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1(월)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이재철  

<늘푸른나무/이달의 논설/2010년 8월>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

이재철 (100주년기념교회 목사)

8.15 해방 기념일과 건국 기념일을 맞아 '나라 사랑'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이재철 목사가 지난 6.25 기념일에 중앙일보에 게제하였던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문학작품은 1948년에 출판된 앨런 페이턴 의 소설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Cry, The Beloved Country)』였다. 억압과 착취의 땅 남아공에서 태어나 평생 조국을 사랑한 흑인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그 소설은, 그 제목과 내용의 흡인력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30여 년 전 그 책을 읽은 이후 지금까지 조국이란 단어만 접해도 그 책이 연상될 정도다.

조국이 무엇이기에 조국더러 울라는 것인가? 페이턴이 말한 조국은 두말할 것도 없이 조국을 이루고 있는 국민이었다. 그는 남아공의 동족을 향해 조국을 위해 울기를 촉구한 것이다. 조국을 위해 울 수 있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도 기필코 일어날 수 있다. 페이턴이 사랑하는 조국을 향해 울라고 외칠 때, 남아공에는 당시 30세의 넬슨 만델라를 비롯해 조국을 위해 울던 수많은 청년이 있었다. 그로부터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아프리카대륙에서 가장 절망적인 인종차별국이었던 남아공은 어둠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고 아프리카의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했다. 그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듯 인류화합의 상징인 ‘2010월드컵대회’가 지금 그 나라에서 열리고 있다.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남아공 국민이 흘렸던 값진 눈물의 결실인 셈이다.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결코 헛되이 마르지 않는다. 그 눈물은 월드컵 경기에서 목이 터져라 태극전사를 응원하고,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때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흘리는 순간적인 눈물, 자리를 뜨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메말라 버릴 감상적인 눈물이 아니다. 조국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조국의 아픈 현실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단 한번이라도 뜨겁게 울어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조국에 누를 끼치거나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조국을 위해 운다는 것은 당사자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그의 마음속에 애국심의 씨앗이 이미 싹터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애국심은 흔히 오해하듯 거창한 것이 아니다.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소리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애국심은 일상생활 속에서 모두를 위한 공익을 스스로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단 한번이라도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자신의 사익을 위해 공익을 해치지 않는다. 단 한번이라도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공공의 법을 짓밟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정치 혹은 이념단체가 아니라 단 한번이라도 조국 자체를 위해 울어본 사람은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는다. 단 한번이라도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공직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단 한번이라도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자신의 부를 위해 이 좁은 국토를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지 않는다. 단 한번이라도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남의 자식 생명이 담보된 국방의 혜택은 당연한 듯 누리면서도 자기 아들은 병역의무를 면제받게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단 한번이라도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에게 외국국적을 안겨주려 원정출산을 꾀하지 않는다. 단 한번이라도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자신보다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단 한번이라도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단 한번이라도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조국을 위한 희생의 고귀함과 헌신의 가치를 깨닫고 실천한다. 단 한번이라도 조국을 위해 울어본 사람은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 그 속에서 살아갈 자신과 자기 후손의 삶을 존중하는 최선의 길임을 안다.

어제(6월 25일)는 북한의 기습남침에 의한 민족상잔의 6·25전쟁 발발 60주년이었고, 다가오는 8월 15일은 광복 65주년, 8월 29일은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한 경술국치 100주년이다. 이를테면 올해는 우리 민족사에 하나의 매듭이 맺어지는 해다. 역사는 진전하되 어떤 경우에도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도, 민족상잔의 비극도 이 땅에서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사에 또 하나의 매듭인 올해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모두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단 한번이라도 선조들이 기상을 떨치던 만주를 잃고, 간도를 잃고, 백두산 반쪽을 잃고, 그나마 한반도마저 두 동강 난 조국을 위해 울자. 보배 같은 청년 46명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 남북이 여전히 준(準)전시 상태에 있는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자. 북한 땅에서 같은 동족이 압제에 시달리고 기아로 죽어가는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자. 광복된 지 65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과거의 이념에 얽매여 새로운 미래를 내다보기 힘든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자. 소위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국민통합은커녕 도리어 연령·지역·세대·계층별로 온 국민이 갈가리 찢어지고 있는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자. 진실이 외면당하고 유언비어가 판을 치는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자. 정직과 투명성보다는 거짓과 불의가 횡행하는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자. 인간의 인격마저 돈으로 가늠하는 배금주의(拜金主義)의 노예로 전락한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자. 경제적 부익부빈익빈뿐 아니라 공교육의 붕괴로 교육마저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자. 조국에서 전쟁이 터져도 입대하지 않겠다고 응답하는 이기적인 젊은이가 절반이나 되는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울자. 세상의 청량제가 되어야 할 종교마저 이해와 권력집단으로 전락한 조국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기도하며 뜨겁게 울어보자.

예수님도 당신의 조국을 위해 울지 않았던가? 조국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것은 조국의 아픔을 치유하는 생명의 텃밭이다.

2010년 06월 26일 (토) 중앙일보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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