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3
2007/12/10(월)
추천: 3357
제4장 제4절 전쟁의 종식과 재건을 위한 노력  

<김상신 칼럼-역사로 배우는 미국>

제4장 대 재난을 향해 달리는 아메리카

제4절 전쟁의 종식과 재건을 위한 노력

종전을 눈앞에 보면서 3월 4일 두번째로 대통령에 취임한 아브라함 링컨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하여 종전후의 비젼을 밝히는 한편 전선에서는 남북전쟁의 마지막 주요전쟁이랄 수 있는 버지니아의 Five Forks 전쟁에서 Lee 장군이 지휘하는 남군이 패퇴하면서 피터스버그와 남군의 수도가 북군에게 함락되었으며 4월 8일 남군의 리 장군의 북군의 그랜트 장군에게 정식으로 항복하였습니다. 링컨대통령은 항복한 군인들에게 관대한 조치를 내리도록 하고 4월 11일 대중연설을 통해 관용과 화해의 정신으로 국가재건에 임할것을 강조하였습니다만 이것이 그의 마지막 대중연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4월 14일 성 금요일을 맞아 모처럼의 휴식을 위해 코메디 상연 극장을 찾았든 링컨은 자객의 총탄을 맞고 다음날 운명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암살당한 첫번째 대통령이 되었으며 부통령이었든 Andrew Johnson 이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막대한 대가를 치룬 남북전쟁은 그 피해를 통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의회통계에 의하면 합중국(Union, 북군) 의 230만 군인가운데 36만명이 사망하였스며 연방군(Confederal,남군) 은 100만 군인가운데 26만여명이 사망한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숫자는 전 국민의 2%에 해당하는 막대한 것입니다. 전비 역시 북측이 당시 가치로 6백만여불을 지출하였고 남측에서는 그 반액 정도를 지출한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외에도 5만여명의 일반인 사상자들이 발생하였고 전쟁중의 부상으로 불구가 된 군인들도 수천에 달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쟁이 치른 가장 비싼 대가는 아메리카의 '가장 훌륭하고 똑똑한 한 세대'가 -양쪽 진영의 젊고 잘 교육받고 목적의식이 투철한 젊은이들-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쟁으로 죽지 않고 그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지능과, 창조력과 생산력을 발휘하였다면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미국에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발발과 함께 지역적으로 인종적으로 깊어진 적대감정은 그 후 150여년이 지나도록 미국 사회와 정치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초대 대통령 워싱톤과 함께 미국 국민들에게는 신화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만큼 전해져 내려오는 그에 대한 이야기에는 사실과 함께 신화적인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링컨에 대한 논문과 저서들이 1년에 수천건씩 발표되는 상황이니 그에 대한 평가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미국민들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존경할만한 대통령으로 아브라함 링컨을 꼽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통나무집'에서 자란 링컨은 개척시대에 '통나무집'에서 자란 다른 대통령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유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글도 깨치지 못한 무식꾼이였습니다만 링컨의 친모가 죽은후 들어온 계모에 의해 글을 배우고 성경을 읽게 되면서 경건하고 정직한 인품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교육을 못받았지만 독학으로 법률공부를 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은 자수성가한 정치가로서 경건과 정직의 인품은 그가 성장하는데 절대적인 밑거름이 되었고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승리를 가져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링컨이 처음부터 열열한 '노예해방'의 기수였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좀 다릅니다.물론 그당시의 기준에서 볼때 그의 사상이 자유주의적이였고 노예해방에 동정적이였지만 여전히 흑인들이 열등하다고 생각하였고 '노예해방'은 점진적으로 무리하지 않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든 오늘의 기준에서 볼때에는 '인종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그를 'nigger lover' 라고 부릅니다. 흑인들을 폄하(貶下)하지만 그들을 사랑하던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물론 대통령이 되어 전쟁을 수행해 가면서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제퍼슨의 이상을 확인하고 '노예해방'은 하나님이 위임한 사명임을 확신합니다.

링컨은 우울증으로 몹시 시달렸습니다. 그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과격한 '해방론자들'로 부터는 그의 조치들이 미약하다고, 남부동정론자들한테서는 전쟁과 봉쇄가 너무 지나치다는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남부의 백인들은 그를 백인들에 대한 '배신자'라고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때로는 '독재자'라는 비난도 감수하면서 초헌법적인 강력한 조치들을 취하고 미온적인 지휘자들을 해임하고 적극적인 공격을 명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신이 함께 하는 전쟁인가?하는 고민을 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북군과 남군이 다같이 같은 하나님에게 자기편이 되어 자기들이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할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편이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여야 한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겨 주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였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이 설때에는 독재자라는 비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밀어부치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모든 도전들을 극복하고 재선에도 성공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수 있었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가 있기까지 그는 내적으로 무척 고민하였고 육적으로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가?를 놓고 고심한 린컨을 가르켜 어떤 학자는 '신학자 린컨'이라고 스스럼 없이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명 연설가였습니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자리를 놓고 더그라스와 벌렸든 토론과 연설로 그는 일약 전국적인 각광을 받았으며 그의 두차례의 취임연설과 국립묘지 게티스버그 헌정식에서 행한 게티스버그 연설등은 오늘날도 미국민들이 사랑하는 명연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두번째 임기에 취임하고 남부 연방국의 수도인 리치몬트를 점령, 남군 사령관 리장군의 항복을 받아 내어 한층 기분이 고조되어 있던 1865년 4월 14일, 성금요일을 맞아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기 위해 수도 워싱톤의 다운타운에 있는 포드(Ford) 극장에 갔습니다. 경호원이 잠간 자리를 뜬 사이에 자객이 그에게 권총을 발사하고 무대로 뛰어 내려 '독재자는 죽었다', '남부여 영원하라'고 웨치고 뒷문으로 달아났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대통령은 다음날 임종하고 맙니다. 워싱톤 일대에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전쟁장관인 스캔튼이 치안을 장악하고 검인 검거에 착수합니다.

10여일만에 검인을 검거 하였습니다. 범인은 남군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광적인 남부지지자였든 연극배우 출신 John Wilkes Booth 였습니다. 그는 소수의 동료들과 암살계획을 세운것으로 밝혀졌으나 연방국의 대통령 Jefferson Davis의 직접지령을 받아 거사를 하였다는 소문이 계속 나돌았습니다. 조사 결과 유니온 정부는 무혐의로 결론을 내려 데이비스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역사가들의 결론도 Booth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링컨의 죽음은 그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를 지지하던 국민들은 물론 평소 그를 비난하던 세력들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심지어 남부의 지도자들 마저도 그의 죽음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그는 전 국민의 '영웅'이요 유니온을 위한 '순교자'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낳은 유명한 시인 Walt Whitman(1819-92) 은 링컨의 암살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은 애도의 시를 남기었습니다

"오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링컨대통령에 대한 회상 가운데서)

오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 두려움에 가득 찼던 우리들의 여행은 끝났습니다.
배는 비바람에 몰꼴이 말이 아니지만 우리들이 찾았던 모든 것들을 얻었습니다.
항구가 다가 오고 있습니다.종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그의 판단을 따르는 동안 우리들의 배는 안정되었었고 용감했고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 애통하다! 애통하다! 애통하다!
오 붉은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갑판위에 선장이 누워 있습니다.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습니다.

재건을 위한 노력

전쟁으로 갈라진 민심과 초토화된 남부의 재건을 관용과 화해를 바탕으로 이루어 보려든 링컨의 계획은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Andrew Johnson에게로 넘어 갔습니다.

노스 캐로라이나에서 태어나 테네시에서 양복봉제사로 자수성가한 소기업인인 그는 지방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 노동자 계층의 복지를 위해 일하면서 테네시주 하원의원과 주지사 그리고 연방 상원의원을 두루 거친 남부의 유력한 정치인이였습니다. 그는 1861년 테네시주가 합중국에서 탈퇴하여 남부 연맹국에 참가하였을때도 계속 합중국의 하원의원으로 링컨을 도운 많지 않은 남부의 정치인중의 하나로 재선을 앞두고 링컨의 부통령후보로 지명받았습니다.

그는 남부출신이였기에 린컨의 관용과 화해의 온건한 재건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그러한 방침을 계속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북부를 기반으로한 급진적인 공화당의 압력으로 많은 제약을 받았습니다. 실의에 차있는 남부의 백인정치세력들을 다독여 가며 흑인들의 자유를 단계적으로 신장하려는 그의 계획은 급진적인 북부 공화당의 강압적인 밀어부치기 헌법개정 공세에 밀려 남부 백인들의 반발을 촉발하였고 심지어는 의회의 동의를 받은 공직자를 파면하였다 하여 탄핵재판에까지 회부되어 겨우 한표 차이로 탄핵을 면하는 수모를 당하면서 결국은 재선을 위한 대통령 지명도 받지 못하고 물러나고 맙니다.

정치적인 재건작업은 반발을 받으면서도 사회적으로는 큰 변화들을 가져 왔습니다. 흑인들에게 투표권과 참정권이 주어지면서 흑인들의 정치적 힘이(political power) 형성되었습니다. 앤드류 짹슨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Ulysses S.Grant 장군은 북군의 최고 사령관을 지낸사람으로 흑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덕분에 쉽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의 갑작스러운 정치력 신장으로 남과 북 사이에는 진정한 관용과 화해에 바탕한 재건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감정의 골이 계속 깊어져 갔습니다. 남부의 백인들은 정부의 조치들이 너무나 일방적으로 흑인들을 위한 조치라 하여 북부의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반감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는 요즈음도 선거때마다 남부의 지도가 보수당인 공화당 일색으로 빨갛게 물드는 선거 결과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만 재건시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였습니다.

당시 남부의 백인들에게는 흑인들이 정치에 참여한다거나 심지어 의회를 장악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우기까지 하였으나 전쟁에 패하고 흑인들의 정치력이 판을 좌우하는 현상들이 일어나자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백인들은 구타, 방화와 각종 테러행위로 흑인들은 물론 '자유주의적인'백인 공화당원들에게 공포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백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결사대도 나타났습니다. 전직 군지휘관이나 군인들, 공무원들이나 공직자들은 물론 개중에는 교회 성직자도 끼여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1867년 내슈빌에서 처음 조직된 KKK단으로 알려진 Ku Klux Klan 입니다. 그들은 흑인들이 정치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대담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약탈, 살해, 테러를 자행하였는데 어머니 품안에 있는 아기의 골통을 박살내고, 아내의 발밑에서 남편을 살해하며 남편의 면전에서 아내를 강간하는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그들의 그러한 만행은 흑인들에게는 물론 '자유주의적인' 백인들에게도 공포심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물론 남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만행과 불의에 대하여 북부의 백인들은 분노하였지만 그때 불어닥친 '서부 개발'에 대한 관심과 전후 인프레 방지에 대한 관심등으로 일반인들에게서 남부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말았습니다.

전후에 제정된 재건법에 의한 남부의 재건운동은 그것이 좋은 의도에서 제정되었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주도권 장악에서 나왔거나간에 남부에 있는 흑인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허용하며 남과 북의 형제들이 서로 돕도 화합하는 아메리카 합중국을 재건하겠다는 고상한 목표를 실현하는데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가졌든 아브라함 링컨이 그때 살해되지 않고 재건계획을 제대로 추진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되는 대목입니다.

(시카고 교외 Skokie에 거주하는 김상신님은 은퇴한후 '늘푸른나무'를 만드는 한편 서양사와 교회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쳔의 역사해석','역사와 희망'등의 역서가 있습니다.)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25   제5장 제국으로 내닫는 미국  3827 01/10(목)
24   제4장 대재난을 향해 달리는 아메리카(항목별 요...  3494 01/08(화)
23   제4장 제4절 전쟁의 종식과 재건을 위한 노력  3357 12/10(월)
22   제4장 제3절 남북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  5260 12/10(월)
21   제4장 제2절 노예문제를 둘러싼 상황 변화들  3399 12/10(월)
20   제4쟝 대재난을 향해 달리는 아메리카 제1절 멕...  2836 12/10(월)
19   제3장 한 국가로의 도약-주요 내용 요약  3145 11/23(금)
18   제3장 제5절 잭슨시대의 개막과 대중민주주의의 ...  3421 11/23(금)
17   제3장 제4절 전쟁을 거쳐 태평성대로  3255 11/23(금)
16   제3장 제3절 영토의 확장과 제퍼슨 대통령의 업...  4035 11/23(금)

 
처음 이전 다음       목록 홈 알림 쓰기

ⓒ Copyright 1999~   TECHNOTE-TOP / TECHNOTE.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