 해로운 일을 저지르고 있다.

저들을 조속히 소탕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처참한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나는 저들의 폭동을 뿌리 뽑음으로써 백성들을 환난으로부터 구출하라는 명을 대한제국의 황제 폐하로부터 받았다.

이 성명만으로도 지방에서의 의병활동이 얼마나 치열하였으며 위협이 되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지방에 있는 한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격문을 발표했는데 매우 격정적이다.

우리 민족의 인구는 2천만 명으로 늙고 병든이와 어린이를 제하고도 1천만 명이 넘는다. 오늘날 한국에 준둔하고 있는 일본군은 8천을 넘지 못하고 각지에 있는 일본 상인도 수천 명을 넘지 못한다. 그들의 무기가 아무리 고성능이라 할지라도 1명의 일본인이 어찌 1천 명의 한국인을 죽일 수 있을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이 어리석은 횅동을 하지 말며,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말기 바란다. 우리들은 날자를 정해 그대들을 공격할 것이다. 우리들 중의 몇몇 사람은 거지나 상인으로 가장하여 서울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철도를 폭파하고 항구를? 불태울 것이며, 진고개를 쳐부수고 이토와 모든 일본인들을 죽이고 이완용과 그 주구들을 몰살할 것이며, 폐하를 배신한 역도들을 단 1명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우리를 무찌르기 위해 모든 군대를 진격시킬 것이다. 우리는 무기를 갖고 있지 않지만 우리의 충성심을 끝까지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일본군의 신식무기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외국 영사들에게 파병을 요청할 것이며, 그들은 의로운 사람들을 도와 악한 무리들을 쳐부술 것이다. 그렇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함께 죽자. 일본을 쳐부수자. 그리고 어쩔 수 없다면 우리는 국가와 황제와 함께 죽자 .. . . . .

남부지방에 살고 있는 어떤 한국인들은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통감 이토에게 호소했다.

당신은 한일간의 우의를 강조했지만, 일본인의 손길이 닿는 곳이라면 남는 것이 없을 만큼 일본이 전국적으로 이익을 취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이제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지만 한국이 그 지경이 되면 일본도 쇠망할 것이다. 우리는 그대를 동정하노니 이 민족이 멸망한다고해서 당신에게 득이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이 함께 멸망한다면 이는 참으로 일본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만약 당신 스스로 안녕을 바란다면 , 폐하에게 건의하여 역신(逆臣)을 탄핵토록 하고 그들에게 마땅한 벌을 받도록 하라. 그리하면 모든 한국인들은 호감을 가지고 당신을 바라볼 것이며 서구인들은 소리 높여 당신을 칭송할 것이다. 한국 정부로 하여금 각 분야에 걸쳐 개혁을 이룩하도록 충고해 주고, 학교를 증설하도록 도와주고,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시킬 수 있도록 도와 주라. 그러면 한청일 3국은 동렬에 서서 강하게 뭉치게 될 것이고 외국도 감히 능멸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하지 않고 우리의 국권을 계속 유린한다면 우리는 함께 멸망할 것이다. 이 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의병을 찾아서

각지에서는 흥미로운 전투가 계속되고 있음이 명백했다. 나는 그들을 직접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쉽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나는 곧 알게 되었다. 제일 먼저 겪게된 고충은 일본 당국의 방해공작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았다. 이유는 현지에는 분란이 일어나 나의 신변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여권이 없이 여행을 한다면 국제조약에 의거하여 <여행중에 체포되어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통감은 나에게 정식으로 경고했다. 이 정도로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두려한 것은 그들이 나의 여행을 동의해 놓고 신변 보호라는 명목으로 호위병을 딸려 보내겠다고 주장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서구인 및 한인 친구들은 내가 여행을 떠나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방에서 분란이 일어난 이후 현지를 가본 백인은 아직 아무도 없다. 한국의 호랑이 사냥꾼들과 강제 해산된 구식 군대들은 산간에 흩어져 있으면서 그곳을 통과하는 일본인들을 저격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이나 그 지휘관들은 모두가 양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먼 거리에서라면 그들은 나를 일본인으로 착각할 것이 틀림없으며, 그들은 자기의 실수를 알기 전에 이미 나를 사격할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이런 위험을 면할 수 있을까를 백방으로 궁리해 보았다. 우리 집의 한 늙은 하인은 한국의 양반들처럼 가마를 타고 가라고 권했다. 가마는 작은 상자처럼 되어 있으며 두 사람 또는 네 사람이 메도록 되어 있으며 여행자는 그안에서 사뭇 웅크리고 앉아 있어야 한다. 가마는 평균 한 시간에 2마일도 못 간다. 나는 가마를 타느니 차라리 총알을 맞는 것을 택했다. 한국의 관리들은 내가 도착하는 마을에 하루 전에 사람을 보내어 <영국대인(英國大人)>이 통과할 것이니 사격하지 않도록 미리 알리라고 나에게 권했다. 나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중략)

서울에서는 어디를 가서 어떻게 해야 의병을 만날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본 당국이 제공한 정보는 단편적인 것이었고 또 지방의 의병활동을 과소평가했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음이 분명했고 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의병들은 하루, 이틀 전에 경부선의 어느 한 역을 폭파했음이 확인되었다. 소수 부대의 의병이 서울에서 20마일도 안되는 곳에 있는 일본군 무기고의 수비병을 습격하고 그들을 몰아낸 다음 총과 화약을 탈취해 갔음을 알았다. 대부분의 전투는 서울에서 4일 정도의 보행이면 도착할 수 있는 충주 부근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그곳을 목표로 정하고 될 수 있으면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나 다닐 수 있는 샛길을 따라 길을 떠났다.

의병 부대 (해산된 군 출신이나 사냥꾼들 그리고 농부들로 소규모 부대를 형성하고 게릴라식 전투로 일본군을 괴롭혔다)

충청도는 무척 아름답고 여유있는 지역이었다. 서울이 지저분하고 주민들의 표정이 냉랭한 것과는 놀라울 정도로 대조적이었다. 주민들은 부지런했고 들판은 여유롭고 행복해 보았다. 이 지방에는 극히 우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중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어디를 가면 전투를 볼 수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들은 “일본군들이 이천(利川)을 다녀갔는데 그곳에서 많은 부락들을 태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천을 향해 말을 몰았다.

일본의 만행

내가 서울을 떠나기 직전 , 이토 히로부미의 한 측근인 일본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그들(의병)에게 일본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동부의 산악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군을 거의 본적이 없거나 전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힘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강한가를 그들에게 확신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산마루에 서서 이천으로 향하는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 그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이곳에서는 일본이 ‘얼마나 막강한가?’를 분명히 볼 수가 있었다. 나는 앞에 펼쳐진 폐허의 마을을 볼 수가 있었다. 나는 폐허가 된 마을 가까이로 말을 몰아 내려갔다. 그곳은 대략 70-80호가 모여 사는 꽤 큰 마을이었다. 그 마을은 기둥 하나도 성한 것이 없을 만큼 황폐해 있었다. 성한 집이라고는 한 채도 없었으며, 벽은 흔적조차도 없었다. 장독마저도 모두 박살났다. 아궁이는 모두 망가져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폐허가 된 옛집으로 돌아와 임시로나마 거처를 마련하고 새로 집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쉴만한 집도 찾을 수 없어서 나무 밑에 앉아 있었으며 식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는동안 마을의 노인들이 몰려와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의 폐부를 찌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기에는 너무도 끔찍스러운 참변을 겪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 서양인이 우리의 참상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당신의 국민에게 이러한 참상을 전하여 그들이 모두 한국의 현실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1-2 마일 떨어진 언덕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계속 말을 했다.

의병들은 저쪽에 있었지요. 그들은 거기서 전선주를 뽑아 버렸습니다. 그들은 동쪽 언덕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우리 마을 사람도 아니었으며,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지요. 그 뒤를 따라 일본군이 들어오고 얼마간의 전투가 있은 다음 의병들은 물러갔습니다. 그런 뒤 일본군은 우리 마을을 지나서 7개 부락을 거쳐 지나갔습니다. 저쪽을 보십시요. 모두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병들이 전신주를 빼어버리는 것을 보고도 너희들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들은 의병과 똑같은 놈들이다. 눈은 무엇에다가 쓸려고 전신주도 감시하지 않았는가? 힘은 두었다가 무엇에 쓸려고 그들의 못된 짓을 막지 않았는가? 의병들이 너희 집에 오면 쫓아내기는커녕 밥을 해 먹였다. 의병들은 이제 물러갔지만 너희들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다.

그리고서는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욕심나는 것은 모두 빼았은 다음 불을 질러 버렸지요. 젖먹이 적부터 그 집에 살고 있던 한 노인은 일본군이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을 보자 무릎을 꿇고 그 일본군의 발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울면서 애원했지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 집을 태우지 마십시오. 그곳에서 죽는 날까지 제가 살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이제 늙어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본군은 그 노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 노인은 그럴수록 더욱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일본군은 총을 뽑아 노인을 쏘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를 묻어 주었지요.

어느 한 여인은 해산이 가까워 집에 누워 있다가 끔찍한 변을 당했습니다. 어느 한 젊은이는 들에서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에 바빠서 일본군들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일본군은 칼을 빼어 햇빛에 뻔쩍거리면서 “여기에 의병이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그 청년을 쏘아죽였습니다.? 어느 사람은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자기 집의 모든 족보가 모두 불타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불을 끄기 위해 집으로 달려 내려갔지요. 그러나 그가 달려 내려가자 일본군은 그에게 총을 쏘아 대었고 그 사람은 꼬꾸라졌습니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남달리 지체가 높아보이는 한 남자는 비통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시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나는 명문의 후손이라오. 우리 선조들은 대대로 족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난리에 모두 타버렸다오. 이제 나는 이름도 성도 없는 상놈이 되었다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마을을 떠났다. 의병들을 처단하면서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했던 것은 마을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생각하고있는 무모한 수습책이었다. 한 마을을 평정시키고 나면 순진한 수 백 가구가 의병에 투신했다. 그 뒤 단 며칠 동안에 적어도 한 도시와 수십 개의 부락이 그렇게 되면 어떻게 끝장이 날 것인가?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에게 항전하고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자신의 생업을 조용히 누리는 것뿐이었다. 일본은 한국과 화해하고 한국인의 동정과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어느 한 지방은 초토작전으로 인해 그토록 유복하던 곳이 폐허가 되었고 의병의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했는데, 이 때 뿌려진 증오의 씨앗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수세대가 지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잿더미가 된 마을과 고을을 지났다. 이곳에서도 일본군이 온갖 만행을 저질렀음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어느 한 마을을 지났는데 집이라고는 몇 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가 가까이 가면 아낙네들은 도망갔다. 그 뒤 몇가지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그들이 나를 일본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가는 곳마다 일본인의 약탈 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 마을에서는 약탈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다가 심한 매를 맞은 한 노인에게 나를 데려갔다. 거기서 나는 참으로 참담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희생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을 비웃었지만 막상 희생자들을 눈앞에 대하고 보니 더 이상 그들을 비웃을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이천(利川) 에 도착했다. 이곳은 꽤 큰 도시였으며,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일본군을 피해 산으로 도망쳤다. 나는 그날 밤 폐허가 되어 사용하지 않고 있는 학교 건물안에서 잤다. 교실 안에는 그림과 동물 그림, 그리고 경구(警句) 등이 걸려 있었지만 아이들은 멀리 떠나고 없었다. 나는 장터를 돌아보았다. 평상시 같으면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한국인들을 찾아서 처자식은 모두 어디를 갔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들은 나무도 없이 높이 솟은 산마루를 가르키면서 “그들은 저리고 갔습니다. 이곳에서 일본인에게 욕을 당하느니보다는 황량한 들판에 눕는 것이 낫지요”라고 대답했다.

F. A. 맥켄지<대한 제국의 비극> 집문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