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2년 8월>

귀신을 물리친 밀본

일연이 1281년에 편찬한 <삼국유사> 권 5에 실려있는 설화이다.

선덕왕 덕만이 병이 위독하자, 흥륜사의 스님 법척을 초청해 치료하게 했으나 오래도록 효과가 없었다. 그 때 밀본(密本)이라는 법사가 있었는데 덕행으로 온 나라에 알려졌다. 좌우의 신하들이 밀본을 법척과 바꾸라고 청했다. 왕이 밀본을 궁중에 맞이하니 밀본은 왕 곁에서 약사경(藥師經)을 읽었다. 경을 다 읽자, 지니고 있던 육환장이 침실안으로 날아 들어가 늙은 여우 한 마리와 법척을 찔러 뜰 아래 거꾸러지게 했다. 그러자 왕의 병이 나았다. 이때 밀본의 이마위에서 오색의 신비로운 광채가 나서 보는 사람이 다 놀랐다.

또한 승상(丞相) 김양도가 아이일 때 갑자기 입이 붙고 몸이 굳어져 ,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언제나 보니 큰 귀신 하나가 작은 귀신의 무리를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와 음식이 있으면 다 맛을 보았다. 무당이 와서 제사를 지내면, 무리를 지어 모욕을 했다. 양도는 귀신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하려 했으니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양도의 아버지가 법륜사의 스님을 청해 경을 읽게 했더니, 큰 귀신이 작은 귀신에게 시켜 철퇴로 때려 스님이 땅에 넘어져 피를 토하고 죽었다. 며칠 뒤에 사람을 보내 밀본을 모셔오게 했다. 심부름한 사람이 돌아와 말했다.

“밀본 법사가 내가 청하는 말을 받아들여 오시겠다고 합니다.”
이말을 듣고 뭇 귀신이 모두 얼굴빛을 잃었다. 작은 귀신이 말했다.
“법사가 오면 이롭지 못합니다.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큰 귀신은 거만을 떨면서 말했다. “무엇이 해가 되겠는가.”

조금 있으니 사방에서 크고 힘센 신령이 쇠 갑옷과 긴 창으로 무장을 하고 와서 뭇 귀신을 잡아 묶어 갔다. 그 다음에는 무수한 천신이 둘러서서 기다렸다. 잠시 뒤에 밀본이 왔다. 경을 펴기도 전에 병이 나았다. 양도는 말이 통하고 몸이 풀려 그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양도는 이 일 때문에 불교를 독실하게 믿고 평생토록 게을리하지 않았다. 흥륜사 금당 주불인 아미타불과 좌우의 보살상을 만들어 모시고, 금색 벽화가 금당에 가득하게 했다.

밀본은 일찍이 금곡사에 머물고 있었다. 또한 김유신이 일찍이 어느 늙은 거사와 교분이 두터웠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때에 친척 수천이 오랫동안 악질에 걸려, 김유신은 그 거사를 보내 병을 보게 하였다. 때마침 수천의 친구 인혜사라는 이가 중악에서 와서 있다가 거사를 보고 모욕을 주는 말을 했다.

“네 모습과 태도의 관상을 보니 간사하고 요망한 위인이다. 어찌 남의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거사가 말했다. “나는 김공의 명을 받아 마지못해 왔을 따름이다.”
인혜가 말했다. “너는 내 신통력을 보아라.”

그러고는 향로를 받들어 향에다 주문을 외니, 조금 있다가 오색 구름이 머리 위를 둘렀고, 하늘의 꽃이 흩어져 내렸다. 거사가 말했다.

“스님의 신통력은 불가사의합니다. 제게도 졸열한 재주가 있으므로, 청컨데 시험해 보고자 합니다. 부디 스님은 제 앞에 잠간만 서 계십시오..”

인혜가 그렇게 했다. 거사가 손가락 한 번 퉁기는 소리를 내자, 인혜는 공중으로 거꾸로 올라가 높이 한 길이나 된 곳에서 한참 만에 천천히 내려와 땅에 박혀, 말뚝을 꽃아 놓은것처럼 되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밀고 당겨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사는 가버리고 인혜는 거꾸로 박힌 채 새벽까지 그대로 있었다. 이튿날 수천이 김공에게 연락하니, 김공이 거사를 보내 풀어 주게 했다. 인혜는 다시는 재주를 팔지 않게 되었다.

이 일을 시를 지어 기린다.

진홍과 자주가 붉은색에 어지러이 섞이고
고기 눈이 구슬이라고 어리석은 이들 속이네
거사가 손가락 가벼이 퉁기지 않았다면
보물 상자에 가짜 옥이 얼마나 되었으리.

<서대석 편 한국문학총서 3 구비문학 (해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