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7(수)
미국 독립전쟁의 성지 배리 포지(Valley Forge)  
<늘푸른나무/이야기 미국사/2019년 11월>

미국 독립전쟁의 성지 배리 포지(Valley Forge)

배리 포지는 미국 독립 전쟁 중인 1777년에서 1778년 사이에 혁명군이 동계에 주둔한 곳으로 필라델피아에서 북서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하고 있다. 

1777년 12월, 죠오지 와싱톤(George Washington, 1732-1799) 의 지친 군대는 펜실바니아 주의 작은 마을 배리 포지에 도착하였다. 영국군들이 근처 필라델피아를 점령하고 있었음에도 와싱톤 장군은 이미 눈이 6인치나 덮여있는 이 동네를 미 혁명군이 겨울을 지낼 야영지로 선정하였다. 배리 포지에서의 겨울나기는 악몽이었다. 와싱톤과 그의 군대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기간이었다. 영국군들이 필라델피아에서 따뜻하게 지내는 동안 미국군대들은 약 1만 명 가운데 2000여명이 추위과 질병과 굶주림으로 눈덮힌 배리 포지에서 죽어갔다. 

도마스 페인(1737-1809)의 말을 빌리면 배리 포지의 기간은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기간이었다.” 장티브스 열병과 폐염이 진중에 퍼졌다. 담요와 의복과 심지어 신발까지도 부족했다. 많은 병사들은 앉아서 죽음과 병을 기다리느니 탈영해 버렸다. 그래서 탈영은 와싱톤 군대의 공통된 고질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배리 포지에서 살아 남은 군인들은 1778년 가장 단련된 전투병력으로새롭게 태어났다. 프리드리히 본 스튜벤(1730-1794)이라는 프러시아 장교가 배리 포지 군대에 합류하여 와싱톤의 군사훈련을 돕게되었다. 눈이 녹으면서 스튜벤은 군인들을 훈련하기 시작하여 보다 전문적인 군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군인들은 1778년까지 배리 포지에 주둔해 있었는데 필라델피아에 있는 영국군 사령관이 그의 군대를 뉴욕으로 옮기는 결정을 하였다. 와싱톤 군대는 중부뉴저지에 있는 몬마우스 전투에서 영국군 주류를 공격하였다. 물론 이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전투결과는 스튜벤의 훈련이 군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고의 영국군대에 맞서서 와싱톤 군대는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였던 것이다.

배리 포지에서 보낸 몇 달 동안은 와싱톤 군대에게는 최악의 악몽과 같은 기간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메리카의 영국군대를 쫒아버릴 수 있었던 정예군대를 단련한 귀한 기간이었다.
여기에 참가했던 군인들 가운데는 알렉산더 하밀톤(1755-1804), 아론 벌(1756-1836) 같은 후에 미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인사들이 들어있었을 뿐 아니라 배리 포지의 와싱톤 군대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군대로 해방된 노예들과 오네이다 인디언 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와싱톤 사령관은 연방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이 군인으로 입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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