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7
2007/11/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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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제4절 전쟁을 거쳐 태평성대로  

<역사로 배우는 미국/김상신의 역사로 배우는 미국(편년체 통사)>>

제3장 한 국가로의 도약

제4절 전쟁을 거쳐 태평성대로

매디슨과 영국과의 전쟁

제4대 대통령 James Madison의 재임 기간은 전임 Jefferson의 재임 기간과는 달리 신생 아메리카로서는 별로 편치 못했든 기간이였습니다. 제퍼슨 대통령 재임시에 이미 신생 약소국이였든 아메리카는 유럽대륙을 지배하는 나포레옹의 프랑스와 해양을 제패하고 있는 영국 사이에서 살아 남기 위해 중립을 선언하였지만 영국은 아메리카의 상선들을 마음대로 정지시키고 영국인을 발견하면 영국 왕실해군으로 징발해 가는 만행을 자행하였는데 이것을 impressment(징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경우 귀화한 아메리칸인지 영국인인지를 구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아메리칸들이 영국인들과 함께 끌려갔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과 함께 영국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퍼슨은 모든 무역선의 출입항 금지법(The Embargo Act)를 제정, 외국과의 무역이 전면 중지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무역종사자들의 반발로 성공하지도 못하고 미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법으로 낙인이 직히면서 결국은 영국과의 무역만을 금하는 법으로 대체하였는데 그로 인해 영국의 아메리카 상선에 대한 impressment는 점점 더 심해져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제퍼슨은 다행히 전쟁을 모면하고 임기를 마쳤지만 새로히 취임하는 매디슨의 앞에는 시커먼 전운(戰雲)이 김돌고 있었든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인디안 지도자중 하나로 평가되는 Ohio Valley의 Shawnee 족 추장인 Tecumseh 가 서쪽으로 몰려 오는 백인들이 Ohio River 서쪽으로의 진출을 막고 그것으로 인디안과 백인들의 경계를 확정지으려는 생각으로 위스컨신에서 후로리다까지 산재해 있는 인디안 부족들을 방문하여 중서부와 남부의 인디안 부족들의 연합체를 구성하고 젊은 용사들을 뫃아 Tippecanoe 와 Wabash River 가 만나는 곳에 집결시켰습니다.

미 정부는 William Henry Harrison(당시 인디안 지역의 지사요 후에 대통령이 되었음) 장군으로 하여금 1,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진압하도록 하였습니다. 해리슨은 1811년 11월 테쿰세가 다른 부족들을 방문하려고 캠프를 비운 사이 이들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으며 테쿰세는 남은 인디안들을 데리고 영국군에 합류하여 아메리카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1813년 10월 전사함으로 그가 계획하였든 인디안 연방의 꿈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테쿰세의 사건이 서부로의 진출을 꿈꾸는 아메리칸들에게 반 영국 정서를 불러 일으키는 역활을 하였습니다. 인디안 연방이란 것이 영국이 꾸며낸 음모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북미 대륙에서 영국군을 완전히 쫓아내야 한다는 반 영국감정이 의회을 지배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호전적이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하원 의장 Henry Clay 의 주도하에 매디슨은 재선 선거운동 와중인 1812년 6월 영국과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미국은 외국과 전쟁을 할만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으며 영국은 독립전쟁때 미국에 패퇴한 경험과 함께 대륙에서는 나폴레옹군에게 군대가 묶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두 나라가 다 별로 내키지 않는 전쟁이였습니다. 1815년까지 2년 반 동안 계속된 이 전쟁은 평화협정으로 종전을 하게 되는데 재미 있는 사실은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하고 증원된 영국군들이 두 주 전에 평화협정이 체결된것을 모르고 뉴 올린스 전투에서 대 공세를 감행하였다는 것입니다. 미합중국 군대도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는데 이 전투에서 미군 사망자가 8명이었든데 비하여 영국군 사망자가 20,000여명이라는 이 전쟁 최고의 승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아메리카가 진 전쟁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긴 전쟁도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몬로의 태평성대와 몬로주의

영국과의 전쟁으로 전쟁에 반대하였든 연방주의 정당은 큰 타격을 받았고 종전과 함께 매디슨 대통령 민주공화당은 큰 인기를 얻으면서 1816년 선거에서는 매디슨이 선정한 후계자 James Monroe 가 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몬로는 독립전쟁에 참전한 군인으로 버지니아주의 지사를 두번이나 역임하였고 프랑스와의 루이지아나 매입협상에 가담하였을뿐 아니아 전임자 밑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외교관으로서 외국들과의 분쟁이 모두 해결되고 국내적으로는 거의 일당체재라고 할만큼 안정된 가운데 국정이 이루어져서 후대에 몬로시대를 '태평성대'(The Era of Good Feelings) 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제도적, 영토적, 외교적인 확장을 통해 신생 미 합중국의 성장이 이루어 졌다면 몬로의 시대에는 급격한 경제적인 확장을 통해 국가의 성장이 이루어 졌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북미 대륙의 기본 산업은 남부의 대농장을 근간으로하는 담배, 목화등을 생산하는 농업이었는데 북동부를 중심으로 기계를 만들어 공산품을 만들어 내는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산업혁명에로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몬로라고 하면 '몬로주의'(Monroe Doctrine) 이라는 것을 먼저 떠 올릴 것입니다. 그는 전후 영국과의 조약들을 통해 국경문제와 전쟁위협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그의 임기 말년인 1823년 의회에서 행정부의 역사적인 이정표라고 평가 받는 유명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 연설에서 몬로는 미 합중국은 유럽의 나라들이 아메리카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 역시 유럽에서의 국가간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고립주의 정책을 밝힌 것입니다.

물론 이 정책은 미국이 유럽 열강들의 바람을 피하려는 데서 나온것이지만 변화하는 세계질서를 인정하는 것이였습니다. 남미 대륙에서는 유럽에서 힘을 잃어 가는 스페인에 대항하여 독립된 나라들이 생겨나 1822년에 이미 미국은 멕시코, 브리잘, 칠리, 알젠티나, 라 프라타(La Plata-현재의 코롬비아, 에쿠아돌,베네주에라, 파나바를 합한 당시 국가) 등을 독립국으로 인정 하였는데 몬로의 이같은 선언은 이들 국가들을 보호하고 신대륙에 건설된 스페인 제국의 붕괴를 가속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이 선언으로 아메리카는 독립을 선언한 이래 50여년만에 명실상부한 독립국가로서의 자리를 확인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남미 여러 나라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고질병 노예문제

몬로 대통령 시대를 '태평성대'라고는 하나 그것은 백인들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이고 인디안들과 흑인노예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새로운 땅을 찾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몰려 오는 백인들에 의해 인디안들은 점점 더 오지로 몰려 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노예문제는 독립선언서를 기초할때 부터 계속 문제로 제기 되었습니다만 그때마다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협상을 통한 미봉책으로 위기를 넘기곤 하였습니다. 1808년 노예무역을 위법으로 규정하였지만 불법적으로 계속 시행되어 왔습니다. 몬로 대통령때에도 강력한 노예폐지 운동이 일어나면서 노예문제가 다시 이슈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도덕적인 문제를 지나서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입니다.

북동부 지역에 도시가 생기고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생필품 제조가 활발해지자 의류의 원료인 목화의 수요가 급격히 증대하였습니다. 이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 인디안들을 몰아내고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새로운 주(states)들이 생겨 났는데 문제는 노예제도를 인정 할 것이냐? 아니면 노예들의 자유를 인정할 것이냐였습니다. 사회적인 정서로는 노예제도 반대였지만 정치를 좌우하는 지주들의 입장에서는 노예제도가 필수적인 것이였습니다.

헌법이 인준되든해 13개 주였던 아메리카 합중국은 몬로가 대통령으로 재선된 다음해인 1821년 24개 주로 확대되었습니다. 24개주의 이름은 아래와 같습니다. 당시 노예제도에 대한 지지도를 가늠할 수 있도록 노예제도 폐지 주와 노예제도 유지주로 나누어서 명단을 만들었으며 괄호 안의 연도는 아메리카 합중국의 소속 주로 인준 받은 해를 말하고 그 다음의 아라비아 숫자는 아메리카 합중국에 속한 주로 인정된 순서를 의미합니다.

노예 자유를 인정한 주들
코네티코트(1788, 5)
일리노이(1818, 21)
인디아나(1816, 19)
메인(1820, 23)
매사츄세츠(1788, 6)
뉴 햄프셔(1788, 9)
뉴 저지(1787, 3)
뉴욕(1788, 11)
오하이오(1803, 17)
펜실바니아(1787, 2)
로드 아이랜드(1790, 13)
벌몬트(1791, 14)

노예제도를 인정한 주들
알라바마(1819, 22)
델라웨어(1787, 1)
죠오지아(1788, 4)
켄터키(1792, 15)
루이지아나(1812, 18)
매릴랜드(1788, 7)
미시시피(1817, 20)
미주리(1821, 24)
노스 캐로라이나(1789, 12)
사우스 캐로라이나(1788, 8)
테네시(1796, 16)
버지니아(1788, 10)

이 당시 아직 주로는 승격되지 않았지만 후로리다 지역과 멕시코와 국경을 하고 있던 알칸소 지역, 미시간 지역 , 미드웨스트 지역등이 아메리카 영토에 속해 있었습니다.

182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인구는 9배6십만여명이었고 가장 인구가 많은 주는 뉴욕주로 1백 30여만명, 그 다음이 펜실바니아로 1백만명이 조금 넘었습니다. 북부의 자유주들이 5백 15만여명인데 비해 남부의 노예주들은 4백 48만 여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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