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
2007/10/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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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제2절 북미 대륙을 둘러싼 열강들의 전쟁  

<늘푸른나무/김상신의 역사로 배우는 미국(편년체 통사)>

제2장 영국식민지 시대의 북 아메리카

제 2절 북미 대륙을 둘러싼 열강들의 전쟁

King Williams 전쟁
Queen Anna 전쟁
King George 전쟁
French 와 Indian 전쟁

북 아메리카의 영국식민지에서 신대륙을 찾아온 이주민들에 의하여 지난회에 설명하였든 여러가지 사건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북미에 진출한 나라들 사이에는 심심치 않게 북미대륙을 장악하려는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유럽대륙에서의 국제정세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때를 같이해서 북 아메리카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대륙에서 종전이 되면 식민지에서의 충돌도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양상으로 1689년부터 독립전쟁이 일어나기까지 4번의 큰 전쟁이 북미 대륙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싸움들은 북미 대륙을 장악하기 위한 열강의 각축전이였고 결과적으로는 아메리카의 독립전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였습니다.

17세기 말 북미 대륙은 유럽의 강대국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매우 가치 있는 지역이였습니다. 담배 생산지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 매우 값진 상품이였든 비이버 털의 공급처로서의 가치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기에 관심을 가졋든 나라들이 네델란드와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이였으며 영국 왕실도 한 몫 하였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당시 유럽에서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 동맹을 바꾸어 가며 세불리기에 때로는 전쟁도 불사하였는데 그때마다 북미 식민지에서의 영토, 자원, 시장 확보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1689년부터 독립전쟁이 일어나든때까지 강대국 사이에 유럽대륙에서 4번의 전쟁이 있었는데 그와 때를 맞추어 북미 대륙에서도 4번의 큰 전쟁이 일어나서 미국에서는 이를 통틀어 프랑스와 인디안 전쟁들(The French and Indian Wars)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프랑스가 인디안과 대항해서 싸운 전쟁이란 뜻이 아니라 영국이 프랑스와 인디안 연합군에 대항하여 싸운 전쟁이라는 뜻이며 더 정확하게는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 네델란드를 몰아내고 북미대륙을 장악하려는 전쟁이였다고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첫번째 싸움은 1890년 북미 지금의 동부 카나다 지역에 있던 프랑스군이 인디안부족들과 연합하여 뉴 잉글랜드 북단의 영국계 정착민들을 공격하고 카나다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진격하여 영국군의 요새들을 공격한것으로 7년동안이나 간헐적으로 계속되었습니다. 이때 유럽에서는 'Augsburg 동맹 전쟁'(1689-97)이 프랑스 군대와 영국이 가세한 오스트리아 연맹군 사이에 있었으며 북미에서 있었든 전쟁은 King Williams 전쟁이라고 불렀습니다.

두번째 전쟁은 1702년 영국군이 당시 스페인이 장악하고 있던 후로리다주의 St. Augustine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유럽에서는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 스페인 왕의 승계문제로 1702년부터 1713년까지 전쟁이 있었는데 이를 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이라고 부르며 북미에서의 전쟁은 Anne 여왕의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전쟁으로 스페인은 St. Augustine을 지키기는 하였지만 후로리다에서의 교역이나 선교 활동의 발판을 완전히 영국에 뺏기고 말았습니다.

한편 전번 전쟁에서 휴전을 맺었든 북쪽의 프랑스가 인디안족들과 합동하여 뉴 잉글랜드 지역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에는 영국군이 도리어 Acadia지역을 점령하고 1713년 휴전을 선언할때까지 뉴 파운드랜드 일대와 허드슨 연안 그리고 캐리비안 섬까지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세번째 전쟁은 1739년 스페인군대의 지휘관이 영국군 장교의 귀를 짜른데서 시작되어 카리브 섬과 죠오지아주에 국한되였던 것인데 후에 프랑스가 스페인에 가세하면서 전면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영국군은 현 카나다의 Cape Breton섬에 있는 Louisbourg 프랑스 요새를 점령하였지만 휴전협정에 의하여 다시 돌려주기는 하였지만..이 전쟁에서도 영국과 프랑스의 분규는 해결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1748년에 휴전이 되었습니다. 이때 유롭에서는 War of the Austian Succession(1740-48)이 게속되었으며 북미에서의 전쟁을 George왕의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그동안의 전쟁이 비교적 소규모로 간헐적이였으며 뚜렸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충돌이였습니다만 1756년부터 63년까지계속되었든 네번째 전쟁은 북미주에서 프랑스와 영국간에 운명을 결정짓는 싸움이였습니다. 이 싸움이 프랑스와 인디안 부족들이 합동하여 영국군에 대항한 싸움이라는 뜻에서 French and Indian War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유럽에서 영국의 동맹국이었든 오스트리아가 프러시아와 동맹한 영국과의 동맹을 끊고 프랑스와 동맹하면서 '7년 전쟁'(1756-63)이 일어났습니다.

북미대륙에서의 열강들간의 싸움들을 그 당시 영국왕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고 마지막 전쟁만을 French and Indian War이라고 불렀지만 후에 와서는 식민지 시대의 열강간의 전쟁들을 통틀어 'The French and Indians Wars'라고 복수를 붙여 통칭하고 있는데 아마도 영국잔재를 씻어내려는데서 나온것인듯 합니다.

이들 전쟁들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물론 소수 인디안 부족들이 영국군을 도와 싸우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The French and Indians War이라는 이름이 말하듯이 다수의 강력한 인디안 부족들은 프랑스를 도와 영국군을 공격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북미에서 기반을 완전히 상실하고 인디안들은 거의 멸종을 당하거나 아니면 서쪽으로, 또는 오지로 쫒겨갔다는 것입니다.

뉴잉글랜드와 버지니아로 이주한 영국의 이주민들은 신대륙에 올때 이곳에 영구히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만든다는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정착에 필요하다면 원주민들과의 목슴을 건 싸움도 불사하였고 더 많은 영지획득을 위하여 인디안들을 더 깊은 숲속으로 쫓아내었습니다만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은 무역을 통한 돈벌이 아니면 탐험이나 선교를 위하여 온 사람들(주로 제슈잇 선교사들)이였으므로 인디안들과 충돌할 필요가 별로 없었습니다. 인디안들이 볼때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영국사람들보다 덜 위협적일뿐 아니라 덜 나쁜 사람(less evil)이었고 때로는 무역거래등을 통해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식민지나 군대를 공격할때에는 프랑스와 인디안들이 쉽게 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 식민지 대륙에서의 프랑스인과 영국인의 숫자는 너무나 차이가 많았습니다. 마지막 프랑스와 인디안 전쟁이 일어날 당시에 북미 대륙에서의 영국인이 150여만명에 이르렀든데 비해 프랑스인은 고작 9만여명에 불과하였다 합니다.

결전 프랑스와 인디안 전쟁

앞으로 나올 미 독립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The French and Indians Wars의 마지막 전쟁인 '프랑스와 인디안 전쟁' 의 발단이 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1753년 영국 식민지 버지니아의 주지사는 젊은 영국군 장교에게 펜실바니아의 숲에 진을 치고 있는 프랑스군대에 그들이 버지니아의 영토에 무단 체류하고 있으니 곧 떠나라는 명령을 전하라며 보냈습니다. 이 젊은 장교는 명령을 전달하였으나 그들이 떠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돌아와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The Journal of Major George Washington이라는 작은 책자를 통해 명령수행중 보고 들은것들을 자세히 적었는데 이것이 출판되자 런던에까지 이 젊은 장교의 용기와 통찰력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

농장주의 아들이였던 22세의 전투경험이 전혀 없는 이 젊은 장교는 다시 150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펜실바니아에 새로운 기지를 확보하라는 명을 받아 그곳에 도착하였을때는 이미 프랑스군이 그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디안들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군을 공격하여 일단 전진 기지를 확보하는데는 성공하였으나 수적으로 열세였던 그는 포위당하여 프랑스군에 투항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프랑스군들은 순순히 이 젊은 장교를 버지니아로 돌려 보내 주었습니다. 그는 패장이였지만 영국의 제1 원수인 프랑스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 하여 영웅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후 영국군의 장교로 여러차례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가 패전의 고배도 마셨으나 1758년 이래 영국군들은 계속 승전하여 1760년 몬트리얼을 함락함으로 미주정복의 발판을 굳혔고 1763년 파리조약의 체결로 영국은 카다나 전부와 미시시피 동쪽의 전 북미주, 후로리다와 캐리브해안의 몇몇섬까지 완전 장악하게 되였으며 프랑스는 아메리카 식민지를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이러한 승리의 과정에서 워싱톤은 식민지 출신 장교로서 적지 않은 공을 남기고 1760년 군대를 떠남니다.

이 전쟁경험을 통해 워싱톤은 전쟁의 매력과 자신감을 얻게되어 후에 독립전쟁을 이끈 장군으로서의 자질을 개발케 되었든 것입니다. 미국 역사가들 가운데는 만약 이때 프랑스군들이 젊은 장교를 처형해 버렸다면 미국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상상을 해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워싱톤이 22년후 영국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할때 프랑스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기이한 역사의 수수꺼끼라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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