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49
2010/9/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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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제3절 부시의 등장  

<늘푸른나무/역사로 배우는 미국/2010년 10월>

제9장 20세기의 막을 내리며

제3절 부시의 등장

경제적인 호황으로 국민들의 인기가 오르는데다 탄핵 안 부결로 성 스캔들에 면죄부를 받게 된 클린튼은 큰 짐을 벋고 날아갈듯한 기분이었습니다만 두 차례 8년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선거를 해봐야겠지만 지난 8년 동안 부통령으로 충실한 동반자였던 알 고어가 유권자들에게 유능한 대통령 후보라는 인상을 충분히 보여주었기에 민주당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인기를 보태면 후임자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 했습니다.

고어와 부시의 대통령 선거

새로운 밀레니움이 시작되는 2000년을 앞두고 컴퓨터 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법석을 떨면서 불안 속에서 맞이한 2000년의 새 태양이 전 세계의 축제 속에 아무 탈없이 떠오르자 희망의 21세기를 향한 기대 속에서 예비선거를 거쳐 전당대회를 통해 후보를 확정하고 11월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은 선거의 흥분에 빠져들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부통령 알 고어가 일찌감치 후보로 부상되었고 공화당에서는 8년 전 클린튼에게 패배한 죠오지 부시(아버지)의 아들인 텍사스 주지사 죠오지 부시 (아들)가 상원의원 맥케인을 누르고 후보로 확정되었습니다. 미국역사상 가장 경제적인 호황을 누린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고용상태는 여전히 높고 물가는 비교적 낮은 건강한 경제상황 속에서 세계적으로도 비교적 평화로운 상황이어서 어느 모로 보나 현정권 쪽에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8년 전에 클린튼과 한 팀이 되어 부시를 이긴 알 고어와 아버지 부시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아들 부시의 대결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거기에 미국에서 소비자 보호운동의 대부로 국민들의 신임을 받아온 네이더(Ralph Nader)와 왕 보수 언론인으로 잘 알려진 뷰캐넌(Patrick Buchanan)이 제3당의 후보로 각각 출마하여 격전을 벌렸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1960년 케네디-닉슨 대결이래 최대의 접전이 벌어졌고 1888년 선거 이후 처음으로 일반투표에서 다수를 얻고도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무엇보다도 당락이 유권자들의 투표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법원의 표결 수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세계는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전혀 민주주의적이 아닌 대통령 선출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러고도 민주주의가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투표결과는 알 고어가 약간 우세한 듯 했습니다. 투표일 늦게 까지도 프로리다 주의 승자를 점지하지 못하고 있던 방송사들이 드디어 알 고어가 프로리다 주의 승자이며 결국 당선자로서 필요한 선거인단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급한 판단이었고 여전히 프로리다 주의 개표는 당락을 오가는 시소를 벌이다가 다음날 아침에 가서는 방송사들이 부시가 프로리다의 승자이며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알 고어 부통령도 부시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패배를 시인하고 부시의 승리를 축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표 차이가 아주 적고 투표와 개표과정에서 부정이 있을 수 있다는 보고를 받은 고어가 패배를 인정했던 것을 철회했고 방송사들도 승자 인정을 연기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알 고어가 전국적인 일반투표에서는 앞서고 있었으며 선거인단 확보에서도 255대 246으로 앞서고 있었지만 필요한 270에는 미달이었습니다. 그리고 비공식 집계에 의하면 부시가 프로리다 주 전체에서 알 고어에게 1784표 앞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다 선거일에 프로리다에서 투표를 못했다는 불평들이 민주당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특히 민주당 성향의 유대계 은퇴자들이 많았습니다. 개표과정에서는 구멍이 2개 뚤려 무효 처리된 표들이 많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프로리다의 당시 주지사가 부시 후보자의 동생 젭 부시(Jeb Bush)라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재검표와 방법에 관한 소송과 역 소송들이 양쪽에 의하여 계속되면서 결국은 지방법원에서부터 연방 대법원에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한달 이상을 끌어온 소송은 12월 12일 연방대법원이 재검표를 허용한 주 대법원의 결정에 반대하여 연방 대법원에 제기한 부시측의 소송에 대하여 주 대법원이 다시 심사하도록 명령하는 한편 헌법의 시한 때문에 재검표 할 시간이 없다는 것 역시 명시함으로써 재검표의 길을 막고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것도 5대4의 결정으로.

다음날인 12월 13일 알 고어는 텔레비전에 나와 더 이상 국가적인 혼란을 막기 위해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하고 더 이상 소송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 부시의 당선을 인정하였고 부시는 대통령 당선자로서 첫 연설을 하였습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대법원이 대통령 선거결과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6대 죤 퀸시 아담스(John Quincy Adams) 이래 처음으로 부자(父子) 대통령이 탄생하였습니다.

참고로 득표상황을 보면 전국적인 총 투표수는 고어 51,003,894(48.31%), 부시 50,495,211(47,89%)로 고어가 508,683을 앞섰으며 네이더가 2,834,410표로 3%를 차지하였습니다. 자유주의 성향의 네이더가 프로리다에서 받은 표가 97,488표로 그가 아니었더라면 고어가 당선되었으리라는 가상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의 공식적인 통계는 271대 266으로 부시와 체니의 당선이었습니다.

연방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는 그들의 정치성향에 따라 확연히 갈립니다. 민주당 편향적인 자유주의적 프로리다 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적절한 제재라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주장이 있는가 하면 미 법조계 역사상 가장 부패한 판결이라며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소유물이므로 재판 받을 권리가 없다고 판결한 드레드 스캇(Dread Scott) 판결 못지않은 오판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국의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었고 모처럼 논의도 활발해 졌습니다. 전통을 지키기 보다는 합리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여론이 쏠리는가 하였지만 쓰나미와 같이 몰아 닥친 9/11 테러사건으로 이러한 관심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2000년의 미국

1790년 워싱톤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시작된 인구조사(census)는 매 10년마다 시행하면서 2000년에도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성장함에 따라 경제문제에 대한 질문이 추가되었고 1850년에는 사회문제에 대한 질문도 삽입되었으며 1940년에는 통계학의 방법을 도입하고 1950년부터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등 그 범위와 방법이 발전하였습니다. 새 천 년으로 들어선 2000년의 미국의 상황을 보면

총 인구는 281,492,906으로 1990년 때보다 13.2%가 늘었으며 여자가 남자보다 약간 많았다(여자 143,368,000, 남자 138,054,000)) 미국에서 인구성장이 가장 빠른 지역은 네바다, 아리조나, 코로라도, 아이다호 등 서부지역이었으며 가장 인구가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 주였습니다. 인구조사결과 12명의 하원 의석이 동부에서 서부로 옮겨졌습니다.

미국에서는 매 8초마다 아기가 태어나며 매 14초마다 한 사람이 죽어 갑니다. 그리고 외국 이민자들이 34초에 한 명씩 늘어납니다.. 미국의 유아 사망률이 세계에서 33번째며 16%의 어린이들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종적으로는 75.1 %가 백인, 12,3%가 흑인이나 아프로 아메리칸, 0.9%가 아메리칸 인디안, 3.6%가 아시안 그리고 히스패닉 13%로 집계되었습니다.

1950년대 부모와 두 자녀 그리고 개 한 마리와 2대의 차고를 가진 집을 가진 가정이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이었는데 2000년 대 현실은 독신 가정이 거의 반에 육박하였다는 것입니다. 싱글 맘이나 홀아비가 아이들을 기르거나 아니면 아예 독신으로 사는 가구들이 과반수에 이르면서 한편으로는 미국의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2000년대의 두드러진 현상은 흑인들의 고위직 진출이 급격하게 증가되었으며 2008년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까지 발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시의 취임과 9/11 테러사건

온 국민들의 관심 속에 쉽게 결판이 나지 않을 듯 했던 대통령 선거 개표결과가 일단 부시의 당선으로 결정되자 국민들은 그 동안 제기된 문제의 해결을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각자 자신들의 생업으로 돌아갔으며 컴퓨터 대란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도 새 천 년을 맞을 기대에 차 있었습니다. 50만 표나 더 얻은 후보자가 재검표도 한번 제대로 못해 보고 낙선이 되는가 하면 주 대법원과 연방 대법원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리며 실랑이를 벌리고, 매스컴을 통해 사태의 진전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서도 데모 하나 없이, 평화로운 가운데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보면서 세계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놀랐고 새삼 민주주의의 강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와 부통령 당선자 딕 체니는 아버지 부시의 대통령 재임 시 보좌하던 보수적인 공화당 인사들을 중심으로 내각을 조직하고 1월에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 법정투쟁을 통해 당선을 쟁취한 부시의 공화당 정부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군 출신 흑인 파월을 국무장관으로, 매파 공화당으로 불리는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으로 강력한 외교정책을 펴나가며 국내적으로는 8년 동안의 민주당 정책들을 과감하게 바꾸어 나갔습니다. 

중동과 유럽에서 반미 테러들이(대사관을 습격하거나 항구에 정박중인 군함에 대한 폭파시도 등) 가끔 있었고 새 정권은 테러 전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전 정권의 특별한 조언도 있었다지만 의욕적으로 새로운 정책들을 펼치기에 바쁜 부시 정부로서는 특별히 테러전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런 가운데 취임한지 8개월도 안된 9월의 어느 날(11일) 아침, 미국은 기습적인 테러를 미국 본토에서 그것도 미국의 심장부라는 뉴욕시의 만하탄 한 가운데에서 당하고 말았습니다. 19명의 아랍계 테로범들이 4대의 미국 국적 비행기들을 납치하여 두 대는 만하탄의 Trade Center 건물을 하나씩 들어 받았고 한 대는 와싱톤 DC에 있는 펜타곤 건물을 받았으며 다른 한 대는 와싱톤 DC의 백악관으로 향하다가 승객들과의 격투 끝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TV를 통해 이 장면들을 실황중계 하듯이 보면서 미국은 충격과 공황에 빠졌습니다. 미국을 일본과의 전쟁으로 몰아 넣은 진주만 기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미 역사상 처음으로 미 본토가 적의 공격을 받고 3,000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솟 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국민들은 안절부절이었고, 테러방지라는 명분 아래 그렇게 소중했던 개인의 인권은 명함을 내밀수가 없게 되었으며 경제활동은 마비되고 강경파들이 장악하고 있던 정부는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인종적인 적개심을 고취하였습니다.

각기 다른 인종이면서도 상호신뢰에 바탕을 둔 미국사회가 서로를 의심하는 사회로, 신분증을 내보여야 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가 하면 세계의 십자군을 자처해 온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아래 2개의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그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에 경제마저 불황마저 겪어야 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미래의 역사가들이 9/11 테러사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그들이 선 자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미국역사의 커다란 분수령으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리라고 봅니다.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을 연재하였고 <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을 연재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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