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9(금)
함석헌의 <도둑 같이 온 해방(解放)>  

<늘푸른나무/이달의 화두/2015년 8월 1일>

함석헌의 <도둑 같이 온 해방(解放)>

오는 8월 15일은 해방 70주년 기념일이다. 90이 넘은 분들이나 그날의 감격을 기억할 수 있을까? 해방의 진정한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감격할 수 있는 세대들은 대부분이 고인이 된듯 하다. 그날의 감격을 나누지는 못하드라도 그날을 기억하며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뜻에서 최근세 한국의 위대한 사상가였던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가운데서 ’32. 해방’을 계재한다.


어련히 오고야 말 해방인 줄 믿었지만 또 못믿었다. 그러므로 정작 온 때는 모두 꿈인가 하였다.

새 날

역사는 흘러 간다. 시대는 변한다. 와쳐야 할 줄 알면서도 오히려 꿈도 못 꾸던 날이 왔다. 고난의 역사에 해방이다. 역사가는 기록의 또 한 페이지를 넘기고 의미를 또 고쳐 읽어볼 때가 되었다.

그 때에 우리는 ‘남해의 사나운 물결 밑을 통과한다’하여서 될수록 정신을 차리고 지내자 했건만 역시 그 사나움이 너무 하였기 때눈에 그저 그 물결이 흔들고 떠미는 대로 부대끼울 뿐이었다. 미쳐 깊은 생각을 해볼 겨를이 없었다. 바치라니 그저 어린 것의 먹을 것까지 긁어 바쳤고, 말하지 말라니 말을 그만 두고, 글을 내버리라니 그 좋은 글도 내버렸고, 성(姓)을 고치라니 그대로 조상까지 내버렸을 뿐이지 ,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생각을 해보려 하지도 못했다. 전쟁의 마지막 대목에 전쟁에 끌려 나가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양이 그대로 민족의 운명의 표시였다. 분명히 가고 싶은 길이 아닌데, 옳지 않은 길인 줄도 아는데, 그런 줄 알면서도, 대적에게는 그만두고 우리 자신에 향하여 물으려는 생각도 없이, 눈을 가리우는대로 가리움을 당하고 어디론지 끌려가는 것이었다. 간대야 죽음 밖에 있을 것 없는 줄을 알면서도 살기 위하여 끌려 간다고 하였다. 익살이지 살기 위해 죽을 대로 가니 그것이 곧 민족 전체의 가는 길이었다. 생존은 우리에게서 모든 정신적인 것, 의미적인 것을 빼았아 버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납던 물결도 지나가고 , 벌벌 떠는,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한 몸일망정, 새 나라 제주도 해안선에 올라온 우리이므로 그 바다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알면서도 모를 것은 역사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지만, 미래는 예측 못한다. 예측 못하니 역사지 물리학적으로 예측이 된다면 역사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래도 예측해 보아야 한다. 예측하면서도 예측 아니 되는데, 예측 할 수 없건만 예측해 보는 데 역사가 있다. 어련히 오고야 말 해방인 줄 믿었지만 또 못믿었다. 그러므로 정작 온 때는 모두 꿈인가 하였다. 연대표 위에는 틀림없는 36년이건만 느낌으로는 360년도 더 되는 것 같았다. ‘일제(日帝) 36년’하면, 그렇게 밖에 아니 되었던가 의심이 난다. 그 고난은 그렇게 심하였고 영원히 벗겨질 것 같지 않았다.

그 악팍한 이리가 이 양을 놓고 물러갈 줄은 저희도 생각 못했거니와 우리도 감히 생각 못하였다. 그 이빨은 우리 간 앞 갈피에까지 들어갔고 그 발톱은 우리 등뼈 마디 짬에까지 박혔었다. 적어도 이성을 가지고는 그 물러날 날을 예측할 수 없었다. 정치권이 그들 손에 있고, 경제정책이 그들 자기네 본위요, 토지가 대부분?그들 소유가 되었고, 교육방침이 철저한 일본 국민이나 혹은 그들의 영구한 종을 기름에 있었고, 마지막에는 풍속을 고치고, 성을 갈고, 말을 없애고, 글을 말살하려는 데까지 이르렀는데, 세계사조조차 혼란에 빠져, 민족 사이의 동정의 생각도 얻어볼 수 없고, 국제간에 정의감도 찾아볼 수 없어져, 세계 모퉁이 모퉁이에서 대낮에 인간의 대량학살을 공공연히 하게 되었으니, 아무도 그 종살이에 끝이 오리라고는 예측을 하지 못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옛날에 지사라던 사람들도 다 넘어가고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다 타협하고, 지식인도 다 팔려 버리고 말았다. 교육자는 학생을 보고 일본인이 되어야 한다고 아는 거짓말을 하고, 종교가는 교인들을 보고 일본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짐짓 짓는 죄로 인도하고 있었다. 순 조선대로 남아 견딘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식한 못난 씨알들이었다.

그러한 것이 1945년 8월 15일 갑자기 해방이 되었다. 어제까지 우리들이 하던 일을 서로 마음 속에 두고 건너다 보았을 때, 어색하고 거북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쫒겨 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일본의 군벌들이 우리나라의 썩다썩다 남은 벼슬아치들을 약간한 위협과 달램과 속임수와 억지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묶어 도려놓고 , 간신히 늦게나마 고개를 들어보려는 새 한국의 넔을 한 발로 비벼 버리고, 삼천리 강토 2천만 민족을 몽땅 통채로 삼켰던 지 1만 2천 7백 7십 1일만에 한 마디 소리도 크게 지른 것 없이 맥없이 풀려나게 되었으니 꿈이랄 밖에 없다.

도둑같이 온 해방

그러므로 이 해방에서 우리가 첫째 밝혀야 하는 것은, 이것이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는 것이다. 해방 후 분한 일, 보기 싫은 꼴이 하나둘만 아니지만, 그중에도 참 분한 일은 이 해방을 도둑해 가려는 놈들이 많은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만은 이 해방을 미리 알았노라고 선전한다. 그것은 그들이 이 도둑같이 온 해방을 자기네가 보낸 것처럼 말하여 도둑해 가려는 심정에서 하는 소리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시대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다면, 왜 8월 14일까지 그렇게도 겸손히 복종을 하고 있었던가? 그 때에 한 마디라도 미리 말하여 민중을 위로하고 용기를 가다듬어 준 것이 있다면 이제 와서 새삼스러이 선전을 하지 않아도 민중이 지도자로 모셨을 것이다.

그만두어라, 솔직하자, 너와 내가 다 몰랐느니라. 다 자고 있었느니라. 신사참배하라면 허리가 부러지게 하고, 성을 고치라면 서로 다투어가며 하고, 시국연설을 하라면 있는 재주를 다 부려서 하고, 영,미를 욕하고, 전향하라면 참 ‘앗싸리’ 전향을 하고, 곱게만 보일 수 있다면 성경도 고치고, 교회당도 팔아 먹고, 신용을 얻을 수 있다면 네발로 기어도 보이고, 개 소리로 짖어도 보여 준, 이 나라의 지사, 사상가, 종교가, 교육자, 지식인, 문인에, 또 해외에 유랑 몇 십년 이름은 좋아도 서로서로 박사파, 선생파, 무슨 계, 무슨 단,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인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세력 다툼을 하고, 중경, 남경에선 중국인의 강낭죽을 얻어 먹으며 자리다툼을 하던 사람들이 알기는 무엇을 미리 알았단 말인가? 사상은 무슨 사상이고 정치는 무슨 정치운동을 하였다는 말인가? 이 나라가 해방될 줄을 미리 안 사람은 하나도 없다. 또 설혹 어떻게 해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그래서 미리 싸웠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한 사람 간디가 있었단 말인가? 한 사람 마짜니가 있었단 말인가? 몰랐으면 솔직히 몰랐다, 못 믿었으면 바른 대로 못 믿었노라 고백을 하면, 그저 받았다는 심정에 기쁨이나 더하지 않겠나?


알기는 그만두고 믿은 사람도 없었다. 학식깨나 있고 밥술이나 먹고 몸맵시깨라도 매끈히 내고 다니는 놈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믿었다면 왜 그다지도 비겁하게, 그다지도 속알머리 없이 하였을까? 한 사람 간디가 있었단 말인가? 한 사람 마짜니가 있었단 말인가? 몰랐으면 솔직히 몰랐다, 못 믿었으면 바른 대로 못 믿었노라 고백을 하면, 그저 받았다는 심정에 기쁨이나 더하지 않겠나? 시대가 온 뒤에 나서서 벌써 올 줄 알았노라 하며, 그것을 이용하여 인기나 얻고 정권이나 쥐려는 것은 얼마나 비열한 일인가? 그런 협잡군들과는 우리 해방은 아무 상관이 없다. 이 해방은 우리가 자고 있을 때에 도둑같이 왔다. 이 도둑은 가져가려는 도둑이 아니요, 몰래 가져다 주는 도둑이지만 그 대신 도둑 아니라고 하면 있던 것까지 빼았아 가지고 갈 그야말로 무서운 도둑이다. 미리 알았노라는 협잡군들을 물리쳐라. 정치가 본래 협잡이니라. 협잡 아니라는 놈일수록 협잡군이니라. 도둑 같이 왔으면 주인 없는 해방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은 씨알의 것이 된다.

하늘이 준 떡

둘째로 알아야 할 것은 이 해방은 하늘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모른 것은 아무도 꾸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꾸미지 않고 온 것은 하늘의 선물이다. 이것은 하늘에서 직접 민중에게 준 해방이다. 아무도 여기 대하여 공로를 주장할 중간적인 자가 없다. 종이 될 때 별로 반항도 못하고 되었던 것 같이 놓일 때도 아무 힘 쓴 것 없이 갑자기 뜻밖에 놓였다. 뜻밖이니만큼 기쁨이 더 크다. 이것은 아마 섭리가 우리의 기뻐하는 것을 보자고, 그리하여 착한 마음이 저절로 소성되는 것을 보자고, 일부러 하신 일이다. 한 개의 교육이다.

사실 마음이 기쁨과 감사에 차면 선(善)이 저절로 넘쳐 나는 법이다. 그럼 그럴만한 일이다.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해방은 과연 어느 인물이 힘써서된 것도 아니요, 어느 파가 투쟁을 하여서 된 것도 아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앞으로 오려는 시대를 생각할 때 참 잘된 일이었다. 이 앞의 역사는 낡은 세력이 간섭되서는 안된다. 낡은 사상으로는 못한다. 새역사다. 그러므로 구세력, 구인물, 구사상이 아무 공로를 주장할 수 없이 온 것은 참 된 일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와 스탈린이 밀담을 하여서 작정하게 한 것은 낡은 것의 간섭 방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그 밀회에 참여한 사람이 없는 한 아무도 관계된 자는 없다. 관계된 자가 있다면 이따가 그것을 받을 주인인 씨알뿐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민중이다. 가난한 까닭으로 세력이 없고, 세력이 없어 학문도 못하였고, 출세도 못하였고, 마음이 못생긴 까닭으로 일본 국민 노릇도 못하였고, 변할 줄도 전향할 줄도 몰랐고, 외국으로 도망할 용기도 없고, 시세를 맞추는 재주도 없어서, 큰 뜻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한국을 못 놓았고, 타고난 그대로, 맡겨진 그대로,, 당하는 그대로 한국 버릇을 못 놓았고, 타고난 그대로, 맡겨진 그대로 당하는 그대로 한국버릇을 못 놓고 한국땅을 못 떠나고, 한국 냄새를 못 버리고, 한국 마음을 못 잊고, 한국의 고난과 욕을 못 피하고, 죽어도 한국의 흙으로 죽는 수밖에 없다 하고 있었던 그 씨알이다. 만일 그들이 아니었다면 그들을 통해 ‘한국’이란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해방이 가 붙을 곳이 없지 않은가?

루즈벨트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스탈린은 무슨 심사였는지, 그들이 다 영원히 휘장 뒤로 사라져 가버린 오늘, 그 당초의 경위는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선의로나 악의로나 그들은 해방이 하늘로부터 한국 민중 위에 직접 떨어지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밝혀야 하는 것은 이 해방의 주인은 한국 민중이라는 점이다. 그 간악한 정치 밑에서도 일본 국민이 되어 버리지 못한 한국 민중이라는 것이 엄연히 있으니 해방이요 독립이지, 만일 생활로, 정신으로, 말로, 사고방식으로까지 일본이 다 되어 버렸던 유식인, 유력자, 유산계급만이 있었다면 해방을 주려고 해도 가 닿을 곳이 없었을 것이다. 또 정권욕에 자기 선전을 하지만, 한국 민중 없는데 누구 보고 선전, 선동을 할까? ‘모스코바’에서 무슨 전술을 배워가지고 왔다기로서 죽은 시체만 있는 곳에서 무슨 활동을 할 수 있으며, 미국에서 어떤 교섭, 어떤 매매 계약을 하고 왔다기로서 한국민 없는 한국에 무슨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그러니 민(民)이 본(本)이요 주(主)가 아닌가?

그러니 민(民)이 본(本)이요 주(主)가 아닌가? . . . . . . 리고 보면 36년간 지켰다면 이 스스로 지키는 줄 모르고 지킨 이 민중만이 지킨 것이요, 싸웠다면 그 그저 죽지 못해 견뎌온 민중만이 싸워온 것이다. 누가 감히 지도를 했노라고 그 공과 덕을 횡령한 놈이 없지 않은가?


가난은 하지만 가난하니 땅에 붙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요, 무지하지만 무지하니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어 하늘만 따르는 민이 있으니 정치요 국가요 자리요 감투지, 그 하나만 없으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보면 36년간 지켰다면 이 스스로 지키는 줄 모르고 지킨 이 민중만이 지킨 것이요, 싸웠다면 그 그저 죽지 못해 견뎌온 민중만이 싸워온 것이다. 누가 감히 지도를 했노라고 그 공과 덕을 횡령한 놈이 없지 않은가? 하나님이 그것을 하시기 때문에, 혹 다른 말로 하면, 역사의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그 공과 덕을 다른 아무 데도 빼았기지 않게 하려고 비밀히 꾸며, 마른 하늘에 벼락같이 민중의 머리 위에 직접 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그 기뻐하는 것을 보고 그 고난의 값을 배나 갚아주고, 새 사명을 다할 힘이 스스로 솟아나도록 한 것이다.

씨알의 해방

해방은 하늘에서 왔다. 그러므로 솔찍한 씨알은 소식을 듣자마자 “하늘이 준 떡이지"하였다. 이것은 누가 한 것 없이 누구의 입에서나 나온 말이요, 누구의 마음에나 있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늘과 씨알이 화답하였다. 하늘의 뜻을 씨알이 알아보고 , 민중의 마음을 하늘이 안다면 역사는 바로 될 것이다. 그 때의 그 씨알의 심정은 참 아름다왔다. 누가 누구를 칭찬할 사람도 없고, 누가 무엇을 기대할 것도 없고, 내 일도 아닌 네일도 아닌 그저 일, 그 일에 대하여 감격하는 마음, 우리 눈의 눈물이 맑은 것 같이 마음도 그렇게 맑았다. 그 맑은 마음, 그 감격을 가졌으면 못 칭찬할 과거가 없고못 맞아들일 미래가 없었다. 인자(人子)의 날이 언제 오느냐 뭍는 데 대하여 예수는 “인자의 한 날을 보려해도 못 본다, 인자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요, 번개가 동에서 번쩍이면 서에서 번쩍이는 것같이 인자가 올 때도 그렇다.”라고 대답을 하셨다. 이 때야말로 거의 인자의 날을 생각 나게하는 것이었다. 그때에야 누가 있을까?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나라가 있을 뿐이지, 그때에야 좌(左)인들 있었을까? 우(右)인들 있었을까? 김씨, 이씨가 있었을까? 계급이 있었을까? 다만 방금 난 송아지 같은 한국이 있었을 뿐이다. 고치자면 무엇이나 서슴치 안고 고치고, 바치라면 누구나 아낌없이 바칠 마음이었다. 참으로 새 나라를 세우기에 넉넉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사흘이 못 가서 선동이 들어오고 모략이 나오고 폭동이 일어나고 쟁탈이 일어나, 내려 오는 빛을 맞으며 하늘을 향하던 민중의 얼굴은 그만 타격을 받아 땅으로 떨어지고 옆으로 비틀어지고, 광명은 그들의 눈에서 가리워져 버렸다.

대체 카이로 회담은 왜 있었으며, 포츠담 조약은 왜 있었으며, 스탈린과 루즈벨트 밀담은 왜 있었나? 일이 왜 그렇게 극비밀리에 되었으며, 러시아는 왜 그렇게 약속을 어기고 재빨리 행동을 하여 전쟁의 종국이 벼락 식으로 오게 되었나? 왜 원자탄이며, 왜 일본의 급작 항복인가? 아무리 과학적인 관찰로 하더라도 이것을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계획적으로 보이지 않나? 모든 일이 어떤 합점을 향하여 갑자기 집중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그 한 점은 무엇일까? 남의 일은 또 몰라도 적어도 우리 자리에서 보면 해방을 하루 아침 하늘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객관적 사실을 우리는 모른다. 일의 뜻을 생각할 때 그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함석헌 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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