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8(월)
미 독립전쟁의 전기(轉起)를 가져온 사라토가 전투  
<늘푸른나무/이야기 미국사/2019년 10월>

미 독립전쟁의 전기(轉起)를 가져온 사라토가 전투

사라토가(Saratoga) 전투에서의 미 혁명군의 승리(1777년)는 미국혁명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사라토가 전투 이전까지는 독립군들이 영국군에 대항하여 몇 몇 조그마한 전투에서 승리했을 뿐 독립군들은 벙커 힐 전투(1775)까지는 영국과의 대회전에서 패배만 거듭하였다.
그러나 뉴욕주 알바니 근처에 자리한 사라토가 전투에서의 승리는 엄청난 것으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 섯명의 장군들과 5천 5백명의 군사들로 구성된 영국군들이 전부 항복해 버렸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미국의 군사력에 깊은 인상을 받아 프랑스정부는 사라토가 전투 소식을 듣고 공식적으로 미국을 인정하였으며 미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는 첫 번째 외국국가가 되었다.

사라토가 전투의 영국사령관이었던 “젠틀맨 죠니”라고 불렸던 죤 버구인(John Burgoyne) 장군은 영국군은 아메리카 반란군들을 쉽게 진압할 수 있으리라고 철석같이 믿었으며 영국을 떠나기 전에 친구와 내기까지 할 정도였다. 버구인은 8000여명의 군대를 이끌고 카나다로부터 뉴욕으로 진입했다. 그의 군대는 타이콘데로가(Ticonderog)요새를 점령하고 천천히 알바니쪽으로 전진하였다. 호라시오 게이츠(Horatio Gates,1728-1806)장군 휘하의 미국혁명군은 1777년 9월 사라토가에서 버구인과 접전하였다.

이 전투에서의 아메리칸 영웅은 베네딕트 아놀드(Benedict Arnold,1741-1801)로 그의 이름은 후에 반역자란 말의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전략을 둘러싸고 사령관 게이트와 이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놀드가 버구인 군대를 공격하는 첫 번째 돌격대들을 지휘하게 되었다. 전투가 끝났을 때 영국군들은 카나다로부터의 보급로가 차단된 채 완전 포위되었음을 알게되었다.

전혀 희망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한 버구인은 1777년 10월 17일 항복하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였던 영국 제국은 오합지졸인듯 했던 아메리칸 반란군에 의해 큰 망신을 당했다. 사실 아메리칸들도 영국군과 마찬가지로 이 전투 결과에 깜짝 놀랐다. 포로들을 수용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아메리칸 지휘관들은 버구인과 그의 군인들을 다시는 참전하지 않겠다는 서약만으로 영국으로 돌려보냈다.

파리의 미국 대사였던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사라토가의 승리를 이용해서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 (1754-1793)에게 미국을 정식으로 인정하도록 설득하였다. 1778년 2월 6일 프랑스가 정식으로 미국을 인정함으로 혁명군들은 중요한 군사적, 외교적 동맹국을 얻었다. 프랑의 배들과 군대는 미국을 돕기 시작했고 영국 해군에게 맞설 수 있는 결정적인 해군력을 제공하였다.

사라토가 전투후에 사령관이었던 게이츠 장군은 정가에서 죠오지 와싱턴 대신 혁명군 사령관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있을만큼 사라토가의 영웅으로 부상하였으나 실제로 공격진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 베네딕트 아놀드 장군은 1780년 웨스트 포인트의 사령관으로 있을 때 영국군에게 항복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반역자 낙인이 찍혀 사라토가 전쟁기념비에는 그의 이름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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