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2
2008/5/2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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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제2절 좌절하는 시민들과 대공황의 시작  

<늘푸른나무/역사로 배우는 미국/2008년 5월 1일>

제 6 장 번영과 좌절과 대국에로의 안착

제1절. 1차 대전 이후의 사회상

제2절. 좌절하는 시민들과 대공황의 시작

1. 대 공황(大恐慌)이 시작되기 전 까지의 상황

하딩의 당선과 공화당 정권의 등장

제1차 대전과 윌슨 대통령의 8년의 재임에 실증을 낸 국민들은 1920년 시골의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하딩(Warren G.Harding)을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 보수적이며 고립주의를 표방한 공화당에 정권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전형적인 공화당 행정부를 운영하면서 세금을 줄이고 대 기업들을 도와주며 윌슨이 제안하였든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를 거부하고 수입품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 미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의 정부가 산업화와 기술적인 발전에 힘 입어 20년대의 번영을 이룩하면서 1 921년부터 12년 동안 공화당이 백악관을 장악하고 장기 집권을 하는 동안 정부안에서는 1920년대의 부패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하딩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스캔들에 개입한 각료들이 속속 적발되었고 1923년에는 그의 내무장관 알버트 폴(Albert B. Fall)이 뇌물수수협의로 기소되어 미국역사상 처음으로 감옥 행을 한 현직 각료가 되었는데 이들을 통틀어 ‘하딩의 스캔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와중에서 하딩 대통령은 심장마비를 일으켜 ‘하딩의 스캔들’이라는 오명만 남긴 채 물러나고 스캔들과는 관련이 없던 부통령 칼빈 쿨릿지(Calvin Coolidge)가 승계하였다가 1924년에 재선되어 공화당 정권을 다시 승계합니다.

쿨릿지 대통령 임기 동안은 비교적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Coolidge boom”이라고 불리우리만큼 국민들은 자신에 차 있었으며 번영을 구가하면서 사회는 활기에 차 있었습니다.

1928년 대통령선거에서 쿨릿지는 한 번 더 할 수 있었지만 재출마를 포기하자 이러한 사회적인 번영의 바람을 타고 1928년에는 쿨릿지 대통령 밑에서 상무장관을 지낸 할바트 후버(Herbert Hoover,1874-1964)가 역시 공화당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학자들간에는 왜 쿨릿지가 재선을 시도하지 않고 물러 났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번영 가운데서도 다가올 대공황을 예견하고 물러 났을 거라는 주장과 후보 경선을 피하고 추대형식으로 다시 후보가 되기를 바라면서 한번 말을 꺼내 본 것인데 당이 기정사실화 해버려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이 엇갈립니다.

후버의 당선과 대 공황의 조짐들

여하튼 후버는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먼저 빈곤을 완전 추방한 아메리카 건설의 꿈이 곧 실현될 것이다” 라고 기염을 토하며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만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1920년대 번영이 눈에 띠게 두드러진 곳은 증권시장인 뉴욕의 월 가였습니다만 당시 이곳에서 돈을 번 부호들은 대부분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재벌로 성장하였든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 후 계속해서 내리는 곡물가격 등으로 농민들은 계속 고전하여 왔으며 공장의 기계화로 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미국 경제의 길조라고 여겼든 주택 값이 1927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했고 거기다가 세계적으로 생산은 증가되고 소비는 줄어들면서 미국의 생산업체들도 제대로 수익을 얻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생산업체에 투자하여 수익을 올리든 사람들이 돈을 꺼내어 주식에 투자를 하였습니다만 당시 주식시장의 제도나 규정 등이 일반 소액투자자들에게는 불리하게 되어 있었고 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시작된 경제적인 공황이 전 세계로 번지면서 후버가 ‘빈곤퇴치’를 부르짖으며 취임한지 1년도 못된 1929년 말 미국도 그 늪에 빠져들어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경제의 근간 이였던 강철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침체 되여 갔고 1929년 9월에는 최고치를 기록했던 증권도 외국투자자들이 빠져나가고 외상 증권투자자들이 증권을 팔면서 공포심리가 번져나가 증권가격은 폭락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1929년 10월 29일 1,600만주가 매물로 시장에 나오면서 증권사상 ‘Black Tuesday’라고 부르는 대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부풀려졌든 증권가치에 몰려 있던 나라의 “부(富)”가 바람처럼 사라져간 것입니다. 이때 날아간 돈이 3십억(thirty billion dollars) 라고 하는데 그것은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쓴 경비와 맞먹는 액수이며 미국정부가 가지고 있는 부채의 2배에 해당되는 액수라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 합니다

2.‘대공황(大恐慌)’ 의모습들

‘공황’이란 말은 경제 산업이 침체하고 금융이 핍박하여 인심이 안정되지 못한 경제계의 혼란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1930년대의 경제침체를 미국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 공황’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최근의 미국경제상황과 유사한점이 너무 많은듯하여 “1930년대에 미국에서 경제적인 ‘대 공황’이 있었지만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 딜 정책으로 무난히 극복하고 세계 제1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정도로만 알고 넘어가던 대 공황의 모습을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29년에 있었던 증권가의 큰 사건이 ‘대 공황’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중병에 걸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상에 불과하였든 것입니다.
미국은 전에도 경기침체를 여러 번 겪었습니다만 1930년대의 경제침체와는 달리 단기적인 것이었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증권시장의 큰 혼란 뒤에 미국 경제는 마비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은행의 도산

일 년 동안에 1,300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습니다만 오늘날과 같은 연방준비은행 보험제도가 없는 때여서 예금 한 푼 건질 수가 없었으며 그 후 3년 동안에 5,000여 개의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그 영향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신용보증과 대출을 해줄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사업체들과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자 실업자들이 늘어 났고 그 결과로 집 값 월부를 물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습니다. 1931년만해도 헨 리 포드는 노동자들이 게을러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며 큰소리 쳤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신도 공장 하나를 문닫고 75,000명을 해고하고 말았습니다.

대공황 기간의 실업자율을 공식적으로는 노동인구의 25%라고 이야기 하지만 역사가들에 따라서는 40% 내지 50% 까지도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더욱 어려웠든 것은 이전의 경기침체 때에는 도시화가 덜 되어서 직장에 못나갈 때 에는 뒤 뜰에서 농사라도 지어 식량을 해결할 수 있었든 데 반해 이 때에는 도시화가 완전히 되어 있어서 도시민들은 농사지어 먹을 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후버의 대처 방안

후버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3년 동안은 경기침체를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 경기침체 정도로 생각하고 곧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1930년에는 경기 침체가 바닥을 쳤다며 곧 좋아질 것이라고 큰소리 쳤지만 경기는 좋아지지 않았으며 그가 처방으로 내놓은 시책들은 너무 늦거나, 너무 미약하여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도리어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을 위해 무역장벽을 설치 자국의 기업들을 보호하려는 법안을 제기하였는데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똑 같은 조치를 취함으로 미국과 유럽의 위기를 다같이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1931년에는 이와 같은 경기침체가 유럽에까지 확산되었습니다.

공화당 출신인 후버 대통령은 이러한 경기침체 가운데서도 정부가 실업자나, 무주택자, 빈민들을 돕는 것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하는 일이라 하여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공화당 정책을 고수하여 개인들을 정부가 직접 도와주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압력에 못 이겨 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 이란 정부 기구를 만들었을 때에도 철도회사나 은행에 대한 지원을 하였을 뿐 급식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가난한 개인들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참전군인들의 항의 시위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후버의 조치에 불만을 가진 ‘doughboys’라고 불리는 제1차 대전 때의 참전용사 2만 5천 여명이 경제침체가 극심했던 1932년 수도 워싱턴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1924년에 정부가 1945년에 지불하기로 약속한 참전 보상금을 경제불황가운데 일자리도 잃고 살아가기가 힘드니 지금 상환해 달라며 가족들을 데리고 워싱턴에 집결하여 공원과 강변에 천막을 치고 시위를 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보너스 원정군’(the Bonus Expeditionary Force, BEF)이라고 부른 이들은 당시 the Bonus Army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절박한 호소가 후버와 그의 정부에는 먹혀 들지 않았습니다. 후버는 이들을 참전용사들이 아니라 공산 선동분자들(Red agitators)이라며 (후에 정부문건에서 참석자들의 95%가 참전용사라는 보고서를 발견) 이들 대표들의 면담요청을 거부하고 도리어 군대를 보내어 천막들을 부수고 이들을 해산하면서 100여명의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물론 이 시위는 정부를 상대로 분노한 시민들이 대공황 기간 중 벌린 최대의 시위였지만 가난에 시달리고 분노한 실업자들이나 노약자들의 시위는 이미 1931년부터 여러 지방에서 일어 났고 그때마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이 행해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수도 워싱턴에서 ‘보너스 시위대’들을 진압할 때 동원된 정부군의 지휘관들이 후에 2차 대전 때 큰 공을 세운 장군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후버가 임명한 사령관이 맥아더 장군(Douglas McArthur 1880-1964) 이고 그의 보좌관이 아이젠하워 장군(Dwight Eisenhower, 1890-1969)이였으며 진압군을 직접 끌고 출동한 사람이 유명한 패 튼 장군(Major George Patton,1885-1945) 이였습니다.

루즈벨트의 대통령 당선

냉혹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버 대통령은 공화당의 후보 지명을 다시 받습니다. 그리고 정권 탈환의 호기가 왔다고 생각하는 민주당에서는 치열한 지명전 끝에 뉴욕 주 지사 프랭크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가 후보가 되었습니다. 소아마비로 휠 체 어를 타고 다니는 루즈벨트 후보에 대하여 미국의 지식인층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뉴 딜 정책(new deal) 과 음주금지법 철폐, 공공 사업장 설치와 농민지원을 공약으로 내 세우고 보수적인 선거운동을 한 그는 인기투표 57% 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인기 없던 후버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의회도 민주당이 상,하 원을 장악 하는 등 12년 만에 민주당 정권을 재창출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험난했던 시대, 국내적으로는 대공황을 극복하는 중책과 국제적으로는 제2차 대전을 승리로 끝내야 하는 과업이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못쓰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임한 후 후버에 의해 쫓겨 났던 Bonus Army들이 수도 워싱턴에 다시 모였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아내 엘레놀(Eleanor Roosevelt, 1884-1962) 여사를 그들에게 보내어 대표들과 이야기 하며 커피와 먹을 것 들을 제공하도록 하였습니다. 엘리놀 여사는 그들과 이야기 하고 노래하며 어울렸습니다.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후에 “후버는 군대를 보냈는데 루즈벨트는 그의 아내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시카고 교외 Skokie에 거주하는 김상신님은 은퇴한후 '늘푸른나무'를 만드는 한편 서양사와 교회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쳔의 역사해석','역사와 희망'등의 역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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