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0
2010/1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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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배우는 미국>을 마치면서  

<늘푸른나무/역사로 배우는 미국/2010년 12월>

<역사로 배우는 미국>을 마치면서

4년 전 <늘푸른나무>를 시작하면서 연재가 시작된 <역사로 배우는 미국>은 때로는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번씩 새 글을 올리면서 이번 12월 1일자 후기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미국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학교에서 미국사를 따로 배운 것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히 책을 구해서 읽어보려니 영어가 장벽이 되고 그래서 몇 십 년을 살아왔음에도 서먹서먹하기만 한 미국, 미국 역사공부를 좀 하기는 해야 할 텐데 하는 사람들과 함께, 같이 공부해보자는 생각에서 <역사로 배우는 미국>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역사에 대해 남달리 공부한 것도 아니요 특별히 자료를 수집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한, 두 권 사다가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서재에 꽂아 두었던 책들이 있어 먼지를 털어가며 다시 참고하면서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학문적인 성격의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미국사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Kenneth C. Davis가 쓴 <Don’t Know Much About History-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American History but Never Learned>를 주 참고서로 하고 다른 책들을 참고하면서 각주(Notes)를 부치는 번거로움은 줄였습니다.

처음에는 main text의 배열을 따라 시대순으로 편년체의 역사를 서술하였습니다만 후반에 와서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설명만으로는 이해가 충분치 못한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되어 저의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주제별로 내용들을 모아 역사적인 설명을 시도하여 보았습니다.

처음 연재를 시도하면서 도시나 길거리 이름들을 보면서 ‘아하! 이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이구나!”하고 미국에 대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공부해 보자고 약속하였으나 그렇게 하다가는 10년이 걸려도 다 하기 어렵고 또 독자들께서 지루해 할듯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음을 사과 드립니다.

미국사의 특징

그 동안 여러 각도에서 결론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하였기에 따로 결론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대단원을 마치면서 나름대로 미국사에 관한 소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미국은 평화롭고 풍요한 나라라는 일반적인 인상과는 달리 많은 희생 위에 힘겹게 세워진 나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황금을 찾아 신대륙을 찾아 온 사람들이 축복 속에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고 노다지를 캐면서 세운 나라가 아닙니다.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는 많은 희생이 뒤를 이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던 개개인들의 희생을 우리는 메이프라워 호를 타고 프리머스에 도착한 필그림들의 거의 반이 1년 안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가운데서 생생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만이 아니라 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희생과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수많은 흑인 노예들의 희생 역시 오늘의 미국을 가능케 한 귀한 초석들입니다.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미국이란 나라의 비전을 분명히 하고 초석을 다지기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배고픔을 면하려고 대서양을 건너와 열악한 작업환경을 무릎 쓰고 일했던 이주노동자들, 사막을 횡단하며 목숨을 바쳤던 개척자들과 대륙횡단 철도와 파나마 운하 등을 건설하는데 동원되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은 미국에 경제적인 번영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제1차 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미국의 젊은이들은 미국을 세계 제1의 강국으로 떠바쳐 준 디딤돌이었으며 한국전과 월남전에서 숨진 미국군인들은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하고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군림하도록 이끌어준 견인차들이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9/11 테러와 함께 계속되는 전쟁과 경제침체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으며 미국이란 나라는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미국이 발전하는데(그로발 시대에는 발전의 개념도 바뀌어야겠지만) 하나의 받침대를 놓기 위한 희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현재 미국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어느 것 하나 희생 없이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다음으로 미국은 영고성쇠(榮枯盛衰)를 거듭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특히 9/11 이후 ‘미국의 시대는 끝났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지난 2,3년 동안의 경제침체를 경험하면서 ‘미국은 쇠락의 길을 달려가고 있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만 미국역사를 보면 결코 평탄한 상향곡선을 그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높고 깊음에 차이는 있었지만 올라가다 보면 내리막이 있고 내려가다 보면 오르막이 보이는 영고성쇠의 역사를 반복하였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겪었던 인디안들과의 싸움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때 본국(영국) 정부의 세금공세는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굴욕적인 안정이냐? 위험을 각오한 독립이냐?의 기로에서 독립을 선택했을 때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영국과의 전쟁은 어쩌면 무모한 것이었습니다.

독립 후에도 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고 영토를 확장해 나가며 신나던 때는 잠시뿐 이해관계가 다른 13개 주들과 계속해서 늘어나는 여러 주들을 같은 이념아래 하나로 결속하여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건국한지 100년도 되지 않은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 60만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50년은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산업화를 거쳐 세계의 강국으로 발 돋음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세계 제1차 세계대전과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은 다시 한번 크게 휘청거렸습니다. 그러나 경제공황을 극복한 미국은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군수산업이 호황을 이루고 전쟁에 승리하면서 세계의 강대국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입니다.

2차 대전 이후에도 크고 작은 고비들이 계속되었지만 21세기로 들어서기 전까지 비교적 평탄한 행보를 하면서 번영의 상징이요 평화의 사도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항공기 테러사건은 미국을 다시 한번 내리막 길로 차버렸습니다. 안보의 위협과 전쟁의 부담과 경제적인 불황의 늪에 빠진 미국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 주목의 대상입니다.

미국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또 다른 하나는 미국에는 비전을 가진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어 나라를 이만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에 대서양을 건너온 성직자들과 지도자들은 대륙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비전을 가지고 대서양을 건너온 사람들로 각 지역에서,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울려져 ‘미 합중국’이라는 꽃을 피웠고 그것을 탐스럽고 아름답게 가꿀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보다 완전하고 훌륭한 새로운 영국, New England를 온 세계가 보란 듯이, 마치 산 위에 세워진 성(城)과도 같이 신대륙에 세워보려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방법은 달랐습니다. 퓨리탄 정신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사회를 통해 비전을 이루려는 지도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신앙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 사회가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지도자들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위해서는 노예를 부리는 일도 허용 되야 한다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주신 인권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영적 각성을 주장한 종교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교육을 통해 지도자를 양성하고 국민들을 계몽해야 한다며 하버드나 에일 같은 학교를 세운 종교지도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자유가 보장되고 번영이 따르는 새 나라, 분명 영국보다 훌륭한 나라, 이 세상에서 신(神)의 뜻을 가장 잘 받드는 나라를 세우려는 비전으로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50여 년의 미국 역사상 44명의 대통령이 거쳐 갔습니다. 분명한 비전을 보여주었던 대통령들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으나 그렇지 못했던 대통령들은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훌륭한 대통령이 별로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전 보다는 정치적인 흥정에 의해 대통령이 되거나 인기영합적인 정책에 몰두하던 사람들은 당대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나라를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 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비마다 비전을 가진 대통령이 나타나 위기를 극복해 온 것을 봅니다. 역사의 굴곡과 함께 지도자의 정책보다 비전이 국가를 위기에서 탈출하도록 작용한 것입니다

60만 명의 젊은이들의 목숨을 죽음으로 내몰아 어쩌면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몰릴 수도 있었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것도, 경제적 대공황을 맞아 의회의 견제와 대법원의 위헌판결에 맞서 고전하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대공황을 극복한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하는 것도 그들이 쇠퇴해 가는 국가적인 비전에 충실하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래 전부터 ‘미국은 세계의 십자군인가? 아니면 침략자인가?’라는 논쟁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약소국들을 돕는다는 명분아래 자국의 실속만 차리고 영향권 아래 두려는 신 제국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입니다. 국익(國益)이 우선이라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들의 한결 같은 외교정책일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만은 예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외부의 생각과 실상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미국의 비전만은 예외를 지향해야 한다는 내부의 생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온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이것을 미국의 위선(僞善)이라고 폄하하지만 미국을 건강하게 하는 DNA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역사에서 보는 또 하나의 특징으로 다원주의랄까, 개방성이라고 할까,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들수 있겠습니다. 여러 다른 민족들이 모여서 형성된 이민사회이니 어쩌면 자연적인 현상일지도 모르지만 단일민족사회에서 성장한 사람에게는 경이요 부러움이었습니다. 비전이 지도자들에 의해 제시되고 이끌어 가는 힘이라면 관용과 포용은 보통사람들에 의해 훈련되고 형성되는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미국의 종교사(History of Religion)는 기독교사(History of Christianity)였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가운데는 한국이라면 이단(異端)이라고 내 팽 겨버렸을 종파들이 함께하고 있었으며 20세기 후반부터는 동양과 중동의 종교들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물론 보수기독교도들의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발달된 종교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대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협과 관용은 물론 정치에서도 가장 중요한 도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이해되고 있기에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고 줄을 설 필요도 없습니다. 얼마나 자신의 주장이 호소력이 있고 설득력이 있는지 그리고 지도자의 경우에는 비전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은 결코 완전한 나라가 아닙니다. 미국 역사를 보면 많은 오점과 실패로 점철된 역사입니다. 대서양을 건넜던 조상들과 건국 선조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나라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위대한 것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 주고 있습니다.(끝)

*그 동안 부족함이 많은 글을 계속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독지가가 나타난다면 그 동안의 글들을 묶어 종이 책으로 출판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만 우선 CD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준비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을 연재하였고 <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을 연재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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