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12(월)
고뇌가 사라진 시대가 늙음의 힘을 약화시켰다.-소노 아야꼬  
<늘푸른나무/삶의 지혜/2016년 8월>

고뇌가 사라진 시대가 늙음의 힘을 약화시켰다.

소노 아야코

왜 점점 지혜가 없는 노인들이 많아지게 된 것일까?

원인중 하나는 기본적인 고뇌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전쟁이 있고 , 제대로 먹지 못하는 빈곤이 있고, 치료가 어려운 불치병이 있었습니다. 집도 허술해서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거나 산사태가 일어나는 등 자연재해도 심했습니다. 그런 일을 하도 당하다보니가 운명의 잔인성에 눈을 뜨게 되어 국가나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는 지혜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쟁에 대한 위험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내일까지 살 수 있느냐 하는 고뇌가 사라졌습니다. 의술이 발전하면서 결핵으로 죽는 사람도 거의 없고, 옛날처럼 자녀 다섯중 하나를 잃게되지도 않았습니다. 먹고 살 힘이 없는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생활보호를 받습니다. 산사태, 쓰나미도 기상청이 미리 예견하고 알려줍니다.

일기예보만 하더라도 “오늘은 저녁부터 비가 내리니까 우산을 들고 외출하세요.” 또는 “내일은 날이 춥습니다. 두터운 스웨터를 입고 나가시는게 좋겠습니다.”라는 등 과보호에 가까운 관심을 쏟아줍니다. 생활의 모든 부분을 누군가 지켜보고 관심을 기울여주고 있기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정부가 나서줄 것이라고 안심합니다. 그때문에 불만이 생겨도 자신이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정부 탓으로 돌립니다.

내가 방문했던 나라들은 상황이 우리와 딴판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전쟁과 질병으로 죽어갑니다. 굶어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일본에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말이 은행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를 대학에 보낼 돈이 없다로 해석되고 있지만 , 세계의 대다수 나라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은 표현 그대로 오늘 저녁에는 입에 아무것도 넣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매스컴은 ‘거지’라는 표현이 차별적이라면서 점차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세계적인 추세에서 거지는 여전이 상용어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먹을 물을 길어 오려면 1킬로미터, 2킬로미터씩 걸어가야 합니다. 그만큼 물을 구했다는 행복도 큽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는 저녁 내내 집 앞에서 아이들이 절구와 정구공이로 벼를 찧습니다. 늦은 저녁에야 간신히 쌀을 빻아 엄마가 밥을 짓습니다. 전기도 없어서 아궁이 장작불이 고작입니다. 그 불빛을 의지해 찬을 만들고 잠시 후에는 밥 냄새가 감돕니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별것도 없습니다. 야채를 삶거나 운 좋게 물고기를 구해 함께 요리하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가슴을 펴고 밥상을 대합니다. 오늘 저녁 내 가족에게 밥을 먹일 수 있게 되었다는 뿌듯함입니다. 남자로서 제 몫을 다했다는 표정입니다. 가족도 그런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숨기지 않습니다.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행복하게 저녁 식사를 합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인간생활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들 “일본은 경제대국인데 왜 국민은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곤 합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가난을 모르기에 풍요도 모릅니다. 오늘도 내일도, 먹을 것이 있는데 당연합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집니다. 마시는 물로 몸을 씻고, 변기의 용변을 마시는 물로 처리합니다. 옛날에는 일본인도 물을 구하려고 먼 길을 걷고, 땔감을 구하느라 하루가 지나곤 했는데 요즘 같아서는 상상도 못 합니다. 모든 것이 주어지는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팔자 좋은 노인네가 자꾸만 늘어나는 까닭입니다.

세계에서 일본처럼 행복한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반세기 넘게 평화가 지속되었고, 대를 물려 정치하는 집안은 많아도 총리대신의 친족과 최측근 부하들이 정부 요직을 독점하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경찰과 판사가 폭력배와 연관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격차사회라는 말이 있지만 일본처럼 격차가 크지 않은 나라도 드믑니다. 국민 누구나가 공짜로 구급차를 이용할 수 있는 나라가 생각처럼 많지는 않습니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생활보호법이 보장된 나라도 매우 극소수입니다.

그래서 지진과 태풍이 일본 입장에서는 가장 큰 공포입니다. 하지만 재해 당일부터 빵이 배급됩니다. 웬만한 도상국에서는 재해가 터지고 며칠이 지나야 꿂주린 피해지의 주민들에게 죽과 삶은 콩이 배급됩니다.날것으로 배급될 때도 많습니다. 이재민들은 힘겨운 걸음을 옮겨 연료를 구해 배급받은 콩을 삶거나 구워 먹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재난이 발생한 당일부터 과자와 빵이 지급되는데 “3일간 빵을 먹었다. 이젠 신물이 난다”라면서 불만을 터트리기 일수입니다.그 정도로 우리가 사치스러워졌습니다.

노인세대만이아니라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인데 원초적인 불행을 겪어보지 못한 만큼 감사를 모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모르기 때문에 요구도 커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노인세대가 이에 앞장서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소노 아야코의 <나이듦의 지혜;이수 간행> 에서


*소노 아야코-도꾜 출생 소설가 1954년에 <멀리서 온 손님>으로 문단 데뷰. 아시아, 아프리카 국제봉사재단 이사로 활약. 해외 일본인 선교사로 활동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