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단편   ▒  

‘어느 특별한 크리스마스’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5년 12월>


‘어느 특별한 크리스마스’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내가 12살 때 어머니와 나는 독일과 벨기에 국경 부근에 있는 숲 속 오두막집에 살았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적군은 필사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울리던 포성이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무서움에 몸을 떨며 오두막집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첫 번째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어머니는 촛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문을 여니 밖에는 병사들이 서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많이 다친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돌아보며 낮은 소리로 침착하게 말했으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습니다. 다행히 병사들 중 한사람이 우리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침대보를 길게 찢어서 붕대로 사용했습니다. 또 닭고기 수프와 구운 감자로 식탁을 차렸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길을 잃은 병사들이 찾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문을 열었습니다. 문 밖에는 아군들이 서 있었습니다. 나는 문 앞에 선 채로 얼어붙은 것 같았습니다. 어린 나의 생각으로도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적군을 집안에 들여놓은 것도 그런데 거기다가 부상병치료에 식사 대접까지 한다는 것은 아주 큰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문 앞에 굳어버린 듯 서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문 곁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도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곧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메리 크리스마스”밖에 서 있던 우리 나라 병사네 명 중 얼굴이 큰 병사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이집에서 좀 쉴 수 있을까요? 도와주십시오.”

“물론이지요. 따뜻한 음식도 있으니 어서 들어오세요.”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손님이 세 사람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 아마 다른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것을 기억해 주세요.”어머니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나라 병사가 아닙니다.”어머니는 우리 병사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당신들처럼 도움이 필요한 어린 병사들입니다. 한 명은 부상을 당했지요. 나머지두 사람도 몹시 지쳐 있어요. 오늘만은, 오늘밤만은 전쟁에 관한 일은 잊도록 해요.”어머니가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한참 동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습니다.

“자, 어서들 들어오세요. 음식이 식겠어요.”어머니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묵묵히 생각을 하다가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총을 어머니에게 내밀었습니다. 어머니는 총을 받아서 방구석에 놓고 의자와 침대를 끌어와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윽고 우리 나라 병사들과 다른 나라 병사들이 좁은 집안에 모여 있게 되었습니다.

“감자를 더 가져와야겠구나. 모두들 배가 고플텐데 먹을 게 부족하면 손님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잖니?”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본 병사들의 표정도 조금씩 부드럽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창고에 가서 감자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부상당한 병사의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나라 병사 한 명이 부상당한 병사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전쟁 전까지 의과 대학에서 공부했어요. 다행히 추위 때문에 상처가 곪지 않았군요. 조금 쉬면 아물 것 같습니다.”그 병사가 부상병을 돌보며 이렇게 말하자 그제서야 서로에 대한 의심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우리 나라 병사가 꺼낸 빵 한덩어리와 포도주 반병을 식탁에 놓고 어머니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끝나자 우리 병사들의 눈에도, 다른 나라 병사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우리 집에서의 휴전은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졌습니다. 부상병은 편히 쉰 덕분에 어머니가 끓여준 죽을 받아먹을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병사들은 장대 두 개를 가져다가 식탁보를 묶어서 들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상병을 뉘었습니다. 다른 나라 병사가 자신들이 갈 길을 말하자, 우리 나라 병사가 그 길은 이미 우리 병사들이 점령을 해서 위험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모두 무사하길 빕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다른 나라 병사들은 우리 나라 병사들이 알려 준 길을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우리 나라 병사들도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숲 속으로 사라지고 난 뒤에도 어머니와 나는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크리스천 투데이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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