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8(월)
스티븐 포스터(Stephen Foster)  
<늘푸른나무/미국음악산책 2/2019년 6월>

스티븐 포스터(Stephen Foster)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작곡가는 스티븐 포스터(1826-1864)로 미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100여 곡 이상을 작곡하였는데 한국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오, 스산나”, “스와니 리버”, “켄터기 옛집” 그리고 “비우티플 드리머” 등이 그의 곡이다. 그러나 그는 뉴욕의 한 병원에서 운명할 때 그의 주머니에는 38센트밖에 없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도 전해 지고 있다.

포스터는 1826년 미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펜실바니아 주의 핏츠버그에서 출생하여 독일에서 이민 온 헨리 크레버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포스터는 열 여덟살에 그의 첫 작품인 “Open Thy Lattice.”를 출판하였다. 레코드 음반이 출판되기 전 포스터와 같은 작곡가들은 그들의 수입을 악보판매에 의존했는데 1848년 포스터가 작곡하여 당시 100달러에 출판사에 넘긴 “오, 스산나”는 미국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노래가 되었으며 포스터에게는 첫 번째 대박을 가져다 주었다
.
포스터의 노래들은 소위 말하는 농장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포스터를 폄하하는 현대의 비평가들 가운데는 포스터가 백인으로 아프리칸 아메리칸 음악가들로 부터 수치스러운 미국의 전통을 탈취하기 시작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포스터 노래들은 매우 감상적이며 남부의 농장생활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현실적인 노래들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모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종적인 비어들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50년 당시의 상황에서는 포스터 노래에 나오는 무심한 인종차별적인 용어들은 일상적인 것이었다고 하겠다. 백인들이 흑인들의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민스트릴쇼는 그 당시 가장 인기있는 쇼의 한 형태였는데 “스와니 리버”. “캠프타운 레이시스” 등과 같이 포스터의 가장 인기있는 노래들은 이 민스트릴쇼에 나오는 곡들이었다.

그러나 포스터에게 있어서 1850년대의 전성기는 짧게 끝나고 말았다. 1860년 그의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르자 그는 뉴욕으로 옮겼으나 그곳에서 알콜중독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였다. 그는 작곡을 계속했지만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으며 1864년 공립병원에서 3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포스터의 마지막 노래인 “비유티플 드리머(Beautiful Dreamer)”는 그가 죽은 직후에 출판되어 가장 성공한 곡의 하나로, 미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노래가 되었다.

그의 노래가운데 두 곡이 정식으로 두 주(州)의 주가(州歌)로 채택되었는데 “스와니 리버”는 프로리다 주의 주가로, “켄터키 옛집”은 켄터키 주의 주가로 불려지고 있다. 

그의 유명한 “금발의 제니(Jeannie with the Light Brown Hair)는 1854년 아내 제인 대니 맥도우웰을 위해 작곡하였는데 결국 그들은 헤어지고 말았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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