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바보에게
고통과 죽음의 깊은 뜻
신앙은 무엇입니까? 철학자 파스칼은 “신앙은 도박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 뜻이 이렇습니다.
하느님이 계셔서 우리에게 책임져야 할 삶을 주셨으며, 그것은 주님이 오시는 날, 곧 우리가 죽는 날 주님의 심판앞에 잘잘못이 가려진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현세에서도 착실히 잘 삽니다. 그러다가 만일 죽고 난 다음, 믿었던 대로 하느님도 심판도 없다 하더라도 아무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불충한 종처럼 하느님은 언제 오실지 모른다며 자만자족에 빠져 있다든가, 더 나아가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양 생각하고 있다 할 때는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하느님이 계신지, 심판이 있는지 볼 수도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지만 자기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믿는 쪽으로 도박을 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파스칼의 “믿음은 도박이다”라는 말의 요지입니다.
우리 인간은 가끔 하느님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완벽히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은 과연 계실까 하고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또 고통을 겪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게 되었을 때 슬픔이 너무 크고 실망한 나머지 하느님 같은 건 없다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고통이 있는가? 왜 무죄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 왜 나를 이런 불행의 구렁에 버려주시는가? 이런 고민 때문에 하느님이 계시는지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이해도 갑니다.
그러나 그런 의심의 결과로 하느님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는 어떻게 될까요? 하느님이 없다는 전제 아래 고통을 보고 불행과 죽음을보십시오. 우리는 그 고통이나 뷸행, 죽음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고통도 죽음도 맹목적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계시다면 아무리 그 고통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원망이라도 할 수 있고 항의라도 할 수 있습니다. 뿐더러 그 고통과 죽음, 불행을 통해서 사람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이 참되며 무엇이 거짓인지 생각하게 되고, 자기 삶의 반성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오히려 하느님의 현존과 인간의 고통과 죽음의 깊은 뜻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고통도 죽음도 없다면 아무도 하느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두려울 것도 없고 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으니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을 것입니다. 인생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타락할 대로 타락할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좋은 것은 고통이나 시련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얻어집니다. 여러분도 고된 훈련을 통해 자기를 극복함으로써 훌륭한 자기 인생의 참뜻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은 계십니다. 우리가 비록 그분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그 분이 있어서 존재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존재와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더 나아가 그 주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게>다섯번재 이야기(산호와 진주)에서
고통과 죽음의 깊은 뜻-김수환 추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