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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25(월)
록앤 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  
<늘푸른나무/이야기 미국사/2020년 5월>

록앤 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1935-1977)는 1950년대 중반 록앤 롤 분야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였고 “Heartbreak Hotel.” “Don’t be Cruel” “Hound Dog” 등으로 기록적인 챠트 톱을 기록한 가수이다. 1954년 자신만만하고 반항적인 섹스 심볼로 등장한 프레슬리는 미국과 세계 음악계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비틀즈나 밥 딜란, 롤링스톤 등이 한결같이 엘비스로부터 음악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격찬하였다.

그러나 프레슬리는 록 앤 롤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난타하는 백비트에 기타의 현과 묵직한 타악기들이 같이하는 아메리칸 특유의 스타일은 아프리카 출신 아메리칸 들이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특히 Chuck Berry, Bo Diddley, Fats Doino , B.B.King 등이 발전시킨 것이다.

미시시피에서 태어난 프레슬리는교회에서 노래하는 것을 배웠으며 흑인들이 부르는 노래였던? ‘race music’(흑인들의 음악이 부르스나 리듬으로 분류되기 전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모두 레이스 음악이라고 하였다.)을 들으면서 공감하였다. 1948년 그의 가족들은 테네시주 멤피스로 이사하였으며 그곳에서 프레슬리는 시골의 작은 레코드회사인 Sun Records사의 주인인 Sam Phillips의 눈에 띄어 되었다. 필립은 미남인 백인청년이 부르는 흑인음악스타일은 충분히 흥행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1954년 프레슬리와 레코드 계약을 체결하였다.

프레슬리의 놀라운 성공은 필립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록음악을 개발한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에게는 오랫동안 입맛을 쓰게 하였다. Bo Diddley는 2003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분통을 터트렸다. “나를 화나게 만든 것은 백인친구들이 기타를 치면서 우리와 같은 소리로노래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엘비스가 록앤롤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 . .엘비스는 록앤롤을 시작하지 않았어요. 나는 엘비스를 좋아하고 그는 훌륭했으며 나는 그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그는 나보다 3년 후에 나타났어요.” 그런데 프레슬리 자신은 항상 아프리칸 아메리칸 연주자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하였다.

성공적인 일련의 영화 들(프레슬리는 일생동안 33개의 영화에 출연하였다)이 프레슬리의 인기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가수로서의 삶은 1958년 그가 군에 징집되어 독일에 주둔하면서 일단 정지가 되었다. 그가 1960년 무대로 돌아왔을 때 그의 초기의 인기를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1977년 마약논란에 휩싸였던 그는 멤피스에 있는 그의 저택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저택 Graceland는 후에 미국의 첫 번째 록 스타의 기념관으로 개봉되어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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