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관련 논문들   ▒  

2014/7/15(화)
김치수의 <문학작품 속의 한국전쟁>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4년 6월>

문학작품 속의 한국전쟁

김치수(문학평론가, 이화여대 명예교수)

이화여대 명예교수서울대학교 문리대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석사)를 졸업하고 프로방스 대학 불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현대문학상(평문본문),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저서로 『문학의 목소리』(2006), 『삶의 허상과 소살의 진실』(2000),『공감의 비평을 위하여』(1992),『문학과 비평의 구조』(1982),『박경리와 지청준』(1981),『문학사회학을 위하여』(1979),『한국소설의 공간』(1796),『현대 한국문학의 이론』(1972)등이 있다.

전쟁의 상처라는 주제는 한국의 현대문학에서 지금까지 변용을 거듭하고 있다. 전후 세대 작가들이 잔혹한 한국전쟁의 경험을 재현해냈다면, 제3세대 작가들은 전쟁 후유증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질문했다. 그 상처의 치유는 아직도 남은 과제이다. 

한국소설의 소재와 배경의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전쟁은 그 어떤 역사적 사건보다 한국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준비된 남침으로 북한군은 전쟁 개시 1개월 만에 국군을 대구 근교까지 밀어냈고 남한의 5분의 4를 지배하였다. 반격에 나선 국군과 유엔군은 5개월 만에 압록강 연안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서울을 내주고 되찾는 공방전 끝에 유엔군은 북한군과 현재의 휴전선을 경계로 정전 협정을 맺었다. 밀고 밀리는 전쟁의 와중에서 1천만 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이동한 엑소더스는 농경사회를 토대로 한 한국의 전통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전후세대 작가들의 작품 세계

1950년대 한국소설의 대부분은 한국전쟁을 소재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이들 세대의 작가로 염상섭, 안수길, 황순원, 김동리, 박경리, 장용학, 선우휘, 손창섭, 서기원, 오상원, 이범선, 이호철, 송병수, 하근찬 등을 들 수 있다. 염상섭, 안수길, 황순원, 김동리를 해방 후 제1세대 작가라 한다면, 195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들 제2세대 작가들은 전후 세대라 부를 수 있다. 625전쟁이 한국의 가족, 계층, 사회를 뒤흔들어놓는 ‘대격변catastrophy′이고 엄청난 ‘폭력violence’이기 때문이다. 

전후세대 작가들은 전쟁에 직접 참가하여 적군과 싸우면서 스스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함께 싸우던 전우들의 죽음을 목격한 세대로서, 소설 속 인물을 통해서 잔혹한 전쟁을 고발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방황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형상화한 작중인물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우연성에 절망하면서 정신의 지주를 찾고자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공주의로 무장된 이들 인물들은 그들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검토할 여유도 갖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의 의미를 질문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살게 될 사회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전망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역사의 희생자이고 현실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전후세대의 작가들에게 소설이란 그들이 경험한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고 그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며 인간 운명의 우연성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소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보고한다. 첫째 북한이 받아들인 공산주의는 전통적인 지주들을 악의 축으로 몰아서 그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고 노동자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배분한다. 그 과정에서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고 고발과 살인 사건이 빈발한다.(황순원, 선우휘, 이범선, 하근찬). 둘째로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전쟁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기 때문에 무자비하고 잔혹한 야수성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된다.(선우휘, 오상원, 이범선). 셋째로 전쟁으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젊은이들은 전장에서 입은 정신적 상처로 고통을 받으며 방황한다. 지키고 추구해야 할 가치체계를 잃어버린 그들은 때로 부도덕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방탕한 행위를 보이기도 하지만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고통을 겪는다.(염상섭, 황순원, 서기원, 이범선, 하근찬). 넷째 부모와 형제를 잃은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피난의 물결에 휩쓸려서 거리를 떠돌며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어른들의 어둡고 불결한 세계에 물들기도 하지만 성장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이호철, 송병수). 다섯째 전쟁으로 실종된 사랑하는 사람이나 위기에 처한 가정을 구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여성들을 통해 사랑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게 한다(염상섭, 황순원, 김동리, 박경리, 서기원). 여섯째 가족의 일부를 남겨두고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온 피난민들은 남쪽에 뿌리박기 위한 고난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분단 현실의 고통을 안고 한 많은 생활을 한다(안수길, 장용학, 이범선, 이호철). 

전후세대 작가들은 전쟁이라는 폭력이 개인에게 강요하는 비극적 체험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들의 방황을 형상화하며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 인간 존재란 무엇인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윤리, 도덕, 법률이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슬픔과 적이라는 이름으로 죽여야 하는 부조리를 누가, 무엇이 부여하는지 등의 질문으로 나타난다. 

 

제3세대 작가들이 드러낸 전쟁의 상처

제3세대는 유년시절에 피난민의 대열에서, 혹은 후방에서 겪은 한국전쟁의 기억을 가진 세대로서 정전 후 10여 년이 지난 다음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해방 후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고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표현하는 ‘한글세대’로서 419 학생혁명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419세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에 속한 작가들은 김승옥, 이청준, 박태순, 서정인, 홍성원, 김주영, 조해일, 김원일, 전상국, 유재용, 조선작, 윤흥길 등이다. 그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 세대와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를 발견하고 그 상처가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들은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의식의 소유자들이다. 419 학생혁명을 통해서 자유민주주를 획득한 경험이 있는 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 체제가 자신의 의사에 반할 때 자신의 의사표시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갈등과 대립의 정체를 밝히고 산업화되고 상업화되는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개인이 설 자리를 찾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문학은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하지만 그들의 작품 속에 한국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고, 때로는 그 전쟁 자체를 전면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어떤 작가들은 유년시절에 입은 정신적 상처를 내면에 지니고 살지만 어떤 조건만 갖추어지면 그 상처가 끊임없이 덧나서 괴로움을 당하는 주인공들을 다룬다(이청준, 서정인, 김원일, 박태순).

이들 작가들 가운데는 전쟁으로 잃어버리거나 헤어진 아버지 부재의 가정에서 어린 나이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부장의 역할을 떠맡은 주인공들을 다룬 작가들도 있다(김주영, 김원일, 유재용, 조해일, 조선작). 또 다른 작가들 가운데는 이념적인 차이로 아버지의 부재를 드러내지 못한 채 허무의식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개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자신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인물들을 다룬 작가들도 있다(김승옥, 김원일). 다른 한편으로는 전사한 손자를 맞아들이는 할머니의 아픔이나 고향에 돌아갈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실향민 아버지의 한을 다룸으로써 전쟁의 상처, 나아가서는 분단의 상처가 한국인의 삶 속에 뿌리 깊이 남아 있다는 흔적을 파헤친 작가들도 있다(윤흥길, 유재용, 전상국). 또 어떤 작가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집단, 모든 계층, 모든 신분의 인물들이 겪고 있는 한국 전쟁의 전모를 형상화하고 전쟁의 폭력성과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파헤침으로써 반전사상을 구현한다(홍성원). 이들 제3세대의 작가들은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면서도 그것이 오늘의 그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 남아 있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것은 그들 개인의 존재에 역사적 문맥을 부여하는 것으로 근대적 개인의 발견에 해당한다. 

이들 제3세대의 작가들에게서 1980년대 이후에 발견되는 현상은 주인공의 죽음을 기본 모티브로 삼은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1950년대 초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했거나 전쟁을 체험한 주역들이 실제로 세상을 떠날 나이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잊혀질 만한 625전쟁이 그들의 죽음을 통해서 제3세대 작가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의미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쟁 후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분단현실의 상존은 이들 세대가 전쟁의 후유증을 그대로 앓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전쟁 제1세대의 죽음이 소설 속에서 제3 세대의 삶의 현실을 의식하게 하고 문제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이 곧 삶이 되는 이 역설적 현실이 분단 한국이 겪고 있는 아픔이 아닐까 생각된다.

제4세대에게 남은 과제 

그렇다면 한국 전쟁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는 것인가? 물론 통일이 되지 않고 분단현실이 지속되는 한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발표된 황석영의 『손님』은 근본적인 치유는 아니지만, 원한과 증오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우리 민족이 외래 사상에 걸려서 서로 죽이고 죽는 피의 참극을 불렀다고 진단한다. 여기서 말하는 외래사상이란 사회주의와 기독교를 가리키는 데 작가는 그것을 ‘손님마마’라 부른다. 이 작품은 오래된 원한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해서 폭력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듦으로써 남북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열고자 한다. 작가는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있는 냉전의 유령들을 이 한판의 굿으로 잠재우고 싶다’고 말한다. 여기서 한판의 굿이란 『손님』이라는 작품을 가리킨다. 죽어서도 평안히 잠들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영혼에서 악령을 쫓아내줌으로써 평안히 잠들게 하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여기에서 이청준이 1994년에 발표한 『흰옷』에서 한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어느 시골 산골에 아직도 ‘무덤도 없이 백골로 뒹굴고 있는 수많은 주검들’ 즉 ‘좌익 유격대의 주검도’ ‘우익 토벌대의 주검도’ 이제 와서는 ‘사상이나 이념의 색이 다 바랜 백골로 남아 있’는 모든 혼백들을 한 자리에 불러 달래고 위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유격대와 토벌대뿐만 아니라 전쟁의 와중에서 양쪽에서 희생된 무수한 양민들의 이름 없는 영혼들을 편히 잠들게 하는 위령제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남북의 화해와 평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진정한 위령제는 전쟁 당사자인 제1세대가 아니라 전쟁과 상관없는 제4세대에 의해 치러질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고 양쪽의 희생자들을 함께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북한이 쳐들어오는 악몽이나 흉몽에 시달리고 있는 기성세대의 한계를 이청준은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문학은 한국전쟁이 아직 정전 상태라는 현실을 일깨워 주며, 빠른 시일 안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바라면서 한국인에게 남아 있는 한국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전쟁 없는 세계를 향한 한국인의 꿈을 대변한다.

Koreana-A Quartery on Korean Culture and Arts 에서

<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30   장준하 의 <내가 겪은 8.15 광복>  1504 10/24-23:32
29   함석헌의 <도둑 같이 온 해방(解放)>  2044 10/09-20:23
28   김치수의 <문학작품 속의 한국전쟁>  2273 07/15-00:37
27   도산 안창호의 <민족 개조론>  2303 07/15-00:31
26   님의 시인, 한용운과 3.1 만세운동  1946 03/29-13:01
25   한국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김열규  1985 12/11-23:07
24   한국의 잔다크 유관순  2544 03/27-18:35
23   민족불멸의 왕관 세종대왕(요약)-이광린  2461 10/30-00:54
22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안병무  2193 05/13-07:41
21   <특집-4.19(시와 가족수기>  2728 05/13-07:38

 
처음 이전 다음       목록 홈

ⓒ Copyright 1999~   TECHNOTE-TOP / TECHNOTE.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