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6
2008/7/24(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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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번영과 좌절과 대국에로의 안착(요약)  

제 6 장 번영과 좌절과 대국에로의 안착 (요약)

* 인종주의와 반 이민정서의 확산-1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 사회는 격변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참전 군인들이 돌아오면서 실업자들이 늘어 났고 물가가 오르면서 노동자들의 불안정이 겹치자 ‘미국 먼저’라는 생각과 고립주의가 팽배하였고 반 이민 내지 반 이국적인 정서가 널리 퍼졌는데 여기에서 아메리칸이란 백인 개신교도를 의미하였다.

남부에서는 19세기 말에 판을 치다 주춤하였든 KKK 운동이 참전 백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바람을 타면서 1924년에는 4,5백만의 회원들을 확보하였으며 흑인들이나 흑인동네에 대한 백인들의 폭력적인 공격이 성행하였다.

한편 북부 도시들에서는 이민자들이나 자신들과는 다른 백인들에 대한 증오가 표출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전쟁 당시 적대국 이였으며 가톨릭이 주종을 이루는 이태리 사람들이 주 목표가 되었고 그 외에도 진보니 개혁을 외치는 유럽의 무정부주의나 러시아에서 득세하든 공산주의 등은 외세적인 것으로 위험한 생각이라 하여 배격을 받고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이때 정부주도하에 벌어진’ the Palmer Raids’는 후에 FBI 총수로 악명을 날렸던 J. Edgar Hoover(1895-1972)의 주도로 행해진 인종차별 사건이었다.

의회 역시 이러한 풍조에 동조하여 1921년부터 1924년, 1929년 세 차례에 걸쳐 이민쿼터를 15만 명으로 대폭 줄이고 이민 자격자를 영국에서 오는 앵글 색슨족으로 제한하였다. 1890년부터 1차대전이 일어나기 까지 1천5백만 명이 이민 온데 비하면 문호가 완전히 막힌 것이나 다름이 없다.

* 금주운동과 수정헌법18조 - 1919년 미 연방의회는 미국 안에서’주류(酒類)의 제조, 판매, 수송’을 금하며 외국으로부터의 수입도 금하는 수정헌법 18조를 제안, 통과 인준 절차를 거쳐 1920년부터 시행하였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금주 헌법은 20세기에 들어 오면서 사회적으로 불안정해지고 도덕적으로 몰락해 가는 사회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 것이다.

금주법은 의회에서 통과, 인준 시행되었지만 강제로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곧 판명되었다. 알코올 중독자가 줄어 들고 알코올 구입에 드는 가계경비를 줄였다는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위생적으로 불량한 밀주로 인한 인명적 피해와 불법으로 행해지는 각종 범죄들로 인하여 사회적인 혼란은 가중되었으며 시카고의 갱으로 악명 높던 Al Capone(1898-1947) 은 이 당시 밀주의 판매와 수송을 둘러싸고 정치가, 관료, 심지어는 법관들을 매수하여 각종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유명하다.

‘술 없는 시대’에 맞추어 도시에서 나타난 것이 F. Scott Fitzgerald 가 그의 소설에서 묘사한 재즈 시대이다.

* 여성 투표권을 위한 수정헌법 19조 -남녀 평등의 천국이라고 생각되는 미국에서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투표권이 박탈당했든 데에는 하나님이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드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은 2차적이다’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 노예해방 운동을 주도하며 흑인들의 평등권을 주장하던 백인 남성들도 여성들의 평등권에는 무관심한 상태였다

여성 참정권 운동은 노예해방 운동과 금주운동을 주도하던 여성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주정부를 상대로 하나씩 선거권을 획득하는 한편 영국에서의 여성 참정권 운동방식을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정권과 정당을 상대로 데모나 뽀이코트 같은 방법으로 압박하는 작전을 구사한 결과 1920년 8월 26일에야 “미국에서는 성을 이유로 시민의 투표권을 거부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9조가 확정되어 미국이 건국을 선언한지 130여 년만에야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선거권이 주어진 것이다.

*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 20년대의 번영-19세기 하반기, 미국 번영의 근간이 철도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에 있었다면 1920년대 미국 번영의 동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기술혁명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의 발전은 미국에 새로운 도약을 가져 왔고 그 주역이었든 Henry Ford는 20년대의 우상으로 부각되었습니다.

*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이 시대의 또 하나의 영웅은 비행기로 처음 대서양을 횡단한 Charles Lindberg(1902-75)이다. 비행기를 처음 만든 것은 1903년 노스 캐로라이나의 Kitty Hawk 에서 처음 비행시험을 한 라이트(Wright)형제이며 그것을 처음으로 사람이 탈 수 있는 비행기로 만든 것은 1913년 Lockheed 형제에 의해서였다.

* 진화론 재판-1925년 7월 14일 테네시주의 데이튼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후에 ‘세기의 재판’으로 유명해진 한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은 John T. Scopes라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을 불법적으로 가르쳤다고 하여 기소된 사건으로 그의 재판에는 당시 가장 유명한 Clarence Darrow라는 변호사와 명망 높은 William Jennings Bryan 검사가 관여하였다. 이 재판에서 Scopes 교사는 유죄판결을 받고 $100.oo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재판은 끝나고 말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문제는 재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사건은 Inherit the Wind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 대 공황(大恐慌)이 시작되기 전 상황-제1차 대전과 윌슨 대통령의 8년의 재임에 실증을 낸 국민들은 1920년 시골의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하딩(Warren G.Harding)을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 보수적이며 고립주의를 표방한 공화당에 정권을 넘겨주었다. 그의 정부가 산업화와 기술적인 발전에 힘 입어 20년대의 번영을 이룩하면서 1 921년부터 12년 동안 공화당이 백악관을 장악하고 장기 집권을 하는 동안 정부안에서는 1920년대의 부패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

하딩 대통령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물러나자 스캔들과는 관련이 없던 부통령 칼빈 쿨릿지(Calvin Coolidge)가 승계하였다가 1924년에 재선되어 공화당 정권을 다시 승계한다.

쿨릿지 대통령 임기 동안은 비교적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Coolidge boom”이라고 불리우리만큼 국민들은 자신에 차 있었으며 번영을 구가하면서 사회는 활기에 차 있었다.

1928년 대통령선거에서 쿨릿지는 한 번 더 할 수 있었지만 재출마를 포기하자 이러한 사회적인 번영의 바람을 타고 1928년에는 쿨릿지 대통령 밑에서 상무장관을 지낸 할바트 후버(Herbert Hoover,1874-1964)가 역시 공화당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후버는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먼저 빈곤을 완전 추방한 아메리카 건설의 꿈이 곧 실현될 것이다” 라고 기염을 토하며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만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대공황(大恐慌)’ 의 모습들-‘공황’이란 말은 경제 산업이 침체하고 금융이 핍박하여 인심이 안정되지 못한 경제계의 혼란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1930년대의 경제침체를 미국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 공황’으로 부르고 있다.

일 년 동안에 1,300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연방준비은행 보험제도가 없는 때여서 예금 한 푼 건질 수가 없었으며 그 후 3년 동안에 5,000여 개의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그 영향은 더욱 커져갔다.

대공황 기간의 실업자율을 공식적으로는 노동인구의 25%라고 이야기 하지만 역사가들에 따라서는 40% 내지 50% 까지도 추산하고 있다.

*후버의 ‘대공황’ 대처 방안-후버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3년 동안은 경기침체를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 경기침체 정도로 생각하고 곧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1930년에는 경기 침체가 바닥을 쳤다며 곧 좋아질 것이라고 큰소리 쳤지만 경기는 좋아지지 않았으며 그가 처방으로 내놓은 시책들은 너무 늦거나, 너무 미약하여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도리어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으며 공화당 출신인 후버 대통령은 이러한 경기침체 가운데서도 정부가 실업자나, 무주택자, 빈민들을 돕는 것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하는 일이라 하여 거부하였다.
가난에 시달리고 분노한 실업자들이나 노약자들의 시위는 이미 1931년부터 여러 지방에서 일어 났으나 그때마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이 행해졌다.

*루즈벨트의 대통령 당선-민주당의 지명을 받은 뉴욕 주 지사 프랭크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가 후보가 되어‘뉴 딜 정책’(new deal) 과 음주금지법 철폐, 공공 사업장 설치와 농민지원을 공약으로 내 세우고 보수적인 선거운동을 한 결과 인기투표 57% 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인기 없던 후버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의회도 민주당이 상,하 원을 장악 하는 등 12년 만에 민주당 정권을 재창출하였다.

이렇게 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험난했던 시대, 국내적으로는 대공황을 극복하는 중책과 국제적으로는 제2차 대전을 승리로 끝내야 하는 과업이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못쓰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맡겨진 것이다..
날로 수렁으로 빠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12년간의 공화당 정권을 종식시키고 대통령에 당선된 루즈벨트 대통령은 공포심을 갖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으니 공포심을 떨쳐 버리고 난관을 극복하자는 결의로 대공황 탈출작전을 시작하였다.

*전기를 마련한 100일 작전-`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선거 공약이었든 뉴딜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특별의회를 소집하여 100일 작전을 시작하였다.

그는 취임 첫날 위기상황에 있는 전국의 은행들을 위해 4일간의 휴가(holiday)를 선포하고 취임 첫날밤에는 후에 ‘노변잡화(爐邊雜話)로 유명해진 라디오를 통한 fireside chats를 시도하여 국민들에게 경제상황의 실상과 은행들의 사정에 대한 것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들의 공포심을 다독이면서 거의 사라져간 국민들의 신뢰와 자신감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미 특별의회는 3월부터 6월까지 100일 동안에 수많은 새로운 조치들을 통과시켰다 .

그리고 뉴딜 정책의 완결판으로 제정된 것이 the 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 이다. 기업들의 생산을 증진시키자는 의도로 제정된 이 법에서는 생산, 노동, 경비를 정부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법안은 기업주, 노동자, 소비자들에게서 많은 반발과 저항을 받았지만 무난히 통과시킴으로 대공황 퇴치 100일 작전이 일단 끝났다.

그러나 그것으로 대 공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 경제를 진작하기 위한 일연의 법적 조치들을 끝낸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들이 결정적인 대 공황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역사가들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것 못지 않은 역사적인 전환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 경기 회복을 가져온 대규모 연방 토목, 건설 공사-뉴딜 정책들이 100일 동안에 쏟아져 나왔지만 경제침체는 기대한 것만큼 호전되지 않았다. 생산이나 소비도 소폭 상승에 그쳤고, 실업자율은 계속 10%대를 윗 돌고 있었으며 1930년대에는 미 중서부지역에 가뭄이 심해서 흙모래바람를 일으키는 바람에 농부들이 농토를 버리고 떠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이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5년 WPA(The Works Progress Administration)을 설립하고 대대적인 연방정부 주도의 토목, 건축사업을 벌렸다. WPA는 토목사업 이외에도 예술가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어려운 시기에 수 천명의 음악가, 작가, 미술가들을 고용하여 예술활동을 계속 하도록 지원하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공황 탈출작전을 이야기 하면서 그의 가장 위대한 공헌으로 지적되는 것은 그의 재빠른 입법활동이나 대담한 조치들 보다 심리적인 영향(기여)이다. 그는 모든 희망을 상실한 채 불안 속에서 헤매는 국민들에게 정부의 대책을 신뢰하게 만들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면서 희망을 갖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

* 대법원과의 힘겨운 싸움-루즈벨트 대통령의 대공황 탈출 작전이 국민들의 환호 속에서 순탄하게 이루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공화당원인 보수적인 증권가나 기업인들에게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내 쏟는 정책들이 입에 쓴 처방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보기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치들이었다. 이에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극심하였습니다

그중 가장 힘든 상대가 연방 대법원 이였습니다. 나이 많은 보수적인 공화당원들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연방 대법원은 잇따라 뉴딜정책으로 입법화된 안건들에 대하여 위헌판결을 내렸다 .

이에 화가 난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인사들을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법안을 추진하였으나 의회의 반발을 사 루즈벨트 이름으로 제출한 법안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의회에서 부결되는 제재를 감수하여야만 했다.

전쟁 일지

*1938년 9월 30일 영국과 프랑스는 뮤니히(Munich)조약으로 첵코를 위시한 독일 남부 일대를 히틀러의 요구대로 독일에 병합시키는데 동의. 영국의 챔벌린(Chamberlain)수상은 이것으로 유럽대륙에 평화가 올 것으로 전망하였으나 후에 수상이 된 처칠(Churchill)은 영국과 프랑스는 불명예를 선택하였고 결국은 전쟁을 택하였다고 비난하였다.
*1940년 3월 18일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영국과 프랑스에 대항하여 연합전선을 펼칠 것을 선언하고 노르웨이, 덴마크, 벨지음, 네델란드등 유럽일대를 침공하는가 하면 6월에는 프랑스를 침공 파리를 함락하고, 7월 10일에는 독일 공군의 대규모 영국 폭격이 시작되었다.
*1940년 6월 10일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중립포기”를 선언하고 항공기들을 영국에 지원하는 한편 9월에는 미국 장정 징집령을 선포하였습니다.
*1940년 11월 5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국역사상 처음으로 3선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으며 12월 29일 “노변담화”를통해전쟁준비체제로의 전환을 선포하고 민간공장들을 군수공장으로 환원, 전쟁물자를 생산 영국과 유럽대륙에 공급하기로 하였는데 이를 통해 미국의 산업들은 대공황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 나와 활기를 되찾았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전투기들의 하와이 진주만 폭격사건이 일어났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독일과 이태리는 미국과의 전쟁을 선언, 미국은 결국 일본, 독일, 이태리 3개 동맹국들과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휩싸이게 되었다.?
*1942년 1월 26일 1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군이 유럽에 도착하였으며 2월 20일에는 미국에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콜로라도, 유 타, 알칸소 등에 있는 집단 수용소로 이전시켰는데 전쟁이 끝나기까지 10만 여명이 집과 재산을 잃고 집단 수용되어 있었다
*1943년 5월 아프리카에서 미, 영 연합군과 독, 이 동맹국간에 35만 명의 동맹군과 1만8천5백 여명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는 격전 끝에 동맹군들이 패퇴하였으며 7월에는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들이 지중해 연안에서 16만 여명의 동맹군 사상자와 2만 5천 여명의 연합군 사망자를 내는 격전 끝에 지중해 일대를 장악 유럽대륙 공략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1944년 3월 6월 미 공군이 처음으로 독일 베를린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하였으며 6월 6일을 D-Day로 ‘놀만디 상륙작전’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연합군의 유럽대륙 상륙작전이 벌어져 4일간의 격전 끝에 상륙에 성공하였습니다. 연합군은 1944년 8월 25일, 프랑스가 1940년 6월 독일에게 뺏겼던 파리를 탈환하였다.
*1944년 11월 7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욕 주지사 도마스 듀이(Thomas Dewey)를 물리치고 4선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1945년 2월 1일, 1천여 대의 미 폭격기가 베를린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하는 가운데 2월 4일부터 11일까지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이 소위 ‘얄타(The Yalta Conference)회담을 통해 전후의 대책을 협의,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UN을 창설하기로 하였다.? ????
*1945년 4월 21일 와병 중이던 루즈벨트 대통령이 뇌출혈로 사망하고 부통령이던 트루만(1884-1972) 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1945년 5월 7일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트루만 대통령은 V-E Day(유럽에서 승리한 날)로 선포하고 독일은 미, 쏘, 영, 불이 4분하기로 하였다.
*1945*년 6월 21일, 미군은 오끼나와에 상륙하였으며 트루만 대통령은 8월 6일, 7월 16일 막 실험을 끝낸 새로운 폭탄 ‘원자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하도록 허가하고 8월 9일에는 나까사끼에 투하하였다.
*1945년 8월 14일,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을 끝내고 15일 일황이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였으며 9월 2일 미조리 선상에서 항복문서에 정식 서명함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피해상황-제2차 세계대전은 승전국이나 패전국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 5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많은 희생을 가져다 준 전쟁 이였다.

7백5십만의 러시아군, 3백5십만의 독일군, 1백2십만의 일본군, 2백 2십만의 중국 군 전사자 외에도 거의 1백만 명에 육박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병사들이 생명을 잃었으며 민간인 희생자들은 그보다 훨씬 많아서 전쟁에 죽은 러시아인들 만도 2천 2백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며 독일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만도 6백만, 다른 인종들이 1백만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만도 30여 만 명의 전사자에 70여 만 명의 부상자를 내었으며 물질적인 손실은 추측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시카고 교외 Skokie에 거주하는 김상신님은 은퇴한후 '늘푸른나무'를 만드는 한편 서양사와 교회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쳔의 역사해석','역사와 희망'등의 역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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