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서양의 눈에 비친 한국/맥켄지의 조선말 의병활동(2)>

조선말 의병활동(2)

의병을 찾아서

제천 근처의 한 동네가 완전히 폐허가 되어있다.

나는 아직까지 한 명의 의병도 만나 보지를 못했으며 일본군도 전혀 보지 못했다. 내가 일본군을 처음 만난 것은 제천으로 오기 하루 전날 충주에서였다. 내가 충주에 이르렀을 때 나는 고정(古城)이 무너져 있음을 보았다. 석조의 잔해만이 남아 있을 뿐 성문과 문루는 없었다. 일본군 위병과 헌병이 문에 서 있었으며 내가 들어가자 그들은 나를 양옆에서 가로막았다. 이곳에는 소수의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이 일대의 작전은 이곳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음이 명백했다.

나는 즉시 관활 일본군 대좌(大佐)를 방문했다. 당시 관청의 큼직한 방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사무실은 일본군이 현재 취하고 있는 적전이 얼마나 용의주도한 것인가를 여러모로 잘 입증해 주고 있었다. 커다란 지도 위에는 빨간 표지가 되어 현재 점령된 전략적 기지를 보여 주고 있었으며 지도가 첨부된 작은 유인물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장교들을 위해 마련된 것인듯 했다.

일본군 대좌는 나를 정중하게 맞아들였지만 내가 이런 곳에 온 데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그가 상대하여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도적들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볼 것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나에게 앞으로 다가올 위험에 대해 여러 모로 경고했다. 일본군은 현재 의병들을 포위할 예정인데 그러기 위해서 2개 분대가 작전중이며 자기들이 그들의 소굴을 둘러싸고 있다고 그는 내게 매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이와 같은 작전은 의병들을 단합시켜 한곳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대좌가 보여준 지도를 보고 나는 방향을 결정했다. 언뜻 보아서도 일본군은 아직 제천과 원주 사이의 마을을 점령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이곳이야말로 내가 의병들을 만나고자 한다면 꼭 가야 할 곳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폐허가 된 제천을 돌아본 다음 그 다음날 원주로 말머리를 돌렸다.

나는 조선 의병들에 매우 가깝게 이르렀음이 곧 밝혀졌다. 제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내가 통과하기 이틀 전에 한 무리의 의병이 도착하여 무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내가 도착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의병과 일본군이 그 마을의 거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접전을 면했다. 내가 마을에 접근하면 주민들이 키가 큰 옥수수 밭으로 도망을 갔기 때문에 한 사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살과 방화에 놀란 그들은 나를 일본인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이제는 짐꾼을 얻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우리는 산골을 강행군했기 때문에 노새들도 피로한 기색을 보였다. 일본군이 모두 징발해 갔기 때문에 새 노새를 구할 수가 없었다. 원주에 가기까지 나는 짐꾼들에게 일상 노임의 2배를 지불해야만 했다. 원주에서부터는 아무리 노임을 많이 준다고 해도 짐꾼들은 더 이상 가지 않겠노라고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을 지나면 앞으로는 나쁜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들은 지나는 사람들을 마구 쏘아 죽이지요. 우리는 죽으러 그곳에 가지는 않겠어요.”

사동들도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도 내가 데리고 간 사동인 김민근과 노새 몰이꾼은 내가 이제까지 만난 한국인 중에서 가장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원주를 지난 다음부터의 마을은 그곳 사람들이 내게 말한 것처럼, 매복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다. 길은 바위투성이어서 울퉁불퉁하고 대체로 좁았으며 이리 저리로 구부러지는 골짜기의 양 옆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이제 우리는 화산의 분지가 분명한 어느 협곳에 이르게 되었다. 이곳은 한국에서도 금(金)이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부터는 금이 섞인 석영조각을 줍는 시늉을 하기로 했다. 주위 어느곳에선가 군대가 은밀히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석양이 깃들 무렵 우리 일행은 밤을 지낼 작은 마을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하여 다른 곳에서 받은 인상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모두가 우리를 찾아와 환영해 주었으며 때로는 그들이 제공하는 필수품에 대한 값마저도 받지 않으려 하면서 “우리는 백인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마을 주민들은 말먹이나 쌀이 한 톨도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15리나 더 떨어진 다른 마을로 가보라고 권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다시 길을 떠났다. 발걸음을 재촉해 원주에 도착하기 전, 그곳의 주민들은 우리가 의병을 만났음이 틀림없으리라고 말했다. 원주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15-20마일을 더 가야 의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거리를 지나 다시 양근(陽根)으로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 날 오후 우리는 드디어 양근에 도착했지만? 이곳에서도 다시 우리는 실망했다. 우리가 여기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날 아침 서울에서 15마일 떨어진 한 부락에서 전투가 있었으며 조선 의병들이 패퇴했다는 것이었다.

양근은 매우 괄목할 만한 곳이었다. 10여 개의 적십자기가 여기저기의 지붕 위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중심가의 모든 상점들은 꽉 닫혀 있었으며 모든 집 대문 위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이 십자가들은 종이 위에 붉은 잉크로 서툴게 그려 넣은 것으로서 그곳 천주교회 회장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1주일 전 소수의 일본군이 이곳에 도착하여 가옥 몇 채를 불태웠지만 십자기가 휘날리고 있는 어느 집은 건드리지 않았다. 일본군이 떠나자마자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대문 위에 십자가를 그려 붙였다.

드디어 의병을 만나다

처음 보기에도 양근은 황량한 곳이었다. 주민들은 문 뒤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과 아이들은 살금살금 기어 나와 차츰차츰 접근해 왔다. 나는 그날 오후 으리으리하게 생긴 한 한옥의 뜰에 숙소를 정했다. 사동은 마당에서 저녁을 짓다가 갑자기 집기를 떨어트리고는 내게 달려왔다. 그는 몹시 흥분하여 나에게 소리쳤다. “선생님, 의병이 나타났습니다. 여기 군인들이 왔어요.” 그 순간 5-6명의 의병들이 뜰에 들어서더니 내 앞에 열을 지어 서서 인사를 했다

그들은 모두가 18세에서 26세 사이의 청년들이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얼굴이 준수하고 훤칠한 청년이었는데 그 때까지도 구식 군대의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다른 두 사람은 군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은 초라한 누더기 한복을 입고 있었으며, 가죽 장화를 신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허리에는 집에서 만든 무명의 탄대(彈帶)가 매달려 있었고 탄환이 반쯤 채워져 있었다. 한 사람만이 챙 멋는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 밖에는 누더기를 꼬아 만든 허리띠를 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휴대하고 있는 총을 살펴 보았다. 여섯 명이 가지고 있는 총중에서 다섯 가지가 제각기 다른 종류였으며, 그 중의 어느 하나도 성한 것이 없었다. 한 사람은 총구로 장탄하는 구형인 사냥총을 자랑스럽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화약 대신으로 쓰는 가늘고 긴 끈을 팔에 감고 있었으며, 앞자락에는 화약통과 탄창이 매달려 있었다. 그 후에 안 일이지만 이 사냥총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탄약을 밀어 넣는 꼬질대는 나무를 꺾어서 만든 수제품이었다. 총신은 녹이 쓸어 있었고 무명 끈이 매어 있었다. 두번째 사람은 구한국군의 낡은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당시로서도 매우 조악한 것이었다. 세번째 사람도 그와 같은 총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작은 엽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총은 총이었지만 총알이 나가지 않는 것으로서 아버지가 이제 열 살 된 사랑하는 아들에게 선물하는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탄창이 달린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총 중의 3자루는 중국의 표지가 박혀 있었고 모두가 심하게 녹슬어 있었다.

이들이 수주일 동안 일본군에 항거해온 바로 그 사람들임을 생각해 보라. 심지어는 지금 이 시간 까지도 일본의 정규군은 이들과 그 동지들을 무찌르기 위해 책동하고 있다. 내가 만난 무리 중의 3명은 노동자였다. 바른 쪽에 서 있는 젊고 영리하게 생긴 군인은 군의(軍醫)처럼 천연스럽게 행동했으며, 그의 동지들로 하여금 군인다운 처신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곱번째 사람은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그는 양반계급 출신이었다. 그는 양반이 입는 긴 도포를 입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몸은 쇠약해졌고 얼굴은 그을었으며 피로의 빛이 보였다. 그들은 매우 측은하게만 보였다. 그들은 전혀 희망없는 전쟁에서 이미 죽음이 확실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바른쪽에 서있는 군인의 영롱한 눈동자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았을 때 나는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 가엾게만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아마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보여 주고 있는 표현 방법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은 자기의 동포들에게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중략)

그날 밤 나는 마음 편히 잘 수가 없었다. 바깥 거리에서는 의병들과 주민들 사이에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의병들은 잠자리를 청했지만 일본군의 보복이 두려운 주민들은 그들을 재워 주려 하지 않았다. 의병들은 내가 묵은 방 옆의 빈집으로 몰려 들어와서는 서로들 잘못을 따지느라고 떠들석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날의 전투를 이끌었던 장교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비교적 젊은 편이었으며 양반의 긴 도포를 입고 있었다. 만약 일본군이 우리 일행의 도착을 알게 되면 그들은 분명히 이리로 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야간 습격에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는 “초병을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주민들 모두가 감시를 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의병들의 조직을 물어 보았다. 그들은 어떤 조직을 가지고 있을까?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사실상 아무런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의병의 각 부대들은 서로간에 매우 허술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각지에 살고 있는 부호들은 돈을 마련하여 한,두 의병대에게 은밀히 제공했으며, 이렇게 하여 자금이 마련되면 그들은 그 돈으로써 모병할 수가 있었다. 그는 자기들이 어떤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음을 시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는 자유인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의병들이 도움을 청하다

한 중년의 조선인 양반이 찾아오자 그는 자리를 떴다. 그 양반은 한 관리를 대동하고 왔는데 지위가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이 지방의 의병대장임을 곧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입장이 다소 난처해졌다. 나는 먹을 것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그를 대접할만한 담배나 술 한잔도 없었다. 어둠에 싸인 주막집 마당의 관솔불이 그의 수척해진 얼굴을 비춰 주었다. 나는 우선 손님접대를 소홀히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그는 나의 사과를 즉시 막아버렸다. 그는 오히려 그 날 아침 자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의 부하들이 외국인에 대한 약속을 어길 뻔했던 일을 사과했다. 그는 집안의 일로 하루 동안 집에 가 있다가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달려온 것처럼 보였다. 그가 나에게 온 것은 한가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의병들은 무기가 없습니다. 그들은 말할 수 없이 용감하지만 당신이 알다시피 그들의 총은 쓸모가 없으며 화약도 이제는 거의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무기를 살 수가 없습니다만 , 당신은 원하는 곳이라면 아무 곳이나 자유롭게 다닐 수가 있습니다. 그런 당신이 우리의 요원으로 활약해 주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무기를 좀 사다 주십시오. 돈은 필요한 대로 요구하십시오. 그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무기를 구할 수만 있다면 5천 달라든, 1만 달라든 필요한대로 드리겠습니다. 다만 무기만 구해 주십시오.

나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없노라고 대답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가 나에게 일본군의 상항을 다그처 불었을 때 나는 대답을 회피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경우처럼 자료를 얻기 위해 전지를 찾아온 언론인은 도의상 그가 아는 바를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목격한 일본군 초소를 의병 대장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그의 군대를 파견하여 승리하게끔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군에게 의병들의 전력을 알려 줄 수가 없었다.

그 날, 그들은 밤이 새도록 수선을 떨었다. 전날 밤의 전투에서 도망해온 부상병들은 동료들의 간호를 받았다. 그 다음날 새벽이 되자 몇 명의 군인이 내게 찾아와서 그들을 치료해 줄 수 있는가를 물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그들을 살펴보았다. 어느 한 사람은 다섯 군데 이상의 총상을 입었지만 아직도 매우 유쾌한 듯이 보였다. 다른 두 사람은 단 한 발의 총알을 맞았지만 오히려 더 더 중태였다. 나는 외과의사도 아닌 주제에 그 당시로서는 탄알을 끄집어내기 위해 내 사냥칼로 그들의 상처를 찔러댈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 가방속에서 소독제를 찾아냈다. 나는 그것을 녹여서 상처가 곪지 않도록 닦아 주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방부제로 그들의 누더기 옷을 빨았다. 나는 그 깨끗한 누더기로 상처를 매어 주었다. 나는 그들을 위어서 안정토록 하고 음식을 조금 먹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뜨자마자 의병들은 거리로 열을 지어 나갔다. 그들은 지난 밤에 나를 찾아왔을 때 몇몇 사람들이 보여준 그 특징, 즉 보잘것없는 무기와 부족한 화약을 휴대한 초라한 모습들을 여실히 재현했다. 그 날 아침 내가 출발하기 전에 그들은 사람을 미리 각 초소에 보내어 나는 영국인이니 다쳐셔는 안 된다고 경고하였다. 나는 서로의 앞날을 축복해 주면서 그들과 헤어졌지만 출발에 앞서 우리의 무기중에 없어진 것이 있지나 않은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내가 데리고 다니던 사람들은 그 의병들에게 우리의 총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일본인을 죽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내게 간청하는 것이 아닌가?

제대로 장비를 갖춘 일본군들. 조선 의병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바위와 모래가 깔린 강변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사동 하나가 목이 찢어질듯이 나를 부르면서 자기가 들고 있던 무기를 내던졌다. 우리는 발길을 멈추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비명의 뜻을 알았다. “그게 무슨 뜻이요?” 나는 그들에게 물었더니 김민근은 이렇게 대답했다. “의병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쏠 작정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일본인인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평선을 향해 서서 그들이 잘못 알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용감하게 나를 가르켰다. “영국 대인이요.” 나는 사동들과 함께 소리질렀다. 이건 점잖지 못한 방법이었지만 매우 필요한 조치였다. 그제서야 우리는 바위 사이로 누더기를 입고 우리에게 접근해 오는 무리들을 볼 수가 있었다. 몇 사람이 우리에게 접근해 오고 있는 동안 그들의 총은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 그러자 20여 명의 의병들이 손이 닿을듯한 가까운 곳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식 군대의 제복을 입은 한 청년이 그들을 이끌 고 있었다. 우리가 서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들은 우리에게 뛰어왔다. 드디어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자 내게 가까이 와서 자기들의 실수를 정중하게 사과했다. “당신이 소리친 것은 매우 다행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정조준해서 막 발사하려던 참이었지요.” 얼굴이 아주 못생긴 한 청년이 탄창을 빼어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이 의병대의 몇 사람은 14-16세를 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이다.

정오가 되어 우리는 하루 전에 의병들이 퇴각한 어느 지방에 도착했다. 의병들은 이곳 주민들이 일본군과 결탁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매우 불친절하게 대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그 지방에서 전투가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 전날 아침 20명의 일본군이 이곳을 급습하여 200여명의 의병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일본군 측에서는 1명이 팔에 상처를 입었으며, 의병 측에서는 5명이 부상을 당했다. 의병의 부상병중 3명은 도주했는데 그날 아침 내가 치료해 준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들판에 버려졌는데 한 사람은 왼쪽 볼에 심한 총상을 입었으며 , 다른 한 사람은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그곳 주민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당시의 상황은 이러했다.

일본 군인들이 그 부상병들에게 접근해 왔을 때 그들은 상처의 고통이 심해 말도 못하고 다만 짐승들처럼 ‘만세, 만세, 만세”하고 신음하듯 소리를 질렀답니다. 그들은 무기도 없었으며 피는 땅 위에 낭자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일본군들은 그들의 비명을 듣고 달려와서 그들이 죽을 때까지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답니다. 그들은 일본군의 칼 아래 갈기갈기 찟겼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묻어 주었습니다.

일본군의 만행이 얼마나 지긋지긋했던가를 설명하던 주민들의 진지한 표정은 어느 명문(名文)보다도 더 웅변적이었다. 이것이 단 한번의 예에 그쳤다면 여기에서 이토록 언급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도처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일본군들은 지방의 수많은 전투에서 모든 부상병들과 그들을 포위한 의병들을 조직적으로 몰살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를 그런식으로 참살했음이 분명했다. 많은 전투를 겪는 동안 의병들의 전사자들은 많은데 부상병이나 포로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일본측의 통계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이외에도 지적할 만한 사실이 또 있다. 일본군들은 도처에서 민가를 방화하는 이외에도 의병에게 협조한 혐의를 받은 많은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조선인들은 학살 장면을 설명할 때에는 일본군 사수들이총살형을 집행한 다음 시체를 칼로 찌르고 난도질치더라고 설명함으로써 말끝을 맺었다. 내가 매사를 신뢰하는 한 영국인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인 군시가지 가까이에 살고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의병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인의 처형 장면이 과연 듣던대로인지를 보기 위해서 형장에를 나가 보았다. 한 죄수가 밖으로 끌려나오는데 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일본군이 그의 목에 걸린 고삐로써 끌어내어 오고 있었다. 그들이 처형장으로 향해 가던중 그 일본군은 외국인이 자기를 주시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고삐를 낚아채어 포로를 넘어지게 한 다음 그의 총구로써 포로의 배를 사정없이 찔렀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시체를 난도질하지 않았다.

F.A.매켄지 <대한제국의 비극(The Traagedy of Korea by Fredrick A. Mckenszie)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