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Gallery/이달의 명화/김홍도의 '주상판매도'/2009년 4월>

단원 김홍도의 <주상 판매도>

 

단원 김홍도는 말년에 접어들자 자화상 <포의 풍류도>를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를 적어 넣었다.

흙벽에 아름다운 창을 내고
여생을 야인으로 묻혀
시가나 읊으며 살리라

노년에 이르러 단원은 두보의 시에 공감하여 <주상판매도>를 그렸다. 그림 왼쪽 아래 끝머리에 산자락이 보이고 , 바로 그 뒤에 배 한척이 떠있다.

비스듬이 앉아 피안을 바라보는 한 노인 앞에는 주안상이 차려 있고, 그 맞은 편에 동자가 앉아서 시중들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물 건너 피안에는 언덕이 보이고 그 위에 꽃나무 몇 그루가 있다. 그림 중턱에 적어 넣은 화제는 이러하다.

老年花似蛇霧中看
늙은이 되어 보는 꽃은 안개 속에서 보는 듯하다.

이 글은 당나라의 시성 두보가 772년 그가 죽던 해에 배 안에서 읊은 시의 한 구절이다. 두보는 말년에 내란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배를 타고 양자강을 따라 방황하다가 배 안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이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단원은 예술가로서 화려하고 유복한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1800년에 정조가 승하한 후의 그는 고독과 빈곤과 신병 속에서 만년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는 겨우 회갑을 넘긴 나이였지만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주상판매도>를 그렸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조 한 수를 또한 남겼다.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흐르는 물과 영원한 하늘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물 속에 하늘이 있고, 하늘 속에 물이 있다. 깨닫고 보면 색(형상)이 바로 공(영원)이요 공이 곧 색이다. 예술이란 형상을 통해 영원한 실상을 표현하는 작업이다.

단원은 어명을 받들어 수원 용주사의 후불탱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남해관음도>와 같은 불교 미술의 걸작을 남긴 종교화가이기도 하다.

(이 해설을 쓰신 素琴 유동식님은 연세대학교에서 은퇴한 신학자로 한국의 토착종교와, 예술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며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풍류도와 예술신학>등 다수의 저서가 있습니다. 직접 그림도 그리며 풍류를 즐기는 노학자이십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