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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13(화)
시(詩)로 본 미래전략-이어령(김소월의 '엄마야 누나냐 강변살자'를 중심으로)  

"시(詩)로 본 미래전략"

한국문단의 원로 이어령 교수께서 한 포럼에서 강의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시詩라고 하는 것은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자를 씁니다.
저는 오늘 시를 통해서 거칠고 거의 오리무중이고 답답한 미래 전략을 정치에서 찾지 않고 시 속에서 찾아본다면 어떤 것이 나오는가를 말하려고 합니다.

시 중에서도 아주 유치하고 누구나 제일 잘 아는 것, 제일 짧은 김소월의 시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첫 구절에 나오는 ‘강변 살자’에서 살자는 말은 한국 사람이 많이 쓰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처럼 ‘살자’라는 말 많이 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경영학자들이 경영이라고 하니까 어렵지, 살림살이라고 해 보면 쉽습니다.
‘살림’, 주부가 살리는 거, 그것이 살림살이입니다. '살다'가 두 번 겹친 말이지요.
그런 말이 외국어에는 없어요. 우리나라에만 있어요.

살림살이. 정부가 살림살이를 하고 서울시가 시 살림살이를 하고 집안이 살림살이를 하면 그 집안, 그 마을, 그 나라는 걱정이 없습니다.
죽은 것을 다 살리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거꾸로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니까 문제라는 것이지요.

시에도 바둑이나 오목처럼 룰이 있습니다. 그걸 모르고서는 시를 못 읽는다는 것입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 모르는 단어가 없다고 ‘나, 시 다 알았다’고 합니다.
천만의 말씀이지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했는데 아빠, 형님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아세요? 모르시잖아요.

왜 하필 ‘엄마야 누나야’라고 여성을 향해서 부르고 아빠, 형님에 대해서는 왜 강변 살자고 안했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신 적이 없으셨을 겁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하니까, ‘아, 그래 강변 살자는 얘기구나’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리고 강변 살자고 했을 때는 살자고 했으니까 현재 강변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현존하는 공간이냐, 부재하는 공간이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강변에 살자고 그랬으니까 틀림없이 엄마, 누나, 아버지, 형님이 강변에 안 산다는 거예요.
강변에 안 살면 어디에서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도시 같은 곳에 묻혀서, 인공적인, 아스팔트나, 돈, 전쟁, 공장 이런 소리, 피 자연 공간, 주어진 공간, 천연적으로 주어진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문화적인 공간이냐, 자연공간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로 만들어진 시적 공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이 10자밖에 안 되는 짤막한 말 속에
많은 공간을 함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요.
여성, 남성의 공간 대립, 자연과 문화, 현존하는 것과 부재의 공간 등입니다.

그리고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는 파열음 받침이 하나도 없습니다.
파열음인 ㅍ,ㅌ,ㅋ인 것이 하나도 없어요.
아빠, 파파는 ㅍ자 아빠. 살자는 받침이 ㄹ자 이지만 죽자는 ㄱ자입니다.
대개 ㄹ자 붙인 것은 돌돌돌 굴러가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전부 ㄹ을 유음이라고 해서 흘러갑니다.

그런데 ㄱ음은 꺾이고 막히고 뻗치고 그런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그런 단어를 시에서 쓰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솔방울이 떼굴떼굴 굴러갑니다. 밤톨이 떼굴떼굴 굴러가는 것은
계속 굴러간다는 것입니다.

‘떽떼굴 떽떼굴 굴러간다’라고 하면 떽할 때는 서는 거고, 떼굴하면 굴러가는 거예요. 떼굴떼굴하고 떽떼굴이 다릅니다.
지금은 수돗물이 잘 나오지만 옛날에는 수돗물이 툭하면 단수가 되었지요.
“야~ 수돗물 떨어진다. 빨리 받아라.” 이랬어요. “엄마, 이게 줄줄줄 하던 게 조록조록 흘러.” ㄱ자 하나만 넣으면 ‘이거 끝이다.’ 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에 앞이라는 말이 안 쓰여 있지만,
바로 뒤에는 ‘뒷문 밖에는’이라고 했으니까 앞이라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전, 후라는 방향 공간이 나온 것입니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두 줄이 서로 병행하며 서로 대응됩니다. 앞에는 문은 없이, 열린 공간입니다.
뒷문 밖에는 닫쳐진 공간으로 앞에는 강이 있고 뒤에는 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뜰에는 반짝이는’입니다. 깜깜한데 반짝이는 거 보셨어요?
모래는 혼자 빛날 수 없습니다. 태양 때문에 빛나는 것이지요. 반짝인다는 말은 시각적입니다.
만약 색안경 낀 사람이 있다면 반짝이는 금모래 빛을 못 봤을 것이다.
이것은 전방 공간이면서도 감각적으로 말하면 시각 공간입니다.

그 다음에 물질 공간으로 모래입니다.
그 모래가 태양 앞에 반짝이니까 모래라고 하는 작은 결정체, 광석이에요.
앞의 액체의 물이 흐른다면 모래라는 것은 정지된 물입니다.
정지된 물방울들, 결정된 물방울들입니다. 흐르는 것, 강물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바위가 아닙니다. 이런 액체, 입자, 고체, 물질공간입니다.
반짝이는 금모래 빛이라고 했으니까 색채가 있지요. 색채공간이 있습니다.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에서 갈잎이라는 것은 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대냐 활엽수냐 가지고 싸움 많이 합니다만 갈잎이 바람 불면 우수수 소리가 나요.
그럼 청각이잖아요. 앞에는 눈으로 봤는데 뒤에는 귀로 듣고 있습니다.
청각공간입니다. 시각공간에 반대되는 청각공간이니까 갈잎은 노래라고 했습니다.
앞에는 그림인데 뒤에는 노래, 그러니까 전방공간은 시각 공간, 눈으로 보는 것이고, 후방공간은 눈이 없으니까 귀로 듣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열일곱자도 안 되는, 스무 자도 안 되는, 어린아이가 부르는 이 노래 속에
우리들의 전 우주적인 공간이 있는데 이것을 한자로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배산임수(背山臨水)라고 그럽니다.

이렇게 본다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외치면 외칠수록 우리가 살게 되는 문화, 아버지 공간, 형님 공간, 역사 공간, 피 흘리는 공간, 땀 흘리는 공간에 대한
절실한 슬픔을 배우게 됩니다. 현재가 살고 있는 공간이 그런 공간이지요.
그러니 영원한 생명이 있는 생명공간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가 왜 이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알 수 있겠지요?
이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요. 우리가 잃어버렸던 공간인 것이지요.
많은 것을 얻으려고 돈 벌고, 전쟁하고 해봤지만 많은 걸 잃어버렸는데
그것이 여성들이 영원히 간직하고 있는 생명의 룰인 것이고,
생명의 공간인 것입니다. 삶의 공간입니다.

미래전략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누구도 이 문학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말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문학가들은 문학을 가장해서 정치, 경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공간을 누가 이야기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시인들이 이야기해야 하는데 시인들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문학을 사랑해서 나오신 여러분들이 아마 마지막 시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T.S 엘리엇의 시를 그 미래의 전략으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지혜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생활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생활 속에서 생명을 잃었고 지식 속에서 지혜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식마저도 정보 속에서 잃었지요.
그러므로 오늘의 정보사회에서 잃어버린 지식을 그리고 지식 속에서 잃어버린 지혜와 생명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시를 만들고 읽는 오늘의 가장 귀중한 과제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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