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7(금)
소노 아야꼬의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늘푸른나무/ 나이듦의 지혜/2017년 1월>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자립의 능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골절수술 후 목발을 짚고 다니던 무렵,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 거리의 모든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10킬로미터쯤은 아무렇지 않게 걷거나 , 달리거나, 점프하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도 하는 일을 나만 못하게 된 것 같았습니다.
내 안의 열등감을 확인하자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게 바로 나구나, 라고 진실을 알게 된 것 같아 오히려 안심이 됐습니다. 나 자신을 분명하게 자각할 수 있게 된 것은 귀중한 선물이었고, 나의 만년은 나라는 인간의 본연에 더욱 가까와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그때그때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운명이라는 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안주하면 시간은 더욱 고통스러워질 뿐입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나를 파악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한때 발이 아파 양말을 신는 것조차 힘겨웠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픔을 견디는 것도 인생이므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보면서 참아내자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심할 때는 옷을 갈아입는 것도 힘들어서 몸차림을 하는데 시간이 무척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내가 비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런 나를 향해 “서둘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기다려주었습니다. 그 순간 애정이란 손을 내밀기보다는 곁에서 지켜봐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누가 대신해주더라도 별로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 자립이라는 긍지만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힘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강연이든 취재여행이든 모두 혼자 다녔는데 목발을 짚게 된 후에도 어깨에 핸드백을 걸치고 나 혼자 돌아다녔습니다. 미국도 혼자 다녀왔습니다.
그것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는 휠체어가 끝도 없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대체 몇 대나 될까, 하고 구경하고 있는데 휘체어를 관리하는 직원 눈에는 내가 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타시죠”하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는 걸을 수 있는 동안에는 내 발로 걷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5분 걸린다면 나는 15분 걸으면 되는 것입니다. 휠체어에 타는 게 편하다, 타고 싶다, 라고 원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고마워요. 하지만 운동이 되니까 걸을래요.”
“게이트 넘버는 알고 계세요?”
“101번이에요”
“꽤 멀군요. 타고 가시는 게 좋겠어요.”
“괜찮아요. 천천히 걸어갈게요.”
이렇게 사양한 배경에는 평지에서 운행중인 에스커레이터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구간이 고장나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직원 말대로 게이트까지 정말 멀었습니다. 좋은 교훈이었고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미국은 생활 전반이 기계화된 나라라고 일컬어지는데 정작 그 기계가 고장나도 금방 고치지는 않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을 때 이번에는 짐이 도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내 여행가방이 홀로 영국으로 가버렸다는 얘기였습니다. 가뜩이나 영어에 자신이 없었는데 상담직원은 사투리가 매우 심했습니다. 항공사 직원과 실컷 다툰끝에? 귀국 전날 간신히 여행가방을 되찾았습니다.
가방을 되찾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유실물 센터가 인도에 있었습니다. 인도인의 영어발음에 여간 애를 먹은게 아닙니다.
이런게 바로 여행이었고, 이것이 바로 인생이었습니다. 인생은 투쟁입니다. 싸움을 포기하고 “표 좀 사다줘요.” “몇 시에 어디에 도착하는 거지?” “도시락은 어떻게 할 거야?”라고 남에게 사정하는 것은 살아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노 아야코의 <나이듦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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