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1
2008/4/24(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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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번영과 좌절과 대국에로의 안착  

<늘푸른나무/역사로 배우는 미국/2008년 4월 15일>

제 6 장 번영과 좌절과 대국에로의 안착
(제1차 대전 이후부터 제2차 대전 발발까지)

제1절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상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놀라운 숫자의 사상자들과 재정적인 손실에 실망한 국민들은 더 이상 직접적인 이해 관계도 없는 유럽 대륙에 관심 갖지 말고 그전의 안전한 번영과 고립을 원했습니다. 그 결과 보수적이며 고립주의를 표방했던 공화당이 백악관을 장악하게 되어 1921년부터 12년 동안 미국은 공화당 대통령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격변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쪽을 중심으로 KKK 단 같은 백인 우월단체들이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수정헌법 18 과 19를 통하여 금주법이 시행되고 여성 참정권이 실현되기도 하였습니다. ‘진화론 논쟁’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자동차 산업의 발달과 증권시장의 활성화로 미국 경제는 번영을 가져왔고 사회는 활기에 찼습니다. 지금도 미국사회가 향수를 가지고 되돌아 보는 자유분망의 20년대 재즈 시대가 펼쳐진 것입니다.

단단히 조인 속옷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엉덩이를 마구 흔들어 대는 샤롯풍의 춤이 등장하였고 산업화와 함께 헐리웃에는 대형 연예산업이 자리 잡았으며 재즈라고 하는 새로운 풍의 음악이 유행했습니다. ?F. Scott Fitzgerald 같은 작가 가 나타나 이 시대의 상징으로 Jay Gatsby 란 인물상을 만들어 낸 것도 이때였고 Ernest Hemingway, John Dos Passos, Sinclair Lewis 같은 작가들이 활약한 것이 바로 20년대였습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경제적인 풍요함과 사회적인 생동감 속에서 보수적인 공화당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바람을 타고 1928년에는 Coolidge 대통령 밑에서 상무장관을 지낸 Herbert Hoover(1874-1964)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런데 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시작된 경제적인 공황이 전 세계로 번지면서 미국도 그 늪에 빠져들어가자 후버 대통령은 맥을 추지 못하고 1932년 당시 뉴욕 지사였던 민주당의 Franklin D.Roosevelt(1882-1945)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험란햇던 시대, 국내적으로는 대공황을 극복하는 중책과 국제적으로는 제2차 대전을 승리로 끝내야 하는 과업이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못쓰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미국으로서는 제1차 대전후의 혼란을 극복하고 번영과 좌절의 롤러코스트를 무사히 통과하면서 세계 제1의 강국으로 안착하는 과정 이였습니다

1. 인종주의와 반 이민정서의 확산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 사회는 격변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 참여하였든 군인들이 돌아오면서 실업자들이 늘어 났고 물가는 오르면서 노동자들의 불안정이 겹치자 미국 먼저라는 생각과 고립주의가 팽배하였고 반 이민 내지 반 이국적인 정서가 널리 퍼졌는데 여기에서 아메리칸이란 백인 개신교도를 의미하였습니다.

남부에서는 19세기 말에 판을 치다 주춤하였든 KKK 운동이 전쟁에서 돌아온 백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바람을 타면서 1924년에는 4,5백만의 회원들을 확보하고 1919년부터는 남부만이 아니라 세인트 루이스나 시카고, 와싱톤 등지에서도 세를 과시하면서 흑인들이나 흑인동네에 대한 백인들의 폭력적인 공격이 성행하였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백인 경찰들의 비호아래 백인들의 무차별 공격이 행하여 졌으며 그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한 동네를 전멸시켜 버림으로 역사에서 그 기억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가 20세기 말에 와서야 처음으로 보도되고 조사되어 밝혀진 경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1921년 6월 21일에 인종청소라는 명목아래 Tulsa, Oklahoma 에서 일어났던 흑인 동네 방화 살해 사건은 2,000년에 와서야 조사위원화가 구성되어 밝혀졌고 1923년 프로리다의 로즈욷에서 일어난 흑인동네 방화사건은 1982년에야 처음 지방신문에 보도되고 1994년에 와서야 확인되면서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 젓다)

한편 북부 도시들에서는 이민자들이나 자신들과는 다른 백인들에 대한 증오가 표출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전쟁 당시 적대국 이였으며 가톨릭이 주종을 이루는 이태리 사람들이 주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진보니 개혁을 왜치는 유럽의 무정부주의나 러시아에서 득세하든 공산주의 등은 미국에서는 외세적인 것으로 위험한 생각이라 하여 배격을 받고 정부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때 정부주도하에 벌어진’ the Palmer Raids’는 후에 FBI 총수로 악명을 날렸던J. Edgar Hoover(1895-1972)의 주도로 행해진 악명 높은 사건이었습니다.

1919년 윌슨 대통령의 검찰총장인 A. Mitchell Palmer 집 근처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는데 이 당시 기업계 거물들의 집에도 폭발물이 우송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꿈을 꾸고 있던 Palmer는 이러한 혼란한 상황을 수습한다는 명분 아래 강력한 연방 수사기관을 창설하고 당시 반공주의자였던 후버에게 그 책임을 맡겼습니다. 후버는 45,000여명의 요 시찰인 카드를 작성하고 1920 수 천명의 외국국적자들을 체포하였는데 결과는 5백 여명의 비국적자들을 추방하는데 그쳤습니다. 이것을 <팔머의 검거사건>이라 하여 연방정부가 부당하게 외국인 또는 이민자들에게 권력남용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화분위기 가운데서 KKK의 활동은 더욱 활성화 되었고 외국인, 유대인, 가톨릭에 대한 혐오 정서도 더욱 번져갔습니다.? 의회 역시 이러한 풍조에 동조하여 1921년부터 1924년, 1929년 세 차례에 걸처 이민쿼터를 15만명으로 대폭 줄이고 이민 자격자를 영국에서 오는 앵글 색슨족으로 제한하였습니다. 1890년부터 1차대전이 일어나기 까지 1천5백 만명이 이민 온데 비하면 문호가 완전히 막힌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2. 금주운동과 수정헌법18조

1919년 미 연방의회는 미국 안에서’주류(酒類)의 제조, 판매, 수송’을 금하며 외국으로부터의 수입도 금하는 수정헌법 18조를 제안, 통과 인준 절차를 거쳐 1920년부터 시행하였습니다.

후버 대통령에게는 이 법이 ‘의도가 고상하고 원대한 목적을 가진 위대한 사회적, 경제적 실험’ 이였지만 마크 트웨인 에게는 ‘술주정꾼들을 문 뒤나 깜깜한 곳으로 숨게 할 뿐 고치거나 줄어들게 하지는 못한’법 이였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이런 법이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요?

미국의 역사를 보면 순진하다고 하리만큼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단순한 해결책을 내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땅을 차지하고 있으면 쫓아내면 되고, 텍사스 땅이 탐나면 멕시코와 전쟁하면 되고 범죄가 증가하면 사형제도를 도입하면 해결되고 나라의 도덕적 기강이 해이해 지면 학교에서 수업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게 하면 되고, 인종분리정책이 문제가 되면 버스를 동원하면 되는 것으로 손쉽게 해결책을 찾는 정치가들의 발상과, 그것들이 그런대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시행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주 헌법 역시 20세기 들어 오면서 사회적으로 불안정해지고 도덕적으로 몰락해 가는 사회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물론 금주가 갑자기 해결책으로 불쑥 나온 것은 아닙니다. 식민지 시대 때부터 금주정신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19세기 특히 서부로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서 음주로 인한 비도덕적인 상황이 급증하자 특히 주부들 사이에게 금주운동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선거권도 없고 무력하였지만 동네의 술집 앞에서 철야기도회를 여는가 하면 1874년에는 전국적인 규모로 ‘기독교 여성 금주협회’(WCTU_Women’s Christian Temperance Union) 를 조직하여 금주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당시 여성단체로는 가장 큰 규모의 운동 이엇습니다.

여성들 중심의 금주운동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급증한 이민자들에 의하여 혼란해진 사회를 백인, 개신교도, 앵글로 색슨 중심의 정상적인 사회로 회복해야겠다는 결사대들에 의해 폭력적인 양상을 띠게 되어 술집을 처 들어가 부수어 버리는 일들이 일어났고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즐기고 있지만 ‘술이 없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로 부각되었으며 정치가들은 ‘칼빈주의적 개신교 윤리’의 수호자로서 보여지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금주법은 의회에서 통과, 인준 시행되었지만 강제로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곧 판명되었습니다. 금주법아래에서도 술을 마시기 위하여 밀주를 비롯하여 수많은 방법들이 동원된 것을 영화를 통해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금주법이 시행된 후 성만찬에 참석하는 기털릭 신자들이 급증하였다는 보고까지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줄어 들고 알코올 구입에 드는 가계경비를 줄였다는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위생적으로 불량한 밀주로 인한 인명적 피해와 불법으로 행해지는 각종 범죄들로 인하여 사회적인 혼란은 가중되었으며 시카고의 갱으로 악명 높던 Al Capone(1898-1947) 은 이 당시 밀주의 판매와 수송을 둘러싸고 정치가, 관료, 심지어는 법관들을 매수하여 각종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술 없는 시대’에 맞추어 도시에서 나타난 것이 F. Scott Fitzgerald 가 그의 소설에서 묘사한 재즈 시대입니다. Roaring Twenties 라고 불리는 이 시대에 바에서 보게 되는 밀주를 담는 납작한 술병과 밑에 짐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든 덜컹거리는 의자 그리고 통 넓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은 ‘금주법’시대의 산물들입니다.

그리고 단발머리에 짦은 드레스를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는 20년대의 신 여성은 그 전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했든 두 가지 특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임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또 하나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 여성 투표권을 위한 수정헌법 19조

남녀 평등의 천국이라고 생각되는 미국에서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박애, 자유, 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민주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든 건국선조들에게 있어서도 여성의 평등권은 관심 밖 이였던 듯 합니다. 미국 역사상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여성들이나 노예해방 운동이나 금주운동등이 여성들의 주도하에 전개되었음에도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투표권이 박탈당했든 데에는 하나님이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드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은 2차적이다’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러한 신앙에 근거하여 가톨릭 교회에서는 여성의 성직자 직을 전통적으로 허용하지 않았고 미국 헌법은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노예해방 운동을 주도하며 흑인들의 평등권을 주장하던 백인 남성들도 여성들의 평등권에는 무관심한 상태였습니다. 오는 가을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최근 발표된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다 되어 있다는 사람들이 76%, 여성대통령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63%라는 여론조사의 결과에는 옛 부터 내려오는 미국인들의 전통적인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은 노예해방 운동과 금주운동을 주도하던 여성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퀘이커 출신으로 노예해방 운동을 하던 Elizabeth Cady Stanton(1815-1902) 은 ?NWSA(National Woman Suffrage Association) 를 조직하고 즉각적인 여성 참정권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흑인 남성들의 참정권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여성들은 AWAS(American Woman Suffrage Association)를 만들어 20 여 년간 독자적인 활동을 해 오다가 1890년 Stanton의 주도로 NAWSA(National American Woman Suffrage Association)로 통합하고 적극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때 Stanton 을 도와 강력하고 적극적인 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여성 권리 주장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려지던 Susan B. Anthony(1820-1906)입니다. 그 녀의 공로를 인정하여 미 $1.00.짜리 주화에 그녀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주정부를 상대로 하나씩 선거권을 획득하는 한편 영국에서의 여성 참정권 운동방식을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정권과 정당을 상대로 데모나 뽀이코트 같은 방법으로 압박하는 작전을 구사한 결과 1918년에는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Jeannette Rankin(1880-1973)이 몬타나 주에서 당선되었으며 그 녀가 의회에서 처음 한 일이 여성 참정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하원에 상정한 것이였습니다. 개정안이 하원에서는 한 표 차이로 통과되었으나 상원에서는 18개월 후에야 통과가 되었습니다. 험난했던 과정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결국 인준과정을 거쳐 1920년 8월 26일에야 “미국에서는 성을 이유로 시민의 투표권을 거부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9조가 확정되어 미국이 건국을 선언한지 130여년이 지나서야 여성에게 동등한 선거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4.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 20년대의 번영

19세기 하반기의 미국 번영의 근간이 철도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에 있었다면 1920년대 미국 번영의 동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기술혁명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발전은 미국에 새로운 도약을 가져 왔고 그 주역이었든 Henry Ford는 20년대의 우상으로 부각되었습니다.

Henry Ford(1864-1947)는 자동차를 처음으로 발명한 사람은 아닙니다. 19세기에 유럽에서 이미 자동차를 발명하였고 아메리카에서도 마샤츄세츠주의 Duryea 형제들이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아직 실용화되기 전이였는데 아이리쉬 이민자의 아들이었든 포드는 메카닉에 소질이 있어서 자동차의 대중화에 관심을 가지고 간단하면서도 값싼 엔진 개발에 주력하여 1909년에 Model T라는 엔진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결과 1908년에 $950에 팔던 차를 $300 미만에 공급하면서 1년 동안에 11,000대의 자동차를 파는데 성공하였으며 1914년까지 거의 25만대의 차를 생산하면서 커다란 부를 축적한 것은 물론 1차 세계대전으로 침체되었던 미국사회에 20년대의 새로운 흥분과 열기를 넣어주었습니다.

포드는 자동차의 가격을 낮추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살 수 있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보다 2배 이상의 임금을 주면서 포드 차를 살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 노동자들도 차를 소유하는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동차의 보급은 의회로 하여금 고속도로를 만들도록 하였고 그와 연계된 각종 비지네스들이 성행하면서 미국사회는 20년대의 번영을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포드는 그의 이러한 사회적인 공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결성도 1941년까지 허용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는 반 유대인 운동에 앞장섰으며 자동차 모형을 바꾸는데 소극적이어서 후에는 General Motors에 밀리기도 하였습니다. 1947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밑바닥에서 정상에 오른, 미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끄는데 견인 역활을 한 미국 신화의 영웅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어 왔습니다.

5. 그 외 중요 사건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이 시대의 또 하나의 영웅은 비행기로 처음 대서양을 횡단한 Charles Lindberg(1902-75)입니다. 비행기를 처음 만든 것은 1903년 노스 캐로라이나의 Kitty Hawk 에서 처음 비행시험을 한 라이트(Wright)형제이며 그것을 처음으로 사람이 탈 수 있는 비행기로 만든 것은 1913년 Lockheed 형제에 의해서였습니다.

린드버그는 The Spirit of St. Louis라는 비행기를 직접 디자인하여 1927년 5월 20일 단독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였습니다. 36시간만에 파리에 도착한 그는 당시 미국의 발명정신의 심볼이요 모험정신의 영웅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유명세 때문에 5년후 1932년 19개월된 그의 아들이 납치되고 $50,000의 보석금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납치된 아들은 살해되고 범인은 1936년 사형을 당하였지만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희생되었다는 주장이 한동안 제기되면서 미국 역사상 유명한 납치사건으로 기억되고 있고 후에 주 경계를 통과하는 납치행위에는 사형을 가한다는 연방 법안이 제정되었는데 그것을 린드버그 법안이라고 통칭하고 있습니다.

린드버그 역시 반 유대주의자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지 말도록 적극 노력하였으나 후에는 태평양에서의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진화론 재판

1925년 7월 14일 테네시주의 데이튼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후에 ‘세기의 재판’으로유명해진 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 재판은 John T. Scopes라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을 불법적으로 가르쳤다고 하여 기소된 사건으로 그의 재판에는 당시 가장 유명한 Clarence Darrow라는 변호사와 명망 높은 William Jennings Bryan 검사가 관여하였습니다. 이 재판에서 Scopes 교사는 유죄판결을 받고 $100.oo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재판은 끝나고 말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문제는 재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Inherit the Wind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시카고 교외 Skokie에 거주하는 김상신님은 은퇴한후 '늘푸른나무'를 만드는 한편 서양사와 교회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쳔의 역사해석','역사와 희망'등의 역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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