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밟으며 -이 시 형
사색길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바삭바삭 낙엽 밟는 소리가 발아래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 줍니다. 발목까지 잠기는 낙엽을 제쳐 밟으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됩니까? 낙엽의 일생. 나 그리고 우주의 질서.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에 밀려가는 그런 기분. 아, 그래서 인생무상이라 했던가요.
천년을 그렇게 푸르청청할 것 같더니. 때가 되면 잎들은 조용히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합니다. 힘이 넘치는 푸른 옷을 벗고 빨강, 노랑으로 갈아입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찬서리 내리고 으산한 가을바람이 불면 잎들은 군무를 펼치며 미련 없이 떨어져 날리며 사뿐히 땅으로 내려앉습니다. 참으로 화려한 최후의 만찬 무도회를 펼칩니다. 낙엽귀근(落葉歸根), 잎은 지면 뿌리로 돌아가는 것. 계절 앞엔 속절없이 져야 하는 게 잎의 숙명인걸요.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낙엽을 밟으면 세월은 오는 게 아니라 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진하게 하게 됩니다.
잎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저항 없이, 미련 없이 아름다운 퇴장을 합니다. 떨어진 잎들은 바람 부는 대로, 구르다 어느 골짜기에 모여 다정하게 소곤거립니다. 귀를 기울여 낙엽의 대화를 들어보십시오. 힘이 넘쳤던 여름을 회상하는 걸까요. 아름다운 가을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온갖 모양, 온갖 색깔의 잎들이 다 모여 있지만 그들은 결코 시샘이나 다툼을 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또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질 다음 순간을 모르는 운명이지만 잎들은 지금 이 순간 다정한 이웃이 됩니다. 이건 우주가 그린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입니다. 누가 이 우주의 질서를 거역할 수 있으랴. 낙엽은 우리에게 아름답게 떠나가는 걸 가르쳐 줍니다.
낙엽이 주는 교훈은 또 있습니다. ‘무슨 미련일까?’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몇 입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매달려 바둥거리는 색 바랜 잎들을 보노라면 보기에도 딱하고 민망스럽습니다. 자리를 비워줘야 내년 봄 새싹이 트는 건데. 꽃도 잎도 필 때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가끔 이런 위인들이 있지요? 인생이 너무 추하고 측은해 보입니다. 낙엽은 언제, 어떻게 떠나야 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이시형의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이지북)에서
*이시형 님은 정신과 의사로 학교에서 강의하는 한편 사회정신건강연구소등의 소장을 역임하였다.2007년 자연치유센터 힐리어스 선마을을 건립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간 60여권에 이르는 수많은 저서들을 집필하였다
낙엽을 밟으며-이시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