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마음이 가난하다.’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 말씀의 뜻은 한마디로 ‘빈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체의 과도한 욕망 애착을 끊고 떠난 마음, 겸손하게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있는 마음, 그리하여 무엇을 주시든지 다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하느님을 깊이 믿고 자신을 열고 있는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마음만이 참으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런 마음이 되어야 하느님 뜻에 맞고 하느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마음의 가난’을 , 달리 표현하여 믿음으로 모든 것을 비운 ‘빈 마음’의 의미로 새길 수 있다면, 그만큼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그분 손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적 가난도 내포합니까? 우리는 흔히 이 말씀을 정신적 가난에만 국한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음의 가난과 물질적 가난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는지 우리는 그 답을 예수님의 물질, 즉 세상 재물을 어떻게 생각하셨으며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셨는지를 봄으로써 얻어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 6장 24절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한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또 이어서 6장 25절에서 33절에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 . .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루가복음 14장 33절에서는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예수님 말씀은 우리에게 청빈을 요구하십니다. 물질에 대한 애착을 떠난 가난, 청빈은 이른바 복음적 가난이라고 합니다. 청빈의 마음, 즉 자신을 비울 줄 아는 마음의 가난 없이는 순명도 정결도 살기가 힘듭니다.
더구나 물질에 대한 애착이 크다면 그 마음은 하느님도 믿고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입니다. 영혼을 가장 병들게 하고 썩게 하는 것은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 나가기보다 더 힘들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가난의 문제에 있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마음의 가난을 위해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깊고 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할 줄 아는 마음이 요구됩니다. 틸리히(Tillich)는 믿음을 ‘선택을 선택하는 용기’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성인이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을 때 우리는 그분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고 그분이 주신 모든 것들, 주어진 환경,자신의 상태, 건강, 병고, 아픔, 상처 일체를 받아들일 줄 압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참으로 사랑할 줄 알고 동시에 남을 또한 사랑할 줄 압니다.
우리 자신은 가난한 사람들과 얼마나 가깝습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서 있습니까?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의 모습, 가난한 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모습입니까?
우리는 가난한 이를 위할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게-다섯번째 이야기>(산호와 진주)에서
<바보가 바보에게-김수환 추기경의 명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