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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5/13(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안병무  

<늘푸른나무/이달의 논설/2012년 4월>

4.19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안 병 무

-4.19는 그 성공여부를 물어 평가할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기구현의 한 장(場)을 차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4.19 희생자 어머니의 절규

책가방을 들고 맨주먹으로 독재와 맞싸운 의로운 피가 아닌가. 그 피가 헛되지 말아야겠는데, 그 피로 이 강산이 평화로워야겠는데, 그래서 아름다운 이 나라가 돼야겠는데, 내 아들의 피가 온 국민이 바로 잘 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야겠는데, 그래서 그 슬픈 역사를 두번 다시 재연하지 말아야겠는데 . . . . 참으로 밝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었다는 소리가 나와야겠는데!

이 어미가 외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10년도 좋고 20년도 좋다. 3선도 좋고 4선도 좋다. 아니 그 생명 다하도록 영원히 정권을 잡아도 좋다. 4.19혁명을 혁명이 아니래고 좋고, 5.16 밑으로 내려놓아도 좋고, 겉치례의 모든 행사를 완전히 말살해도 좋다. 문제는 무너진 이정권 때처럼 부정부패 운운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최소한 이정권 때보다는 살기 수월한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상은 바로 4.19날 희생된 한 고등학교 학생의 어머니가 10년 후에 발표한 절규와 같은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흔히 4.19를 순순한 혁명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어머니는 자기 아들의 죽음을 ‘책가방을 쥐고 맨주먹으로 독재와 맞싸운 의로운 피’라고 한다. 깨끗하고 의로운 죽음이라는 신념이다.

이 어머니는 자기 아들의 죽음을 보다 나은 조국을 이룩하기 위해 바쳐진 희생의 제물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절규하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원망이 아니라 이 사회가 이승만 정권때와 달라진 바 없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4.19정신은 5.16군사쿠테타로 그 순이 잘려졌고 다른 형태의 권력욕이 계속 모든 생명을 억압, 질식시키고 말았다. 이 새 권력욕은? 4.19의 정신을 격하시켰을 뿐 아니라 한번 잡은 권력을 영원히 누리기 위하여 헌법을 뜯어 고치는 폭력정치를 초래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친 어머니는 힘없는 서민으로서 이같은 상황을 직시하고 절규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문제는 무너진 이정권 때처럼 부정부패 운운해서는 안된다. 최소한 이 정권때 보다는 살기 수월한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라고 외친 이 어머니의 애원은 그후 얼마나 달라졌을까?

4.19의 정신을 보는 세가지 시각

4.19정신을 측정하는 데는 세가지 시각이 있다. 이 시각은 4.19를 시기적으로 구분하는데 따라서 달라진다. 첫째는 3.15에서 시작되어 4.19에 절정을 이루어 마침내 이승만정권이 항복한 시기까지 끊어서 보는 시각, 둘째는 4.19의 주도세력인 학생들이 이승만정권을 타도한 뒤 학원으로 돌아갔다가 민주당정권의 정체를 인식, 또다시 재기하여 민족통일에로의 의지를 행동으로 구현하려다가 5.16군사쿠데타로 죄절되었을 때까지를 한 단락으로 보는 시각, 셋째로는 보다 더 긴 역사적 맥락에서, 적어도 민중운동의 근대적 출범이라고 볼 수 있는 갑오농민운동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민중운동의 맥락에서 보는 시각 등이다.

첫째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은 4.19는 결코 혁명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학생들의 구호는 부정과 불의를 규탄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고조됨에 따라 이정권의 퇴각을 요구한 것이다. 저들의 분노는 기존헌법에 의해 규정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가 법질서대로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은데 대한 저항이었다.

이렇게 보면 4.19학생봉기는 기존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궐기한 사건이요 민주주의에 대한 낭만적인 갈망의 노출이었다. 학생들은 부패한 독재정권이 물러서면 살기좋은 민주주의 질서가 곧 실현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수립에 대해서는 이정권의 반대당이었던 민주당에 내맡기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까지를 4.19로 본다면 그 정신은 보수성에 있다고 할 것이며 학생들이 기존체제를 보존하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 4.19라고 규정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둘째 시각에서 보면 4.19정신의 뜻은 달라진다. 이정권의 퇴각을 요구하던 학생들의 절규는 민족통일로 바뀌어졌다. 이러한 전환은 우리가 처해 있는 민족적 비운의 실상을 근본적으로 재인식한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승만정권이 물러나서도 기본문제는 해결되지 않은채 그대로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것은 두가지 측면의 재인식으로 우선은 이승만정권의 정체를 뒤늦게나마 새롭게 인식한 것이며 불로소득으로 정권을 이양받은 민주당이라는 존재의 체질을 인식한 것이다. 현실을 보는 눈이 점점 밝아진 것이다. 이상과 같이 4.19정신을 파악하는 것은 민주당 아래서 5.16군사 쿠테타에 이르기 까지의 학생들의 주장이나 의식에 한정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는 인권적 민족운동의 맥락에서 4.19의 정신을 찾아보자는 시각으로 4.19 주역들에게서 표출된 계획이나 의식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이 저들이 민권적 운동사에서 어느 마당을 차지했는가를 묻는 일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민권적 민족운동의 대단원은 이미 말한대로 갑오농민봉기에서 시작되었다.

갑오농민봉기는 그 동기에 있어서 4.19와 유사한 점이 많다. 둘 다 계획적 봉기가 아니라 부정한 정권의 포악성이 그 촉발점이 되었고, 그 운동은 탄압과 더불어 점점 가열되었다. 농민봉기가 한 고을 군수의? 비리와 부정에 항거한 것이 도화선이 된 데 대하여 4.19는 대구에서 야당 대표의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게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생을 소집한데 대해 항거한 것이 촉발점이 되었다. 둘 다 저항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원한을 점진적으로 의식화 또는 확대시켜 나갔다.

농민봉기가 의식을 가진 동학교도중 전봉준을 위시한 농민대표들이 농민의 원성을 수렴하여 본격적인 투쟁을 전개, 전국적인 사건이 된 것처럼 4.19는 월여의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서울의 대학생들이 이 저항운동을 이어 받아 구체화함으로써 본격화 되었다.

그러나 둘 다 기존체제에 대한 입장을 확고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농민혁명주체들이 착취의 본산인 왕권체제에 대해 불투명한 태도설정을 했던데 대하여 4.19주체들 역시 기존정치체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농민봉기를 보면 이를 기점으로 민권적 민족운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점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독립협화운동, 의병전쟁, 애국계몽운동, 3.1운동, 광주학생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 사건들은 하나 하나 독립시켜 볼 때는 어는 것도 성공한 것이 없다. 농민혁명은 외세에 의해서 짓밟혀졌고 다른 운동들도 폭력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4,19도 비록 한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사회개혁을 주도하지는 못했다. 그 역시 군사적 폭력에 의해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이 한 커다란 화산맥에서 연쇄적으로 폭발된 사건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사의 밑에 깔린 중심적 염원이 큰 맥을 이루어 연쇄적으로 표출된 것이 되며 그렇게 볼 때 4.19도 성공여부를 물어 평가할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자기 구현의 한 장을 차지한 것이라고보아야 한다. 그것은 일단락된 것이 아니라 그 성취의 순간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4.19를 농민봉기와 함게 혁명운동의 한 단막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19정신의 핵, 자유

4.19 정신을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으나 그런 것들을 꿰뚫는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역시 ‘자유’일 것이다. 자유! 이것만큼 학생의 위치에서 어울리는 지표도 없을 것이다. 이 자유는 민족의 자유, 민중의 자유로 통하며, 사회 각 구성원들이 각기 제 자리에서 이 자유를 쟁취하는 운동을 펼때 우리가 염원하는 진정한 민족사회가 열릴 것이다.

4.19가 내세운 자유정신은 자기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 싸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령 노동자의 자율권은 노동자 스스로가 그 생존의 현장에서 찾아 가져야 참 제것이 될 것이고, 언론의 자유는 언론현장에서 붓을 든 집단 스스로가 찾아 가져야 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희생도 각오해야만 한다. (<신동아>에서 발췌)

*안병무(1922년 ~ 1996년)는 대한민국의 신학자로 민중신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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