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3(일)
건국초기에 교통혁명을 이뤘던 이리 운하(Erie C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9년 10월>

건국초기에 교통혁명을 이뤘던 이리 운하(Erie Canal)

이리 운하는 미국 뉴욕주에 위치하고 있다. 이리 호에서 허드슨 강 상류까지 연결해, 뉴욕 항으로 흐르는 허드슨 강을 통해 오대호와 대서양 사이의 배편을 가능하게 한 운하이다. 동부와 중서부의 운송을 간편하게 해준 가장 초창기의 교통혁명이었다고 말 할 수 있는 대 사업이었다.

이리운하가 완성되어 개통된 1825년까지는 미 중서부지역에서 동해안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것은 매우 느리고 힘든 일이었다. 오하이오 강변에서 당나귀가 끄는 마차에 밀이나 위스키를 싣고 뉴욕까지 가려면 험준한 진흙탕의 아파라치아 산맥을 넘어야하는데 몇 달씩 걸리기도 하였다.

이리운하 건설공사는 당시에는 미국역사상 가장 의있는 토목공사로 매우 값싸고 빠른 운송수단이 되엇으며 중서부의 경제를 급속히 부양시켰다. 오대호와 허드슨강을 연결시킨 이리운하는 오하이오나 뉴욕주의 북부에 있는 농민들이 그들의 온갖 물품들을 2주만에 산을 넘던때의 10분의 1의 비용으로 뉴욕시까지 운반할 수 있게 하였다. 

드윗 클린튼(1769-1828) 주지사가 이끌던 뉴욕주는 장장 363마일에 당시 7백만 달러가 들어가는 대공사를 추진하였는데 뉴욕주 사상 가장 큰 이익을 남긴 투자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 운하로 뉴욕시는 미국에서 가장 번잡한 항구도시로 자리매김 하였으며미국농산물을 유럽으로 보내는 항구로 발전하였다. 이 운하 덕분에 미시간, 오하이오, 인디아 그리고 일리노이 주들이 동부의 항구들과 유럽시장과의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이리운하의 커다란 부산물은 뉴욕의 몇몇 도수로를 포함해서 미국에서 운하건설 붐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운하의 인기는 1830년대에 훨씬 빠른 철도가 도입되면서 시들해지고 말았다. 이리운하는 그후에도 수십년동안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뉴욕 북쪽에는원래의 운하들이 남아있으며 상업용 해상운송도 계속되고 있다. 

이리운하는 서쪽으로 가면서 82개의 관문을 통과하여 420 피트를 올라간다. 

처음 운하를 만들때에는 동력을 이용하는 바지가 없었기 때문에 운하 양쪽에 황소나 암소들이 걸어가면서 바지를 끌고 갔다고 한다.

또한 클린톤이 운하계획을 처음 발표했을 때 많은 뉴욕사람들은 무척 회의적이어서 ‘클린튼의 바보짓”이라며 야유하였는데 완공과 함께 놀라운 성공을 거두자 비난이 줄어들었다.
 
운하의 길이는 362마일, 1817년7월 4일 착공하여 1825년 10월 26일에 완공, 8년 4개월이 걸렸으며 공사비는 당시 달러가치로 7백만 달러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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