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용혜원 시인
가을이 오면 낙엽지는 거리를 걸으며 삶의 깊이를 더 느껴 보고 싶다. 낙엽지는 가을에 왜 모든 열매들은 더 아름답게, 탐스럽게 드러나는 것일까.
바로 그것이 삶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삶의 진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리라. 가을이 옴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떠나가려고 할 때, 열매들마저 없었다면 사람들은 고독보다는 되려 절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열매 속의 씨앗들은 계절들을 다시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가을은 사람들을 그리워지게 만든다. 추억 속의 사람들과,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과 삶 속에 어울리는 모든 이들을 그리워지게 만든다.
홀로 걷는 가을의 거리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걸으면 더욱 좋은 것은 가을이 주는 그리움이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이 오면 그리운 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낙엽처럼 색갈이 있는 편지지에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그리운 사람들이 보라고 바람결에 날려보내고 싶다.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끝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그립다고 쓸 것이다. 보고 싶다고 쓸 것이다. 지금이라도 달려와 달라고 쓸 것이다. 그리고 만나서 마음껏 이야기하고 이 낙엽지는 거리를 걷자고 쓸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도 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면 사랑의 시를 쓰고 싶다. 우리들의 삶은 누구나 사랑을 원하고 있다. 누구나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사랑을 노래할 줄 아는 사람은 벌써 사랑에 빠져든 사람이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의 시를 쓸 수도 없고 사랑을 노래할 용기도 힘도 없을 것이다.
가을은 사람들을 순수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가을의 깊어감 속에 사랑은 그 찬란한 빛을 발하고 말 것이다. 그리하면 누구나 시인이 될 것이다. 누구나 자신들의 사랑을 노래할 것이다. 그래서 가을 하늘도 더 푸르게 더 푸르게 펼쳐지는가 보다.
가을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과 갈색의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리고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들의 남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꾸며 갈 것인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가을의 깊은 밤에 나누는 이야기는 더 다정하고 더 가까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리고 심장에서 소동치는 사랑의 숨소리를 함께 듣게 될 것이다.
계절을 잊고 사는 오늘, 가을이 오면 더 깊게 계절을 느끼고 싶은 것은 단 하나뿐인 삶이 지금도 빠르게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면 그 어느 해 가을보다 올해의 가을을 가을로 느끼고 싶다. 가을 길을 홀로 걷고 싶다. 아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또 걷고 싶다. 낙엽들의 노래를 들으며 마냥 걷고만 싶다.
*용혜원 님은 서울 ‘흰돌성결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목사이면서도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으로 더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사랑이 눈을 뜰 때면>을 위시해서 <한 그루의 나무를 아무도 숲이라 하지 않는다>등 수 많은 시집과 저서들이 출판되었습니다. 윗글은 <사랑하는 사람아! 가을 빛깔에 함께 물들자>에서 옮겼다.
가을이 오면-용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