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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26(금)
미국의 수도 와싱톤 D.C. 에 얽힌 이야기  
<늘푸른나무/문화산책/ 이야기 미국사/2019년 5월>

미국의 수도 와싱톤 D.C. 에 얽힌 이야기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벌리고 있던 혁명기간 동안에 독립운동의 모체였던 미대륙회의는 펜실바니아 주의 필라델피아가 영국의 점령하에 있을 때 5개의 다른 도시들에서 모였으며 심지어는 잠시동안이지만 요크라는 작은 도시에서도 열렸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정부의 떠돌이 신세는 계속되어 6개의 도시들이 미국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1789년대 말, 건국에 주요 역할을 한 건국 선조들은 보다 영구적인 정부의 소재지를 찾기 시작하였다. 많은 의회의 지도자들은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와 같은 상업중심지를 선호하였으나 남부의 대표들은 남부 농장지대에 수도를 만들기 원했다. 1790년 북부의 정치가들은 남부의 정치가들이 지지하는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조건으로 버지니아와 매릴랜드 접경사이에 영구적인 수도를 건설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러한 협상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 와싱톤 연방도시이다. 도시의 이름은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 1800년부터 공식으로 미합중국의 수도가 되었다.프랑스 태생 미국건축가인 피에를 랑판(1754-1825)이 설계한 와싱톤은 첫 번째 현대식 계획도시의 선례가 되었다.

영국과의 1812전쟁 당시 1814년 8월 24-25일 영국군대가 와싱톤 D.C.를 공격하여 의사당과, 재무부 청사와 백악관을 불살라 페허로 만들어 버렸다. 다른 청사건물들은 곧 복구되었으나 의사당 건물은 1868년에야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비교적 자그마한 규모를 유지하였던 와싱톤 시가 교외지역의 확장과 함께 인구밀도가 가장 조밀한 지역으로 확장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상업과 외교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스미소니안 박물관, 백악관, 국회의사당 등 미국의 주요 랜드마크 들이 1790년 의회에서 기획한 원래의 구역안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정부안에서의 와싱톤 주의 법적 신분은 여전히 아주 특이하다. 매릴랜드와 버지니아 주에서는 별도로 인정받지만 와싱톤이 차지하고 있는 콜럼비아 지역은 하나의 주가 아니다. 이 지역의 시민들은 국회의원 선거권이 없다(그들은 연방세를 내고 전쟁시에는 징집되기는 한다) 그리고 의회는 이 지역의 경계선 안에서의 대부분의 법율에 대한 결정권을 소유하고 있다.
1961년 컬럼비아 지역 주민들에게 대통령 선거권을 주도록 헌법을 개정하였다.

1790년대 와싱톤 시를 건설하던 때 미국의 수도는 필라델피아였으며 와싱톤은 이 수도의 이름을 와싱톤으로 정하는 것을 극구사양하면서 연방도시(The Federal City)라고 불렀다. 

현재 와싱톤 D.C.는 미국에서 여 섯번 째로 큰 도시로 메트로포리탄의 인구를 62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 매년 2천 만명이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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