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4(토)
하나님의 눈으로 노년을 바라보라.-빌리 그래함  

<늘푸른나무/이달의 논설/2012년 1월>

빌리 그래함의 <새로운 도전>

<새로룬 도전>은 빌리 그래함의 최신간 <Nearing Home>을 한국어로 출판하면서 붙인 책제목이다. “평생 크리스천답게 죽는 법만 배웠지, 죽기 직전의 나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배운 게 없다”는 저자의 말대로 전혀 배워보지 못한 나이듬의 영역에 도전해 가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평균연령이 급속히 상승하는 고령화 시대에 죽음을 앞에 둔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것인지를 솔직하게 술회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경험을 통하여 잔잔하게 이야기해 주는 그의 목소리는 또 다른 한해를 계획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이 되리라 생각되어 새해의 권두 논설로 책의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노년을 바라보라.

“내가 이 나이까지 살게 될 줄이야!”

평생 크리스천답게 죽는 법만 배웠지, 죽기 직전의 나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배운 게 없다. 그래서 아쉽다. 백발이 성성해지고 나니 하루하루 버티기가 정말이지 쉽지 않다.

끔찍한 노년, 정말 그렇다. 어디든 노인들이 모인 곳에서 가장 흔한 대화 주제는 단연코 질병과 고통에 대한 것이다. 본향이 그립다.

93번째 생일이 벌써 내일모래다. 하나님이 나를 천국으로 부르실 날이 머지않았다. 그날이 어느 때보다도 더 기다려진다. 나를 위하여 하늘에 쌓인 상금은 제쳐두고 지금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심신의 짐을 어서 벗어던지고 싶음 마음이 간절하다. 얼마 전부터 나이 들면 나타난다는 질병이 하나둘씩 내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 나라에 갈 날이 기다려지는 또 다른 이유는 64년 가까이 내곁을 지켜 준 사랑하는 아내(Ruth)와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2007년 아내는 그토록 사랑하고 충성되게 섬겼던 주님 곁으로 갔다. 아내의 눈물과 고통이 마침내 끝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아내가 떠나가던날 나는 내 존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꼈다. 아내가 사무치도록 보고 싶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붙잡아 두시는 이유

그렇다, 끔찍한 노년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은 끔찍한 노년을 원치 않으신다. 성경은 노년을 미화하지 않되 이를 갈며 죽지 못해 사는 끔찍한 시기로 여기지도 않는다. 성경에서 그리는 노년은 하나님이 데려가실 때까지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억지로 사는 시간이 아니다.

정말 그렇지 않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붙잡아 두시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작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셨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끝자락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목적과 일치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어떻게 해야 점점 약해져만 가는 육신의 한계를 이기고 그 고통의 한 복판에서 내적으로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나이를 먹을 수록 이런 질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혹시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노년은 날이 갈수록 무거운 짐일 뿐인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늙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중년의 세월은 점점 먼 기억속으로 사라져 가고 인생의 황혼기가 급속고로 다가왔다. 절친한 친구의 이름을 자주 까먹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이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얼굴 대부분이 엄청나게 젊어 보이기 시작했다. 식당 종업원이 알아서 노인 할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웃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기력이 예전만 같지 않은 것을 실감할 때와 평생을 알고 지내오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날 때면 한없이 서글펐다. 특히 그렇게 강하던 아내가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나날이 약해져 가던 모습은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 힘들었다.

“중년 환자들은 대부분 현실을 부인한답니다. 자신이 언제까지나 격한 운동을 즐기고 어디든 여행을 할 수 있는 줄 알죠. 언제까지나 몇일 밤을 새워가며 일할 수 있는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몸에 이상이 생겨도 의사인 내가 고쳐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언젠가 몸이 예전만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올겁니다. 언젠가는 늙을 때가 옵니다. 그때 그들은 충격을 받을 겁니다. 늙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어느 의사가 내 동역자중 한사람에게 말한것인데 꼭 나를 두고 한 이야기 같았다.

나 역시 늙는 것이 좋았다고 하면 순전히 거짓말일 것이다. 예전처럼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마음뿐 몸은 따라주질 않는다. 노년의 쇠약한 몸과 불확실한 미래가 싫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늙지 마세요!” 나는 여러사람에게 농담조로 말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농담이다. 늙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이를 먹으면 안 좋은 점이 많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일 뿐이다.

성경은 늙음의 부정적인 측면을 숨기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도 그래야 한다. 쇠약한 노년을 가장 시적이고도 솔직하게 묘사한 글 중 하나가 구약의 전도서에 나온다. 하나님을 떠난 삶의 무익함을 깨달은 전도서 기자는 독자들에게 젊을 때에 하나님께 삶을 바치라고 강권한다. 그렇게 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기쁨을 주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아울러, 너무 오래 미루면 하나님의 좋은 선물들을 누리기에 늦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지금 하나님께 다가가라고 강권한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어질 것이며. . . 맷돌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 .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저도서 12:1-5)

이 시적인 표현의 밑바탕에는 세월의 흔적이라는 서글픈 현실이 흐르고 있다. 쇠약해지는 기력, 침침해지는 눈, 떨리는 손 마디, 관절염, 건망증, 약해진 청력, 외로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 .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몸에서 내 맘대로 움직이는 게 하나도 없어” 일전에 한 친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정말로 늙으면 그냥 이러다가 죽고 마는 것인가? 노년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짐일 뿐인가? 그저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가?

성경은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 세상을 뒤흔든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별천지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 백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하는 귀재는 몇 명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우리에게 귀감이 될만한 삶을 살았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다. 늙으면 모든 것이 예전보다 힘들어지지만 말년이 오히려 평생에 가장 보람찬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그러했고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성경의 인물들은 세월의 그 어떤 도전도 이겨 낼 수 있도록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굳게 무장했다. 이것이 그들이 큰일을 이룬 비결이었다. 그들이 놀라운 일을 행한 것은 노년의 장애물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노년은 불시의 기습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하나님은 노년에도 여전히 우리와 함깨하신다.

또한 하나님이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우리를 데려가지 않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이 드는 것을 부인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계획 속에서 노년기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되 비범한 믿음의 소유주들이었다.

그들은 노년이라는 반갑지 않은 시기를 어떻게 대비하였을까? 현재 나이를 떠나서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장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표현을 좀 바꿔 보면, 어떻게하면 우리의 삶을 세월의 흐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굳은 기초 위에 세울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미 그 답을 주셨다. 우리가 그 답을 찾아서 삶에 적용하는 것이 문제다.

‘승리감과 기대감으로’ 집을 향해 가라.

노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 최대의 승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죽음을 상대로 한 승리보다 더 위대한 승리가 또 있을까? 부활하는 날, 나는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품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세상은 노년기를 달가워하지 않지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120세의 모세처럼 마지막 경주를 멋지게 장식하기를 원한다.


모세가 모압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 .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땅에서 죽어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신 34:1, 5, 10)

이 얼마나 멋진 마무리인가. 모세는 비록 지난날의 불순종 탓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말년에 그 땅을 바라보는 영광을 누렸다. 그렇다면, 노안으로 우리 눈이 침침해지는 것은 혹시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 눈을 영원한 세상에 고정시키시기 때문이 아닐까?

모세는 죽은 뒤에도 위대한 군대사령관인 여호수아를 통해 세상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신 34:9)

.당신은 다음 세대에 어떤 유산을 전해 주고 있는가? 하나님이 지금까지 행하신 일을 기억하면 늙어서도 열정이 식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당신의 행동과 태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당신의 영향력을 반감시키지 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는 요지부동의 기초를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라. 그러면 그 세대가 여호수아처럼 “지혜의 영이 충만”할 것이다.

 

빌리 그래함 지음, 정성목 옮김 <새로운 도전> 두란노 출간 에서

원서의 제명은 <Nearing Home by Billy Gtaham(Thomas Nel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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