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2(목)
미 합중국 헌법의회  
<늘푸른나무/문화산책/이야기 미국사/2019년 12월 1일>

미 합중국 헌법의회

미 합중국 헌법은 1787년 여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의회에서 기초되었다. 12개 주에서 참가한 55명의 대표들이 모여 이 초안을 제정함으로 현대미국정부를 만들어 냈지만 헌법초안의 주요 저자는 버지니아 출신 대표 제임스 매디슨(1751-1836)으로 그는 후에 4대 대통령이 되었다. 매디슨의 초안이 채택됨으로 아메리카 정부의 기본틀인 대법원, 미국 의회 그리고 대통령으로 구성되는 미국정부의 기본 기구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기본조직들은 그 이후 본질적인 변화 없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미 독립전쟁이 끝나자 미 연방 의회는 17887년 5월 25일부터 8월 17일까지 필라델피아에 있는 독립회관(Independent Hall-1776년 13개 주의 대표들이 모여서 독립선언을 한 곳으로 미 독립의 상징)에서 각 주의 대표들이 모여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정하는 헌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 모인 의회를 헌법의회하고도 부르고 필라델피아 의회라고도 부른다. 연방의회가 필라델피아에 모이던 때 많은 미국사람들은 혁명시대에 만들어 진 국가정부는 아주 비능율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독립선언 후 1777년 채택된 연합규약 아래에서는 정부가 세금을 징수할 권리도 부족했고 13개 주가 정책수행에서 똑같은 발언권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당시 버지니아나 뉴욕같은 큰 주들의 입장에서는 불공평한 것이었다. 

연합규약의 부당성을 잘 알고 있지만 작은 주들은 이웃주들에게 너무 많은 권리를 양도하는 것을 꺼렸다. 사실 13개 주들 가운데 가장 작은 주였던 로드 아일랜드 는 필라델피아 의회에 참석하는 것까지도 거부하였다. 결국 중간 크기인 컨네티커트 주의 한 대표인 로저 셔만(1721-1793)이 그의 유명한 타협안인 새 헌법에서는 인구비례로 의석을 결정하는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과 모든 주가 똑같은 숫자의 대표를 보내는 상원(Senate)을 만든다는 제안을 하여 반발을 무마하였으며 그 제도는 아직까지도 시행되고 있다.

소위말하는 컨네티커트 타협안은 아직 노예문제와 같은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있었음에도 헌법의회 성공의 최대걸림돌을 제거하였다. 노예문제를 둘러싼 논쟁들은 지난번에 살펴 본대로 ‘3/5 타협안’에 의해 시민이 아닌 노예들은 세금을 책정하거나 의회대표를 산출하는데 있어서 3/5 원칙을 적용하기로 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헌법의회에 참석한 대표들은 의견대립이 심하고 좀체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차 필라델피아에 있는 독립기념관(Independent Hall)에 방어벽을 설치하고 스스로 그 안에서 외출을 자제하면서 8월 한 달동안 여름의 무더위와 싸우며 타협을 묘색 매디슨과 알렉산더 해밀튼이 연합규약의 개정이 아니라 새로운 헌법의 제정으로 가닥을 잡자 새로운 정부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헌법제정이 이루어지자 39명의 대표들이 서명하여 주의회 심의에 부쳐졌고 필요한 숫자의 주의회 통과가 이루어지자 초안에 서명하고 1789년부터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델라웨어 주가 1787년 12월 7일 미 헌법을 인준하여 13개 주 가운데 첫 번째 주가 되었으며 그 후 펜실바니아와 뉴저지 주가 뒤를 이었다. 필라델피아 헌법의회를 뽀이곳한 로드 아일랜드는 새로운 헌법에 서명한 마지막 주가 되었다.

헌법이 비준된 후에 셔먼의원은 첫 번째 의회의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커네티커트 주의 뉴 헤번 시장으로도 당선되어 동시에 두 개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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