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 종묘 백호도(고구려의 사신도, 四神圖)
해설 유 동 식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당시의 세계관이 표현되어 있다. 벽화의 내용은 크게 세 종류로 구별된다.
첫째는 생활풍습을 그린 그림이다. 주인공과 함께 수렵, 무용, 씨름 등을 그렸다. 사후에도 이 세상의 생활이 연속된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둘째는 방위신인 사신도이다. 이것은 본시 중국에서 시작된 상징적인 그림이다. 묘실 주벽 동쪽에 청룡, 서쪽에 백호, 남쪽에 주작, 북쪽에 현무 등 수호신을 그리고 천정에는 황룡이나 일월성신을 그림으로써 죽은 이들이 살아갈 우주를 재현하고 있다.
셋째는 인당초문이나 연화문, 그리고 비천이나 신선 등을 그림으로써 사후 세계가 극락임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벽화는 후기로 오면서 사신도 중심으로 간소화되어 갔다. 그러나 미술로서의 예술성은 더욱 높아갔던 것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강서 종묘의 사신도이다. 그 중에도 <백호도,白虎圖>가 일품이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 힘차게 달리며, 앞발 하나를 높이 들어 적을 위압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용들의 발가락이 다섯 개인 것과는 달리 고구려의 청룡, 백호는 세 개씩이다. 여기에는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한 중국의 음양 오행문화와 수렵문화를 배경으로 한 한국의 무교적 삼수(三數) 문화가 각각 반영되어 있다. 무교의 세계관은 하늘과 땅과 지하라는 삼층구조의 우주관과 천, 지, 인 삼재를 기초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태양신을 세 발 달린 까마귀로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채색에 있어서도 흑백과 함께 천, 지, 인을 상징하는 홍 청, 황의 삼원색을 사용한다. 이것은 오늘의 무당이나 농악의 복장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색을 든다면, 그것은 전체가 역동적인 곡선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무교적 생동감은 굿이나 농악의 가무에서 보듯이 음악적 율동이 곡선으로 나타난다.
선의 예술은 추상적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선 자체가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면과 면의 교차 경계가 시각에 의해 선으로 보이는 추상적 존재이다. 따라서 선은 서예의 경우와 같이 추상예술을 자아낸다. 선은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곡선은 유동하는 음악적 율동 성을 표현한다.
한국미술이 갖는 곡선미의 우월성에 관하여는 일본의 학자들을 비롯하여 자타가 공인해 왔다. 고려청자 매병(梅柄)이 지닌 우아한 곡선뿐만 아니라, 거기에 그려진 구름과 학과 같은 문양들도 곡선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보다 앞서 8세기의 성덕왕 신종에 새겨진 비천강의 곡선은 영의 세계로 상달되는 소리의 율동 성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무교적 가무에는 격렬한 역동성이 있다. 이것이 반영된 곡선미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있는 사신도들일 것이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곡선 아닌 것이 없으며, 그 중에서도 청룡, 백호는 맹렬한 역동상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역동성과 우아한 곡선을 함께 아우른 그림이 김홍도의 ‘무동도(舞童圖)’일 것이다.
(이 해설을 쓰신 素琴 유동식님은 연세대학교에서 은퇴한 신학자로 한국의 토착종교와, 예술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며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풍류도와 예술신학>등 다수의 저서가 있습니다. 직접 그림도 그리며 풍류를 즐기는 노학자이십니다)
명화감상-강서 종묘 백호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