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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28(금)
죤 핸콕(John Hancock)-필라델피아 대륙회의 의장  
<늘푸른나무/이야기 미국사/2019년 6월>

죤 핸콕(John Hancock)-필라델피아 대륙회의 의장

지금 미국에서 죤 핸콕은 큰 도시마다 대형빌딩들을 가지고 있는 대형 보험회사의 이름이다. (보스톤의 제일 높은 빌딩과 시카고의 두 번째 빌딩이 죤 핸콕 빌딩이다) 그러나 본래는 미국독립전쟁이 발발하기 오래 전부터 매사츄세츠 주에서 영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재계의 지도자로 부상하였던 보스톤의 상인이요 은행가의 이름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수익성이 좋은 사업들에 부과되는 특별한 세금에 분노하여 핸콕은 그의 이익금들을 <보스톤 티 파티(Boston Tea Party)를 주도하였던 과격파 비밀결사인 <the Sons of Liberty>의 자금으로 기부하였다. 핸콕은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애국심에서 자금을 기부하였을 뿐 아니라 1776년에 독립선언서에 처음으로 싸인을 하기도 하였다.

혁명으로 치닫던 격동기에 보스톤에서 핸콕(1737-1793)과 새무엘 아담스(1722-1803) 는 영국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였는데 그들은 영국의회가 부과하는 일련의 세금에 반대하기 위해 보스톤의 상인들을 조직하였다. 영국의 세금과 무역제한은 핸콕이 벌리고 있던 조선업, 고래산업, 부동산 업들에 특별히 심각한 타격을 가하였다. 이 두 사람은 보스톤식민지당국에서 볼 때에는 항상 눈의 가시였다. 결국 1775년 이 두사람에 대한 체포령이 내렸다.

영국은 이 두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 현장을 급습하였고 그것은 1775년 4월 미국독립전쟁의 첫 번째 전투인 렉싱톤과 콩코드의 전투로 비화되었다. 이 두 사람은 보스톤 근처의 농가에 숨어서 체포를 면하였으며 핸콕은 그의 영국에 대한 저항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일약 영웅으로 부상하였고 다음 달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륙회의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핸콕은 의장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처음으로 서명하는 영예를 얻었을 뿐 아니라 어쩌면 반역의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위험을 무릎쓰고 기꺼히 자신의 전폭적인 지지를 인정하고 싸인하였다.

그러나 혁명이 시작되자 핸콕은 동료들에 의해서 소외되었다. 그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재정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같이하였던 동료들은 그의 거드름 피우는 교만함에 식상하여 멀리 하였는데 핸콕의 그러한 성품은 독립선언서 하단에 있는 서명란에 유난히 커다란 그의 싸인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

행콕은 매사츄세츠 주에서 태어나서 영국식민지에서는 처음으로 설립된 보스톤 라틴 스쿨을 졸업하고 하바드를 졸업한 엘리트로 매사츠세츠 주지사를 두 차례 역임하였고, 대륙회의 의장을 지냈다. 자신은 노예들을 많이 부리던 사업가였지만 정치가로서의 핸콕은 1780년 노예제도를 폐지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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